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먹거리로 키우던 파이프라인을 포기하는 게 대표적이다. 2022년에만 총 21건의 임상 철회, 조기 중단 공시가 나왔다. 이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 파이프라인은 코로나19(COVID-19) 백신, 치료제 후보물질이다. 종근당, 크리스탈지노믹스, 셀리드, 대웅제약 등 10건에 달한다. 지놈앤컴퍼니, 박셀바이오, 엔지켐생명과학 등도 비주력 파이프라인을 정리했다. 각 기업은 비용을 효율적으로 쓰기 위한 선택과 집중이라 표현한다. 대부분 '비용 대비 기대효익이 낮다'는 근거를 내세웠다.
인력 구조조정 역시 빈번히 이뤄지고 있다. 진단키트 업체 씨젠은 2022년 3월 말 인원이 1187명이었지만 9월 말 1053명으로 11% 줄였다. 한 바이오 회사 대표는 "연초 인력을 20명 추가하려고 계획을 세웠지만, 하반기 상황을 보니 위험하단 판단이 들어 채용에 나서지 않았다"고 말했다.
바이오 전문 벤처캐피탈(VC) 관계자는 "지금 인력 구조조정이 상시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며 "월급이 1~2개월 밀려서 직원들이 먼저 회사를 관두기도 하고, 회사에서 퇴사를 설득하기도 하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설비, 건물 등 자산을 팔거나 출장비 등 경비를 줄여 자금 여력을 키우는 사례도 많다. 파이프라인, 인력을 줄이는 것보다 상대적으로 쉽다는 판단에서다. 다른 바이오 회사 대표는 "인건비를 줄이는 게 쉽지 않다 보니 R&D 비용만 남기고 회식비, 출장비 등 경비를 줄이고 있다"고 말했다.
신약 개발 기업은 아니지만 헬스케어 기업인 케어랩스는 본사로 쓰던 서울 강남 건물과 토지를 매각해 950억원을 확보했다. 지난해 매출 감소, 순적자 전환을 겪은 만큼 손익구조를 개선하기 위해서다.
아예 비주력 사업을 정리하는 기업도 나왔다. 아이큐어는 2022년 하반기 지분 투자한 회사 4분의 1에 대한 청산에 나섰다. 화장품 판매, 구독 플랫폼 운영 등 사업을 하던 회사 4곳이다. 아이큐어 관계자는 "연구 성과가 나지 않고 이익 발현이 어렵다고 판단되는 곳들을 정리하는 것"이라며 "모회사 역량을 한 곳에 모음으로써 효율성 개선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이큐어는 2018년 이후 줄곧 영업적자를 기록했고, 최근 2년간 매출마저 악화됐다. 손익구조 개선이 시급하다.
문제는 바이오 벤처의 이 같은 자구책이 임시방편에 불과하단 것이다. 한 바이오벤처 대표의 "R&D는 돈 없으면 못한다"는 말에서 알 수 있듯 바이오의 긴축재정이 지속되면 결국 국내 신약 파이프라인 경쟁력은 저하될 수밖에 없다.
정윤택 제약산업전략연구원 대표는 "바이오 회사들이 지금은 자금난을 극복하기 위해 인력비와 같은 고정비를 줄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지만, 사실 이는 오래 버틸 수 있는 방안이 아니고 장기적으로 기업, 나아가 산업에도 좋진 않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