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로 풀어낸 영국 민주주의 100년사[서평]

머니투데이 김수빈 에디팅 디렉터 2023.01.15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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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DO] 북리뷰

편집자주 좋은 서평은 그 자체로 책 한 권 같습니다. 그렇다면 아직 국내에 소개되지 않은 책의 서평을 읽어보는 건 어떨까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미처 국내에 출간되지 않은 양서도 많으니까요. 그래서 PADO는 한국에 출간되지 않은 책들 위주의 서평을 소개합니다. 그 첫 번째 책은 영국 민주주의 100년사를 '공포'란 키워드로 풀어낸 필 틴라인의 <컨센서스의 죽음>입니다. 정치철학자 존 그레이가 100년 전통의 영국 주간지 뉴스테이츠먼(New Stateman)에 2022년 6월 기고한 서평을 뉴스테이츠먼과의 협약 하에 전문(全文) 번역으로 소개합니다.

(로이터=뉴스1) = 14일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영구가 영국 런던 버킹엄궁에서 웨스트민스터 사원으로 운구되고 있다. ⓒ 로이터=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로이터=뉴스1) = 14일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영구가 영국 런던 버킹엄궁에서 웨스트민스터 사원으로 운구되고 있다. ⓒ 로이터=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바버라 캐슬이 영국 민주주의 역사상 가장 높은 직위를 가진 여성이 되던 날, 그는 이렇게 썼다. '난 아무런 환상도 없다. 어쩌면 나는 정치적 자살을 기도하는지도 모른다.'"
1968년 영국 노동당의 해럴드 윌슨 총리는 캐슬을 고용 및 생산성 담당 장관으로 임명했다. 캐슬의 임무는 임금과 물가 통제 의무를 부과하면서도 노조와 노동당이 받아들일 수 있는 노동 개혁을 이루는 것이었다. 자신의 일기에서 캐슬은 만일 양측이 합의에 도달하지 못할 경우 "향후 20년간 영국에서 사회민주주의가 집권할 일은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노사 간의 협상은 몇개월째 질질 끌고 있었고 캐슬은 노사관계의 근본적 개혁이 필요하다는 확신을 품었다.

1969년 초, 캐슬은 <대립을 넘어서(In Place of Strife)>라는 백서를 출간했다. 노동조합을 법의 테두리 안으로 끌어들이는 게 의도였기에 백서는 파업을 투표로 결정하도록 하고 숙려 기간을 의무화하는 등을 제안했다. 노동조합, 좌파, 자유시장주의 우파들의 공격을 받아 캐슬의 제안은 보류됐다. 캐슬은 다겐험 포드(Dagenham Ford) 공장에서 발생한 여성 재봉 노동자 파업을 중재한 후 1970년 동일임금법(Equal Pay Act)을 도입함으로써 역사에 이름을 남길 수 있었다. 하지만 노동당 차기 리더로서의 캐슬의 경력은 끝나버렸다. 캐슬은 윌슨 내각 2기에 참여할 수 있었지만 숙적이었던 제임스 캘러헌이 1976년 윌슨의 후임으로 총리직에 올랐고, 캘러헌은 대뜸 캐슬을 잘랐다. 캐슬이 권력의 정점에 가장 가까웠던 마지막 순간이었다.



캐슬은 92세까지 장수했는데(1910~2002) 자신의 예리한 지성으로 노동당 주류 관점의 허점을 지적하며 여생을 보냈다. 노동당이 향후 20년간 집권을 못 하리라는 캐슬의 경고는 역사가 입증한다. 1979년 마거릿 대처가 승리한 이래 보수당은 1997년까지 집권을 이어 나갔다. 노동당의 토니 블레어와 고든 브라운은 대처의 정책을 계승하면서 2010년까지 집권할 수 있었다. 2000년 2월 <뉴스테이츠먼>과의 인터뷰에서 캐슬은 새로운 노동당 노선이 "시장경제, 세계화, 다국적기업의 지배"를 수용한 데 대해 신랄하게 비판했다.

본래 바버라 벳츠(Barbara Betts)였다가 1944년 노동당 정치인이자 언론인인 테드 캐슬과 결혼하면서 남편의 성을 따르게 된 바버라 캐슬은, 영국 정치의 백년사를 다룬 필 틴라인(Phil Tinline)의 책 <컨센서스의 죽음: 영국 정치의 악몽 100년>의 초반부에서 매우 중요한 인물로 다루어진다. 캐슬은 노사 관계에서 상상하기 어려운 변화가 있을 것이며 그것을 피하기란 불가능하다는 것을 직감했지만 그런 변화는 시행될 수 없었다. 주류의 컨센서스를 위반하기 때문이었다. 노조는 자신을 규제하려는 그 어떤 시도도 전간기(戰間期) 유럽 전체주의로 향하는 움직임으로 간주하고 있었다. 캐슬의 개혁은 악몽의 힘에 가로막혀 버렸다. 10년 후, 컨센서스가 무너지고 대처가 총리 자리에 올랐다.



