신약 개발은 후보물질 발굴부터 임상시험, 최종 허가까지 통상적으로 10년 이상 걸린다. 이 과정에서 드는 비용만 평균 1조원에 달한다. 바이오 산업은 당장 돈을 벌지 못하면서 연구비를 쏟아부어야 하는 특성이 있다. 어느 산업보다 외부 투자 유치가 중요하다. 이러한 특성은 시장 불확실성, 고금리 기조 장기화 등으로 투자가 얼어붙은 2022년부터 본격적으로 바이오벤처의 발목을 잡았다. 파멥신은 하나의 예시일 뿐이다. 살기 위해 허리띠를 졸라매는 바이오가 한두 곳이 아니다.
이승규 한국바이오협회 부회장은 "코로나19 기간 동안 환자 모집이 안 됐고 임상은 지연됐다"며 "엔데믹이 되면서 사정이 나아지나 했지만 금리가 오르면서 가만히 있어도 비용이 4분의 1 더 발생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런 상황에서 자금경색까지 시작됐다"며 "파이프라인 4~5개를 2개 정도로 줄여 비용을 줄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바이오 전문 벤처캐피탈(VC) 관계자는 "지금 인력 구조조정이 상시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며 "월급이 1~2개월 밀려서 직원들이 먼저 회사를 관두기도 하고, 회사에서 퇴사를 설득하기도 하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설비, 건물 등 자산을 팔거나 출장비 등 경비를 줄여 자금 여력을 키우는 사례도 많다. 파이프라인, 인력을 줄이는 것보다 상대적으로 쉽다는 판단에서다. 다른 바이오 회사 대표는 "인건비를 줄이는 게 쉽지 않다 보니 R&D 비용만 남기고 회식비, 출장비 등 경비를 줄이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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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 개발 기업은 아니지만 헬스케어 기업인 케어랩스는 본사로 쓰던 서울 강남 건물과 토지를 매각해 950억원을 확보했다. 지난해 매출 감소, 순적자 전환을 겪은 만큼 손익구조를 개선하기 위해서다.
아예 비주력 사업을 정리하는 기업도 나왔다. 아이큐어는 2022년 하반기 지분 투자한 회사 4분의 1에 대한 청산에 나섰다. 화장품 판매, 구독 플랫폼 운영 등 사업을 하던 회사 4곳이다. 아이큐어 관계자는 "연구 성과가 나지 않고 이익 발현이 어렵다고 판단되는 곳들을 정리하는 것"이라며 "모회사 역량을 한 곳에 모음으로써 효율성 개선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이큐어는 2018년 이후 줄곧 영업적자를 기록했고, 최근 2년간 매출마저 악화됐다. 손익구조 개선이 시급하다.
문제는 바이오 벤처의 이 같은 자구책이 임시방편에 불과하단 것이다. 한 바이오벤처 대표의 "R&D는 돈 없으면 못한다"는 말에서 알 수 있듯 바이오의 긴축재정이 지속되면 결국 국내 신약 파이프라인 경쟁력은 저하될 수밖에 없다.
정윤택 제약산업전략연구원 대표는 "바이오 회사들이 지금은 자금난을 극복하기 위해 인력비와 같은 고정비를 줄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지만, 사실 이는 오래 버틸 수 있는 방안이 아니고 장기적으로 기업, 나아가 산업에도 좋진 않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