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태어난 김에 세계일주’는 ‘나 혼자 산다’의 스핀 오프가 아니다. 이미 김지우PD는 ‘나 혼자 산다’ 연출을 벗어났으며 자신만의 프로덕션팀을 꾸려 프로그램을 제작했다.
이미 제작발표회에서 언급한 것처럼 PD 데뷔를 앞두고 수많은 아이템을 내놨던 김지우PD는 편성의 문턱을 넘지 못했고, 또 한 편으로는 OTT 공개도 염두에 뒀지만 그 문턱 역시 넘지 못했다. 결국 그는 기안84의 버킷리스트인 남미여행을 평소 그와 절친한 사이인 이시언 그리고 여행 유튜버로 유명한 ‘빠니보틀’과 떠나는 것으로 연출 데뷔의 꿈을 이뤘다.

프로그램은 뚜껑을 열어보니 ‘나 혼자 산다’의 색깔이 강했다. 기안84가 기묘한 생활습관을 이어가는 모습 그리고 이를 쫓아가는 자막이나 구성 그리고 기안84의 행동호흡을 적절히 맞춘 편집의 느낌은 ‘나 혼자 산다’에서 보여줬던 것 그대로였다. 이를 테면 ‘나 혼자 산다’에서 기안84의 캐릭터와 세계관을 뚝 떼어내 더욱 더 확장한 것이 ‘태어난 김에 세계일주’라고 보면 될 것 같다.
프로그램은 기안84가 남미 페루의 아마존 초입을 시작으로 꼭 가보고 싶다던 볼리비아의 우유니 소금사막을 가는 여정으로 마무리된다. 10일 동안의 여행이지만 딱 긴 팔 둘, 반팔 하나, 긴 바지, 반바지 하나 등 단출한 여행가방으로 시청자를 놀라게 하더니 아무 데서나 넙죽넙죽 눕는 태도와 숙소 중정에 자신의 속옷까지 태연하게 널어놓는 모습으로 웃음을 준다.
어설픈 영어실력은 덤이며, 이시언과의 티격태격하는 분위기는 사이드 메뉴다. 거기에 아마존을 비롯해 고산지대까지 남미의 풍광은 이들의 여행을 수놓는다.
스튜디오에서의 태도도 흥미롭다. 기안84와 이시언은 자신이 직접 다녀온 여행을 추억에 젖어 감상하고, 장도연은 제작진이 준 ‘비장의 수첩’을 들고 정보전달에 총력을 기울인다. 평소 기안84와 절친한 관계이던 사이먼 도미닉과 송민호는 그의 자유분방한 여행에 감탄하면서 꼭 따라가고 싶다는 의지를 적극적으로 내비친다.

‘태어난 김에 세계일주’는 이를 대거 비틀었다. 여행 예능 프로그램의 틀을 따르지만 자세히 보면 기안84의 ‘원맨 캐릭터쇼’에 가깝다. 즉흥적이고 무계획인 그의 여행에서 보통 여행 예능에서 볼 수 있는 정보는 사라지고 기안84 특유의 감정과 정서만이 남았다.
정말 기안84 평소의 행동이나 코드를 좋아하고 따르는 사람이라면 그와 함께 콧노래를 부르며 가는 듯한 여행이었겠지만, 또 한 편으로 그에 대한 호감이 없거나 오히려 반감이 있는 타입이라면 ‘태어난 김에 세계일주’는 맞지 않는 옷을 한 시간 반 내내 입은 듯한 느낌을 줄지 모른다.
결국 예능적인 의미로, 기안84는 예능계의 광야에 던져진 셈이 됐다. 사실 기안84는 ‘나 혼자 산다’에 등장한 8년 동안 이 프로그램이 독점한 재료나 마찬가지였다. 그의 유명세와 더불어 독특한 생활습관 등은 화제가 돼 많은 예능 프로그램 제작진의 섭외 목표가 됐다. 하지만 기안84는 이미지 소진을 자제하면서 ‘나 혼자 산다’에서만 일상을 보였고, 그의 독특함이 긴 시간 질리지 않고 대중에게 전해진 원동력이 됐다.

일단 시청률이나 화제성 측면에서는 같은 시간 SBS ‘런닝맨’을 능가하는 모습을 보여 제작진의 희망이 일단은 통한 듯한 분위기다.
남미로 나옴과 동시에 여행 예능의 형식으로 ‘나 혼자 산다’ 바깥세상의 문을 두드린 기안84. 마치 영화 ‘트루먼쇼’의 트루먼 버뱅크(짐 캐리)의 마지막 장면을 연상시키는 그의 첫 출발은 어떤 결과를 가져올까. 실험은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