저자가 보기에 컨센서스란 그 자체로 특별히 도움이 되는 발상은 아니다.

"컨센서스의 시기란, 적어도 무엇을 거부할 것인지에 대한 합의가 존재하는 시기로 규정할 수 있다. 현대 영국이 경험했던 지난 컨센서스의 시기는 (정당의 입장차를 불문하고) 적자 예산, 대규모 실업, 인플레이션, 파업 같은 것들은 있을 수 없다는 공통의 이해를 기반하고 있었다. 이런 것이 정치적으로 가능한 일의 한계선을 긋고 있었다. 이를 받아들인 동기는 사람마다 제각각이었다. 누군가에겐 신념, 공감, 또는 개인적 경험에서 비롯된 상처였지만 또 누군가에겐 그저 정치 커리어를 쌓기 위한 것이었다. 이런 컨센서스의 시대는 불편한 타협에 더 가까웠다… 그래서 오래 지속될 수 없었다."

정치에서 컨센서스는 결코 완전하지 않고 늘 갈등을 품고 있어, 어두운 미래가 현실적인 전망으로 다가오면 (또는 그럴 것처럼 보이면) 깨지기 일쑤다. 이런 악몽이 정치가, 언론, 유권자의 상상력을 움켜쥐면서 정치적으로 가능한 것들의 한계선은 변한다.

<컨센서스의 죽음> 표지/사진=C Hurst & Co<컨센서스의 죽음> 표지/사진=C Hurst & Co
BBC 다큐멘터리 시리즈 <다큐멘트(Document)>로 수상 경력이 있는 라디오 프로듀서 틴라인은 영국 정치사를 1931년부터 1945년, 1968년에서 1985년, 2008년에서 2022년까지 세 시기로 나누어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첫 번째 파트는 좋아하던 커스터드 크림 때문에 사경을 헤맸던 미래의 총리 해럴드 윌슨의 일화로 시작된다. 윌슨은 1916년 허더스필드 인근의 밀스브릿지(Milnsbridge)라는 "좁아터진 작은 공단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는 1934년 옥스포드에 합격했는데 까딱하면 대학에 들어가기도 전에 죽을 뻔했다. 1930년 9월, 윌슨은 한 보이스카우트 행사에 참여했다가 오염된 우유를 사 마셨고 장티푸스균에 감염됐다. 이 우유로 병에 걸린 사람은 윌슨 말고도 11명이 더 있었는데 그들 중 6명은 죽었다.


매일 저녁 공중전화로 병원에 전화를 걸어 소식을 확인하던 윌슨의 가족들에게 그 경험은 "불안의 악몽"과도 같았다. 하지만 대량 실업이라는 더 큰 악몽이 닥쳐왔다. 아들의 상태가 호전되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산업화학자였던 해럴드의 아버지 허버트는 해고돼 영국의 250만 실업자 대열에 합류했다. 만약 18개월의 실직 기간을 거친 후 허버트가 다시 일자리를 얻지 못했다면 해럴드는 열여섯의 나이로 학교를 그만둬야 했으리라. 대학은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며 삼촌의 우산 공장에 일하러 가야 했을지도 모른다.

최초의 컨센서스 붕괴는 대공황기, 빅토리아 시대의 정통파 경제학이 침몰하면서 일어났다. 고전파 경제학은 자유 시장을 그냥 내버려 두기만 하면 무해한 균형 상태로 되돌아간다고 여겼다. 윌슨 가족의 지역구 의원이자 노동당 정부 재무장관이었던 필립 스노든도 이러한 믿음을 공유하고 있었다. 임금, 세금, 정부 지출의 삭감만이 공황을 빠져나갈 유일한 방법이었다. 그리하여 이미 재앙적이었던 상황은 더욱 악화했다.

