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초강대국' 달성을 내건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면서 분위기가 바뀌는 듯했다. 실제로 인프라 지원, 규제 특례, 인재 양성 등 각종 대책들이 쏟아졌다. 시설 투자 세액 공제율도 업계가 당초 요청했던 20~50%까진 아니어도 대기업을 기준으로 6%에서 20%로 확대하는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K-칩스법)이 여당안으로 채택됐다.
재정이 여유가 있을땐 대기업 특혜라 줄 수 없다고 하고, 어려우면 세수가 부족해서 안된다고 하니, 결국은 대기업 지원은 항상 안된다는 얘기다.
당장 미래산업의 핵심이라는 반도체 지원을 위해 경쟁국가들은 아낌없이 실탄을 투입하고 있다. 미국은 지난 8월 공포된 반도체과학법(칩스법)을 통해 설비투자하는 기업에 세액을 25% 감면해준다. 세액 공제 외에 반도체 생산과 관련된 보조금도 69조원에 달한다. 중국은 향후 5년간 현지 반도체 기업에 1조위안(약 183조3400억원)을 지원하는 패키지를 내년 1월 시행할 것으로 전망된다. 파운드리 세계 1위 TSMC가 있는 대만의 설비투자 세액공제율이 우리 보다 낮다는 기재부의 해명도 궁색하다. 우리의 투자 유치 경쟁 상대는 대만이 아니라 미국이기 때문이다. 미국이 반도체 배터리 바이오 등 주요 산업의 기업 투자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는 실정이다.
세상의 변화를 보지 못하는 건 국회도 마찬가지다. 아직도 대기업 지원을 마치 민생에 반하는 일로 간주하는 인식이 있다. 민생 예산을 확보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법인세 인하를 받아들였다는 식이다. 과연 대기업이 잘 되고 투자가 늘어나게 하는 것이 '반 민생'인가. 대규모 반도체 투자가 이뤄지면 그 자체로 생산과 부가가치, 일자리가 생긴다. 여기에 설비, 부품, 소재를 공급하는 기업들의 추가 투자가 이뤄지면서 거대한 반도체 생태계가 함께 만들어진다. 삼성전자가 20조원을 투자해 미국 테일러시에 새 반도체 파운드리 공장을 세우겠다고 발표하자, 소재 협력사인 솔브레인과 동진쎄미켐이 서둘러 미국 진출을 검토하고 있다.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고, 전후방 산업을 일으키는 것 만큼 민생에 도움되는 게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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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지원만 하자는 게 아니다. 국민들의 어려운 살람살이를 직접 챙기는 것도 당연히 필요하다. 그래도 꼭 필요한 핵심 산업, 대통령이 강조하는 핵심 국정 과제에 대해선 적극적으로 지원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국가의 경쟁력이 생기고, 새 정부의 차별성이 나온다. 반도체 지원부터 다시 전향적으로 재검토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