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 국가에 '트리'라니"…달라진 사우디 보여준 크리스마스 풍경

머니투데이 윤세미 기자 2022.12.27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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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외신에 소식이 자주 눈에 띈 국가 중 하나는 사우디 아라비아다. 중동의 석유 강국인 사우디는 미국과도 일정 거리를 두는 '독자 외교'를 펼치고, '비전2030' 프로젝트 아래 네옴시티 사업을 비롯해 다양한 변화를 꾀해 국내에서도 주목받는다. 이슬람 보수주의 국가인 사우디의 올해 크리스마스 풍경은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 주도의 이런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올해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트리와 북극곰 등으로 장식된 리야드 파크몰의 모습/사진=트위터올해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트리와 북극곰 등으로 장식된 리야드 파크몰의 모습/사진=트위터


26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가디언 등 외신에 따르면 사우디 수도 리야드 쇼핑센터는 반짝이는 조명으로 장식된 크리스마스 트리와 오두막, 북극곰이 진열돼 쇼핑객들의 눈길을 잡았다. 카페에선 서양의 크리스마스 전통 음식 중 하나인 진저브레드 쿠키가 판매됐다.



사우디의 유력 일간지인 아랍뉴스는 역사상 처음으로 성탄절 특별판을 발행했다. 여기엔 크리스마스 저녁 만찬을 위해 칠면조 요리를 즐길 수 있는 식당을 추천하는 글도 포함됐다. 편집장인 파이살 압바스는 "늦는 게 안 하는 것보다 낫다"며 사우디의 변화를 환영했다.

리야드에 사는 레바논인인 알리아 오바이디는 가디언 인터뷰에서 "지난 몇 년은 크리스마스 트리를 사려면 시장에 가서 인도 상인과 몰래 접촉해 박스 안에 숨겨 집으로 가져와야 했다"면서 "올해엔 분명한 변화를 체감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제 사우디에서도 크리스마스를 안전하게 즐길 수 있게 됐다"며 "정말 큰 변화"라고 말했다.



사우디는 세계에서 가장 폐쇄적이고 보수적인 나라 중 하나로 꼽힌다. 사우디 내 거의 모든 기독교인은 외국인이며 이슬람 외에는 어떤 형태의 다른 예배를 허용하지 않는다. 하지만 올해는 기독교 행사인 크리스마스에 공개적으로 축제 분위기를 즐길 수 있는 단계에 다다를 만큼 분위기가 바뀌었다는 분석이다.

한 사우디 주민은 FT 인터뷰에서 "크리스마스를 기념하는 건 젊은이들이나 해외에서 공부한 이들이 대다수"라면서 "특히 꼬마들이 축제 분위기를 좋아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확실히 보수주의 분위기가 약해지는 것 같다"며 "과거에는 발렌타인데이가 되면 꽃가게가 문을 닫는 식이었다면 이제는 크리스마스를 즐기는 분위기가 됐다"고 말했다.

10월 사우디 리야드에서 열린 할로윈 기념 행사/사진=트위터10월 사우디 리야드에서 열린 할로윈 기념 행사/사진=트위터
사우디 변화의 중심에는 빈 살만 왕세자가 있다. 그는 2016년 사회·경제 개혁·개방 프로젝트인 '비전2030'를 발표한 뒤 사우디의 탈석유 경제 정책과 사회 변화를 추진했다. 여성의 축구 경기장 입장이나 자동차 운전을 허용하는 등 여성에 대한 억압 정책도 폐지했다. FT는 사우디가 최근 서구 인재와 기업, 관광객 유치에서 자유로운 생활 방식을 허용하는 아랍에미리트(UAE) 등과의 경쟁이 심화하면서 세계를 향해 보다 관용적인 국가로 변모하고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 이런 변화를 과시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사우디 내에선 이런 분위기를 반대하는 보수주의자들도 적지 않다. 지난 10월 말엔 수도 리야드에서 코스튬 의상을 착용한 시민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행사가 열렸다가 사우디 전역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들끓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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