다른 이들은 다른 처방을 가지고 있었다. 자유당의 전임 총리인 데이비드 로이드 조지는 긴급 공공근로 사업을 촉구했다. 보수당의 스탠리 볼드윈과 네빌 체임벌린은 보호무역주의를 선호했고, 해럴드 맥밀런은 존 메이너드 케인스의 추종자였다. <고용, 이자, 화폐에 관한 일반이론>(1936)에서 케인스는 시장이 스스로 안정을 찾는다는 고전 이론을 박살 냈다. 하지만 노동당에겐 과거와의 단절을 꾀하는 그 어떤 시도도 금기였다. 2차 세계대전으로 완전고용이 달성되어서야 새로운 컨센서스가 받아들여질 수 있었다.

두 번째 파트는 2차 세계대전 이후의 컨센서스가 1960년대와 1970년대의 산업 투쟁을 겪으며 어떻게 무너지기 시작했는지 다룬다. 이는 바버라 캐슬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세 번째 파트는 대처주의 컨센서스의 파국을 다루는데 이는 2008년 금융 위기로 비롯돼 코로나19 펜데믹의 후폭풍을 겪고 있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눈길을 사로잡는 디테일로 가득 찬 <컨센서스의 죽음>은 근래 영국 정치를 다룬 서적 중 매우 독창적이고 재미있는 책이다. 저자는 악몽들이 서로 경쟁하는 모습을 통해 영국 정치사를 설명하는데 매우 설득력 있다. 정치란 단지 이해관계와 이념이 충돌하는 장이 아니다. 보다 나은 미래의 꿈, 그리고 (보다 많은 경우) 재앙과 폐허의 꿈이 충돌하는 장이기도 하다. 이러한 꿈들이 역사를 어떻게 주조하느냐는 당대 정치의 주연 배우들이 어떤 길을 택하느냐(또는 그 길 외에 다른 선택지를 찾지 못하는가)에 따라 달라진다.

만약 노동당이 캐슬의 백서 <대립을 넘어서>를 받아들였다면 역사는 분명 다르게 흘러갔을 것이다. 신자유주의가 한 세대 넘도록 보수당을 지배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며 토니 블레어의 신노동당은 아예 태어나지도 못했으리라. 물론 그랬더라도 중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 세계화와 시장 세력이 계속 발전하면서 영국의 전후 컨센서스를 흔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 대한 영국의 정치적 대응은 훨씬 부드럽고 정교했을 것이다. 심지어 대처가 총리가 되었다 하더라도, 신(新)빅토리아적 도덕관에 사회 파괴적인 자유시장을 파괴적으로 결합한 '대처주의' 따위가 탄생하진 않았을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1980년대는 SF소설의 소재 정도가 되었을지 모른다.

마거릿 대처는 1979년 보수당 최초로 여성 영국 총리가 된 후 11년 이상 재임한 최장수 총리가 됐다. 사진은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에서 열린 전시회에서 공개된 대처 총리의 패션 소장품. 2022.12.31/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마거릿 대처는 1979년 보수당 최초로 여성 영국 총리가 된 후 11년 이상 재임한 최장수 총리가 됐다. 사진은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에서 열린 전시회에서 공개된 대처 총리의 패션 소장품. 2022.12.31/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대처주의를 자본주의적 근대화 과정에서 불가피한 것으로 보는 유사 마르크스주의적 관점은 우파 싱크탱크들 사이에서 오랫동안 번성했는데 이는 허깨비에 지나지 않았다. 한편으로 노동당이 캐슬의 개혁안을 수용하는 것 또한 어려운 일이었다. 그랬다면 준비도 안 된 상태에서 노조와 전쟁을 벌여야 했기 때문이다. 만일 영국 산업의 교착상태가 깨진다면 그것은 보수당이 해야 할 일이었다. 한 악몽이 다른 악몽으로 옮아가는 이면에는 이런 논리가 깔려 있었다.

대처는 1979년 '불만의 겨울'이 끝난 후 권력을 잡았지만 대처주의의 컨센서스는 일련의 우연으로 견고하게 확립됐다. 1979년 보수당 매니페스토에는 민영화에 대한 언급이 영국운송공사(National Freight Corporation) 매각 공약 외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영국운송공사는 1982년 공사 노동자들에게 인수됐다. 매니페스토에는 자유 무역에 대한 언급이 없고 그저 "공정한 무역"에 대한 요구만이 있을 뿐인데, 이는 정부 개입의 여지를 크게 준다. 대처의 정책 중 가장 급진적이며 가장 유명한 것은 임대주택 세입자에게 그들이 사는 집을 시세보다 싸게 살 수 있는 법적 권리를 부여한 것이다. 승리로 끝났지만 얼마든지 재앙이 될 수 있었던 1982년의 포클랜드 전쟁과 수익의 대부분이 감세로 인한 재정 손실을 충당하는 데 사용된 북해 석유는 때때로 취약했던 대처의 권위를 굳히는 데 도움이 됐다. 전간기 전체주의가 돌아올 수 있다는 악몽은 전혀 현실화하지 않았다. 오늘날 신(新)대처주의자들은 영국이 1970년대로 돌아갈지도 모른다는 환영에 사로잡혀 있다.

