뭉칫돈 몰리다 '천덕꾸러기' 신세…"바이오도 원죄 있다" 쓴소리

머니투데이 정기종 기자, 김도윤 기자 2023.01.03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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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기획]미래산업? 바이오 생태계 무너진다…해법은②

편집자주 바이오가 흔들린다. 시장가치는 급락했고 자본시장에서 천덕꾸러기로 전락했다. 시장에 돈이 돌지 않는다. 특히 생태계의 한 축인 바이오벤처는 극심한 유동성 위기에 노출됐다. 직원 월급이 밀리고 자산을 팔고 급기야 법인을 청산하는 사례도 나온다. 글로벌 바이오 시장은 주도권 다툼이 더 치열해지고 있다. 산업의 뿌리인 기술 벤처가 살아야 바이오가 산다. 새해 바이오벤처는 다시 미래산업의 총아로 우뚝 설 수 있을까.

뭉칫돈 몰리다 '천덕꾸러기' 신세…"바이오도 원죄 있다" 쓴소리


"요즘 바이오의 가치 평가는 일단 반 토막 나고 시작한다. 그래도 선뜻 투자하기 쉽지 않다."(바이오 전문 투자회사 임원 A씨)

A씨의 이 같은 한탄은 최근 투자 업계에서 바이오의 입지가 어떤지 대변한다. 불과 2020~2021년만 해도 바이오란 간판만으로 상장·비상장을 가리지 않고 투자 시장에서 귀빈 대접을 받았다.



지금은 격세지감이다. 연구를 위한 자금 조달은커녕 당장 직원들 월급을 못 줄까 걱정하는 기업이 줄을 잇는다.

매년 늘던 바이오 신규 투자, 2022년 전년대비 27%↓
한국벤처캐피탈협회에 따르면 2022년 3분기까지 벤처캐피탈(VC)의 바이오 신규 투자금액은 8987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27% 감소했다.



벤처캐피탈의 바이오 신규 투자 규모는 꾸준히 증가했다. 2018년 8417억원, 2019년 1조1033억원, 2020년 1조1970억원, 2021년 1조6770억원이다. 2022년 바이오의 투자 매력이 얼마나 떨어졌는지 실감할 수 있다.

2022년 투자 업계의 바이오 외면은 여러 복합적 요인이 작용한 결과다. 바이오는 2015년 한미약품의 대형 기술수출로 투자 업계에서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후 지속 성장할 차세대 산업으로 부각됐고, 코로나19(COVID-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과 맞물려 기대감이 증폭됐다.

이 과정에서 일부 기업의 연구 실패 사례와 경영진의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 내부통제 문제가 불거지며 시장의 신뢰를 잃었다. 여기다 팬데믹 시기 급격하게 치솟은 기업가치에 대한 고평가 우려가 고개를 들었다.


더구나 미국발 금리인상으로 자본시장이 경색되자 대표적 고위험 투자 분야로 꼽히는 바이오가 가장 먼저 직격탄을 맞았다. 기업가치는 급락했고, 투자자들은 막대한 손실에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김재준 미래에셋벤처투자 전무는 "국내 바이오벤처는 미래 산업으로 고평가를 받다 경기 침체와 맞물려 장밋빛 기대감이 수그러들며 투자 유치가 어려워졌다"며 "일부 기업의 부정적 행태를 보며 '바이오는 다 사기 아니냐'란 인식이 팽배해졌고, 실적을 내는 다른 업종의 기업가치까지 폭락하는 과정에서 기대감이 사라진 바이오의 투자 매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바이오 IPO 험난…회수시장 얼어붙었다
바이오에 투자하기 어려운 배경으로 투자금 회수가 어려운 시장 환경을 빼놓을 수 없다. 엑시트(투자금 회수)가 어렵다보니 투자 업계에서 '황금알을 낳는 거위' 대접을 받던 바이오는 어느새 '미운 오리 새끼'가 됐다.

2022년 IPO(기업공개) 시장에서 바이오는 철저하게 외면받았다. 2022년 IPO에 도전한 바이오기업 대다수가 원래 기대했던 수준보다 훨씬 낮은 기업가치를 책정해도 공모 시장에선 손을 내밀지 않았다. 한국거래소의 상장 심사를 통과하기도 어려운 상황에서 공모 시장의 저조한 투자 수요 때문에 상장을 연기한 기업도 여럿이다. 그나마 업계에서 경쟁력을 인정받는 일부 바이오가 울며 겨자먹기로 몸값을 대폭 낮춰 코스닥 입성에 성공했다.

올해 신규 상장 바이오 중 공모 흥행에 성공한 사례는 찾기 힘들다. 그나마 상장에 성공한 샤페론, 루닛, 선바이오는 수요예측 경쟁률이 한 자릿수에 머물렀다. 에이프릴바이오는 14.43대 1, 보로노이는 28.35대 1이다.

그마저도 IPO에 나선 대부분의 바이오가 희망공모가밴드 범위 하단보다 적게는 20%에서 많게는 50%까지 낮은 가격으로 공모가를 확정했다. 일부 기업은 비상장 시절 장외에서 인정받은 기업가치보다 낮은 밸류에이션으로 상장했다. 일부 투자기관은 투자한 바이오가 상장했는데도 손에 남는 수익이 없는 셈이다.

새해 전망도 밝지 않다. 미국 10대 투자은행 중 8곳이 내년 경기침체를 전망했다. 미국 중앙은행 연방준비제도(Fed)가 새해에도 기준금리 인상 기조를 강조하며 긴축 장기화를 예고했다. 국내에선 기대를 받던 모태펀드 예상 증액이 무산됐다. 바이오의 대표적 상장 수단인 기술특례 요건 체계 개편이란 변수도 있다.

이 때문에 후속 투자를 받지 못하면 생존을 장담할 수 없는 바이오가 벼랑 끝에서 탈출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 살기 위해 파이프라인 축소부터 구조조정까지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결국 운영자금 없인 단기 방편일 뿐이다.

최용석 아주IB투자 상무는 "무엇보다 회수가 잘 돼야 투자하는 입장에서 새로운 딜(거래)도 볼 텐데 지금처럼 바이오가 상장하기 어려운 환경이 지속되면 바이오벤처 자금경색은 나아지기 힘들다"며 "다만 최근엔 각 파이프라인에 대한 가치평가를 보다 객관적으로 한다든지, 기술 경쟁력을 갖춘 기업 위주로 상장한다든지 하는 변화가 나타나고 있기 때문에 향후 시장 분위기가 살아난다면 연구 역량이 있는 바이오벤처는 숨통이 트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승호 데일리파트너스 대표는 "최근 벤처들의 어려운 분위기는 꼭 특정 업종에 국한된 건 아니지만 바이오만 놓고 봤을 때 분명 원죄가 존재한다"며 "상장했던 바이오기업이 불미스럽게 상장폐지되거나, 기대를 모았던 파이프라인의 임상 실패, 횡령 사태 등이 누적되면서 투자자 신뢰를 훼손한 점이 투자 업계의 외면을 받는 한 이유"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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