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그나마도 용두사미가 됐다. 국회를 통과한 최종 설비투자 세액공제율은 대기업과 중견기업 8%, 중소기업 16%. 중견·중소기업 세액공제율은 그대로 둔 채 대기업만 2%p 높인 것이다. 여당안을 '재벌 특혜'라며 반대했던 야당안 대기업 10%, 중견기업 15%, 중소기업 30% 보다도 낮은 수준이다. 기대보다 턱없이 낮은 공제율로 합의가 된데는 기재부의 세수 감소 우려가 컸다고 한다. 여당안대로 통과되면 2024년 법인세 세수가 2조6970억원 줄고 이후로는 감소폭이 더 커질 것이라는 주장을 폈다.
나라 곳간을 지키는 기재부 입장에선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논리에만 머물러선 진짜 필요한 곳, 국가 경제를 살찌우는 데 재정을 쓰지 못하게 된다. 당장의 세수 감소 때문에 핵심 산업 지원을 못한다는 건 법인세 인하를 내건 이번 정부의 기조와도 맞지 많다. 세금 부담을 줄여 기업들이 더 많은 돈을 벌도록 해 더 큰 세수로 돌아오게 한다는 게 법인세 인하의 철학 아닌가.
세상의 변화를 보지 못하는 건 국회도 마찬가지다. 아직도 대기업 지원을 마치 민생에 반하는 일로 간주하는 인식이 있다. 민생 예산을 확보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법인세 인하를 받아들였다는 식이다. 과연 대기업이 잘 되고 투자가 늘어나게 하는 것이 '반 민생'인가. 대규모 반도체 투자가 이뤄지면 그 자체로 생산과 부가가치, 일자리가 생긴다. 여기에 설비, 부품, 소재를 공급하는 기업들의 추가 투자가 이뤄지면서 거대한 반도체 생태계가 함께 만들어진다. 삼성전자가 20조원을 투자해 미국 테일러시에 새 반도체 파운드리 공장을 세우겠다고 발표하자, 소재 협력사인 솔브레인과 동진쎄미켐이 서둘러 미국 진출을 검토하고 있다.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고, 전후방 산업을 일으키는 것 만큼 민생에 도움되는 게 있을까.
대기업 지원만 하자는 게 아니다. 국민들의 어려운 살람살이를 직접 챙기는 것도 당연히 필요하다. 그래도 꼭 필요한 핵심 산업, 대통령이 강조하는 핵심 국정 과제에 대해선 적극적으로 지원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국가의 경쟁력이 생기고, 새 정부의 차별성이 나온다. 반도체 지원부터 다시 전향적으로 재검토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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