1979년과 마찬가지로 영국 산업이 무정부상태에 놓이리라는 악몽은 야당에 호재로 작동한다. 과거 '불만의 겨울'에 비견되는 불만의 여름이 고조되고 있다. 노동당 주도의 정부 출범은 당연한 수순이다. 대처와 달리 키어 스타머(Keir Starmer)는 낡은 컨센서스를 고수할 요량이다. 토니 블레어의 신대처주의의 반복이 스타머의 목표인 듯하다. 보리스 존슨은 초기 대처주의 시절로 회귀하려는 것 같다. 정부 내 장관급 고위 인사가 반기를 들지 않는 이상 존슨은 다음 총선까지 보수당을 이끌 것이다. 어쩌면 2023년 조기 총선을 노리고 (앞서 발표했듯) 세입자의 임대주택 매입 권리를 확대하고 감세를 하는 구(舊)대처주의 어젠다를 밀어붙일 수도 있다. 이런 정책이 다음 총선에서 대패할 수 있다는 보수당 의원들의 공포를 잠재울 수 있을지는 의심스럽다. 선거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신자유주의 헤게모니는 계속 살아남을 것이다.

여기에 브렉시트의 아이러니가 있다. 대처를 숭상하는 자유시장주의자들이 이성적이었다면 유럽연합 잔류를 지지했을 것이다. 유럽연합은 지난 수십년간 자본과 노동의 흐름이 정치의 통제를 받지 않는 신자유주의적 구조로 형성됐고 그리하여 세계 최대의 자유시장이 됐다. 유럽연합의 기구들이 보다 민주적으로 개혁될 여지는 현실적으로 전혀 없었다. 영국 경제를 보다 집산주의적으로 관리하길 원했던 좌파들이야말로 유럽연합 탈퇴에 표를 던졌어야 했다.

저자가 피터 쇼어와 바버라 캐슬이 대변하고 있던 사회민주주의적 유럽회의주의 전통에 대해 보다 자세히 전하지 않는 점은 아쉽다. (캐슬은 나중에 1975년의 국민투표 결과를 수용하고 유럽의회의 의원이 됐다.) 브렉시트 논쟁에서 사민주의적 유럽회의주의의 논의가 전무했다는 사실은 안타깝다. 유럽연합 회원 자격 유지에 대한 일관성 있는 좌파적 대안의 토대가 됐을 것이기 때문이다. 존슨이 북아일랜드 협정을 어설프게 공격하면서 향후 노동당 정부가 들어서면 다시 유럽 단일시장에 참가할 가능성은 보다 커졌다. 40년 된 낡은 컨센서스가 이례적으로 수명을 더 연장하게 되는 것이다.

브렉시트는 영국을 위한 새로운 정치경제를 빚어내야 한다는 요청이었다. 그러나 영국의 정치 계급은 이를 거부했다. 진보 성향 보수당원과 보수 성향 노동당원들은 공통의 생활 양식과 매개자적 제도를 만들어 시장국가를 대체할 수 있다고 여겼다. 하지만 이들은 각자의 정당에서 소수파에 지나지 않았고 이들 사이에서도 자유주의 이후의 어젠다가 무엇인가에 대해 견해가 엇갈렸다. 그리고 닥쳐온 코로나19 팬데믹은 정부가 전체주의적 봉쇄 명령을 내리는 상황과 영국 보건 시스템이 과부하로 무너지는 상황을 택해야 하는 (저자의 표현을 빌자면) "새로운 악몽의 선택지"를 가져왔다. 영국이라는 국가가 향후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느냐에 대한 질문에 대한 답은 여전히 공백으로 남아 있다.

신자유주의적 컨센서스를 극복하기 전까지 향후 더 큰 위기가 발생하리라는 것은 필연적이다. 날로 깊어가는 우크라이나 전쟁의 영향 때문이 될 수도 있고, 다른 어딘가에서 발생할 대규모 군사적 충돌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영국 정치는 여전히 같은 악몽에 사로잡혀 있다. 바버라 캐슬에게 이런 경험은 그리 낯선 게 아니리라.

- 원문: The Death of Consensus: the recurring nightmares of British politics (The New Statesman)
- 번역: 노정태, 편집: 김수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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