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들 '정신건강'도 챙기는 日기업…"매년 근로자 스트레스 검사"

머니투데이 도쿄(일본)=조규희 기자 2023.01.02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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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기획] 안전은 현장경영이다 1-③

편집자주 2022년 우리나라에선 1월 중대재해처벌법이 도입됐음에도 600명에 가까운 소중한 생명이 일터에서 사라졌다. 처벌만으론 근로자들의 생명과 안전을 지킬 수 없다. 윤석열 정부가 민간 주도의 '위험성평가' 의무화를 추진하는 이유다. 이 제도를 통해 일본은 사망사고율을 100만명 중 15명까지 끌어내렸다. 법·제도를 넘어 문화와 인식을 통해 '안전 대한민국'으로 가는 길을 찾아보자.

도쿄도 미나토구에 위치찬 일본 중앙노동재해방지협회(JISHA)에서 관계자들이 근로자 스트레스 검사 제도와 위험성 평가 제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사진=조규희 기자 도쿄도 미나토구에 위치찬 일본 중앙노동재해방지협회(JISHA)에서 관계자들이 근로자 스트레스 검사 제도와 위험성 평가 제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사진=조규희 기자


직원들 '정신건강'도 챙기는 日기업…"매년 근로자 스트레스 검사"
일본 기업들은 근로자들의 신체 건강뿐만 아니라 '마음'도 관리한다. 일본 정부는 5년 전부터 근로자의 스트레스 검사 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50인 이상 기업의 모든 근로자가 대상이 되며 1년에 한 번 검사를 받아야 한다.

지난해 12월 21일 도쿄 미나토구에 위치한 일본 중앙노동재해방지협회(JISHA) 사무실을 찾아 근로자의 정신 건강까지 보살피는 일본의 산업안전 정책에 대해 물었다. JISHA는 노동재해방지단체법에 따라 1964년 설립된 민간재해 방지 단체로, 위험성평가 등 보급 및 산업 안전보건 경영 시스템 구축 사업장의 인증, 안전 교육 연수 등을 수행한다.



카와시마 타카노리 JISHA 기술지원부 전문역은 "근로자 스트레스 검사는 50인 이상 기업을 대상으로 1년에 한 번 실시되며 후생노동성의 57개 공통 질문에 기업별 질문을 추가할 수 있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카와시마 전문역은 "어느 정도 모범 답안 표준안이 정해져 있어 근로자의 정신 건강 상태를 비교적 객관적으로 산출할 수 있다"며 "스트레스 결과에 따라 근로자는 산업 전문의와 면담을 진행한다"고 말했다.



일본은 스트레스 검사 이외에도 근로자가 정기적으로 받는 건강검진도 1차는 신체건강, 2차는 정신건강 등으로 나눠 진행한다. 사업체·공사현장 등의 작업 환경 안전뿐만 아니라 근로자의 '정신 안전'까지 확대하는 모습이다. 한국의 경우 국가건겅감진 항목에 '정신건강검사(우울증)'이 포함돼 있다. 다만 만 20세, 30세, 40세, 50세, 60세, 70세가 대상이며 검진 항목과 나이가 제한돼 있다.

한편 한국에서 올해부터 확대 추진하는 '위험성평가'와 관련해 규모·업종별로 여러 기업들이 활용할 수 있도록 정부의 관련 자료 공개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토키와 JISHA 기술지원부장은 "후생노동성에서 공개한 31년 자료에는 사망자와 관련해 시간, 장소, 사인, 업종 등이 자세히 적혀 있어 여러 기업이 자신에게 맞는 위험성평가를 실시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일본 후생노동성이 공개한 근로자 스트레스 검사 질문지(영어버전) 내용. /사진=조규희 기자 일본 후생노동성이 공개한 근로자 스트레스 검사 질문지(영어버전) 내용. /사진=조규희 기자
다음은 JISHA 기술지원부 카와시마 타카노리 전문역, 토키와 부장, 스미 키요시 차장 등 관계자의 일문일답

-근로자 스트레스 검사는 어떻게 진행되나.
▶후생노동성의 제12차 노동재해방지계획(2013~2017년)에 따라 직장 내 스트레스 검사 제도와 면접 지도를 확대 실시하고 소규모 사업장에 대한 정신 건강 지원 조치를 강화했다. 이에 따라 5년 전부터 50인 이상 기업의 모든 근로자가 스트레스 검사를 받는다.


-어떤 기준에 따라 근로자의 스트레스를 평가하나.
▶정답이 어느 정도 정해져 있다. 모범 표준안이 있고, 그에 따른 결과를 산출한다. 스트레스 기준치를 넘었거나 문제가 있으면 산업 전문의와 면담을 실시한다. 면담으로도 해결이 안 되면 산업의가 해당 근로자의 근무환경이 적합하지 않다고 기업 책임자에게 전달한다. 이 과정에서 부서 이동 조치 등이 발생하기도 한다.

