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하면 멈춰"... 작업중지권 도입 늘어난다

머니투데이 유엄식 기자 2023.01.06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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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은 현장경영이다-건설현장 이것만은 고치자]⑤건설업계 '작업중지권' 손실 커도 적극 활용 독려

울 강동구 둔촌주공아파트 재건축 현장(올림픽파크포레온) 전경. /사진제공=뉴스1울 강동구 둔촌주공아파트 재건축 현장(올림픽파크포레온) 전경. /사진제공=뉴스1


"위험한 작업은 서두르지 않아도 됩니다, 일단 멈추세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에 맞춰 국내 대형 건설사들은 현장 근로자에게 '작업중지권'을 부여하는 추세다. '작업중지권'은 현장 근로자 중 누구라도 안전하지 않다고 판단되면 작업을 중지시킬 수 있는 '권리'다. 현장 상황을 가장 잘 아는 근로자들에게 1차적인 안전관리 권한을 일부 위임한 것이다.

하지만 작업중지권은 기업 입장에선 부담스러운게 사실이다. 건설 현장 특성상 '연속 공정'이 필요한 경우가 많은데, 작업이 자주 끊기면 그만큼 공기가 늘어 공사비 부담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건설사들은 이런 손실을 감내하고 오히려 작업중지권을 적극 활용하라고 근로자들을 독려하고 있다.



작업중지권 근로자 만족도 높아...안전신문고, 불시 점검 등 사고관리 총력
5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작업중지권을 도입하는 건설사들이 늘어나고 있다. '작업중지권'은 산업안전보건법(52조)에 근거 규정을 두고 있지만 공식 운용하지 않아도 법적인 제제는 없다.

하지만 국내 시공능력 10위 대형 건설사는 모두 현장에서 근로자 작업중지권을 보장한다. 2020년 11월부터 작업중지권 제도를 도입한 현대건설은 일용직근로자까지 권한을 확대했다. GS건설과 롯데건설은 2020년 1월부터 포스코건설, 삼성물산, 대우건설, 현대엔지니어링, DL이앤씨 등은 2021년 1~3월부터, HDC현대산업개발과 SK에코플랜트는 2021년 11월부터 현장에 작업중지권을 도입했다.



현장에서 활용도 늘어나고 있다. 삼성물산이 작업중지권 도입 이후 1년 6개월 간 사용 현황을 조사한 결과, 국내외 103개 현장에서 총 1만1670건의 작업중지권을 활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월평균 650여 건 발동된 셈이다.

가장 많은 유형은 가설 통로의 단차에 따른 전도 위험으로 전체 23%인 2692건에 달했다. 이어 △상층부와 하층부 동시작업이나 갑작스러운 돌풍에 따른 낙하물 위험 2225건(19%) △작업구간이나 동선이 겹쳐 장비 등 출동 가능성 2076건(18%) △추락 관련 안전조치 요구 2026건(17%) 등으로 뒤를 이었다. 이밖에 무더위나 기습폭우 등 급변한 기후를 고려한 작업중지 요구도 있었다.

작업중지권을 통해 사고 위험을 미연에 방지한 사례도 있다. 지난해 8월 화성 건축 현장에서 토사 상차작업을 진행하던 트럭 운전원이 덤프트럭 정지 장소가 급경사여서 위험하다고 작업중지를 신청했다. 서울 한 재건축 아파트 현장에선 토목 협력업체 소속 근로자가 토사 굴착구간에 접근금지 및 추락방지용 구획이 설정돼 있지 않아 작업중지를 신청했고 즉시 토사라이크를 보강하고 접근금지 조치를 시행했다. 울산 플랜트 현장에서 작업 중이던 한 근로자는 수직 생명줄 미설치를 이유로 작업중지권을 행사했다.


근로자들의 만족도는 높다. 회사가 근로자 1000명을 대상으로 실사한 설문 조사 결과, 긍정 평가 응답자가 67.8%였고, 향후 작업중지권을 사용할 의향이 있다는 응답률이 71.3%에 달했다. 작업중지권 사용 경험이 있는 근로자 204명 중 1시간 이내 조치가 완료됐다는 응답률이 72.5%였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사고가 우려되는 급박한 위험이 있는 경우가 아니어도 근로자가 잠정적인 위험이 있다고 판단하면 작업중지권을 쓸 수 있도록 보장하는 추세"라며 "작업 시간이 좀 더 지연되더라도, 인명피해가 우려되는 사고 가능성을 낮추는 게 중요하다는 인식이 자리잡힌 분위기"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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