-스트레스 검사 제도 의무 대상이 아닌 50인 미만 기업의 근로자에 대한 보호는 어떻게 하나.
▶후생노동성 등 중앙부처가 전국에 산업보험센터를 만들어 50인 미만 기업 근로자들에게 공적 서비스처럼 스트레스 검사 제도를 운용하고 있다.



-근로자가 정기적으로 받는 건강 검진도 '정신 건강'이 포함돼 있다고 들었다
▶법률적 의무는 아니지만, 대다수 기업에서 1차는 육체, 2차는 정신 건강을 체크하는 식으로 건강검진을 실시한다. 여기서도 문제가 생기면 정신(심리) 관련 전문의에게 상담받고 관련 치료를 진행한다. 정신과 신체에 대한 건강검진을 진행하는 게 점차 사회적 추세가 되고 있다.

-일본은 처벌·규제 대신 '자율 규제' 원칙의 위험성평가를 도입했다는데.
▶일본의 위험성평가 제도는 지난 2006년 '노동안전위생법' 제28조의2에 '건설물, 설비, 원재료, 가스, 증기, 분진 등에 의하거나 작업 행동 그 외 업무에 기인하는 위험성 또는 유해성 등을 조사해 그 결과에 근거하고 이 법률 또는 이것에 근거하는 명령의 규정에 의한 조치를 강구하는 것 외에 노동자의 위험 또는 건강장해를 방지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를 마련하도록 노력해야 한다'라고 규정을 신설한 후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법적 의무 사항이 아닌데 기업들의 위험평가 제도 준수율이 높은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는가.
▶2006년 법 시행 시기에 맞춰 위험성평가가 정착되도록 하기 위해 '노동안전위생법' 제28조의2 제2항에 따라 '위험성 또는 유해성 등의 조사 등에 관한 지침'을 공시했다. 이 지침의 목적은 위험성평가라는 방법이나 규제에 대한 세부 사항을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사업자가 실제로 자기 사업장의 유해 위험요인에 대해 자주적으로 안전 위생 활동을 하도록 촉진하는 데 있다. 최근 위험성평가 도입률은 대기업 300인 이상 대기업은 보통 70% 이상 수준이고 중소기업도 50~60% 정도 도입했다.



일본 중앙노동재해방지협회(JISHA)의 위험성평가 가이드 북. /사진=조규희 기자 일본 중앙노동재해방지협회(JISHA)의 위험성평가 가이드 북. /사진=조규희 기자
-정부가 세부 사항을 규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기업이 위험성평가를 만드는 데 어려움을 겪었을 것 같다.
▶위험성평가는 '상상력'을 동원하는 게 아니다. 후생노동성에서 31년 정도의 사망사고 케이스(사례)를 공개한다.

-공개된 자료에는 어떤 내용이 포함돼 있는가.
▶사망사고 발생일, 발생 연도, 사망 시간, 기업명, 업종, 사고 원인 물질, 사고 장소, 사고 형태 등 매우 구체적인 내용들이 포함된다. 따라서 기업들은 자신과 유사한 사업장의 사례를 보고 사고 발생 위험성을 인지할 수 있다. 아울러 이에 기초해 자신에게 맞는 위험성평가를 실시할 수 있게 된다.

-위험성평가를 실시한 기업에서 사고가 발생하면
▶일본은 위험성평가가 반드시 해야 하는 의무 사항이 아니라 '노력 의무' 대상이다. 위험성 평가를 하지 않았다고 해서 규제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다.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노동안전위생법에 따른 기준 위반 사항은 처벌 대상이 된다. 다만 법 기준 위반이 아니고 위험성평가도 실시한 상황이라면 정부는 관련 사고 발생에 대해 강력한 처벌보다는 다른 방식을 강구할 수 있다.



-위험성평가 도입의 실제 효과가 있다고 보는가.
▶기계·설비 관련 중대재해가 급격히 줄었다. 제조업, 공사현장 등에서 자신에게 맞는 위험을 인지하고 예방하면서 얻은 결과라고 생각한다. 작업 현장에 대한 재해는 줄었는데, 인간의 행동에 따른 재해가 늘고 있다.

-새로운 유형의 중대재해가 늘고 있다는 뜻인가.
▶1, 2차 산업이 점차 줄어들고 3차 산업이 증가함에 따라 발생하는 결과로 보인다. 2020년 일본 총무성 자료에 따르면 일본의 산업구조가 1차 산업 1.2%, 2차 산업 26.6%, 3차 산업이 72.2%다. 사망재해를 포함한 사고재해 발생도 2021년 3차 산업이 전체 사고의 53.7%로 절반을 넘어섰다. 근로자 고령화에 따라 치료 기간이 길어지고 부상에 취약한 것도 새로운 유형이라면 유형이다. 앞으로 대처해나가야 할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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