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도 대신 자전거 도로, 주차장 대신 공원…차 몰지 말라는 '15분 도시'

머니투데이 파리=최경민 기자 2023.01.02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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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다이어리] 4. 15분 도시-①차선이 줄고 인도와 자전거 길이 확대되는 이유

편집자주 2022년 10월부터 12월까지 파리에서 생활하며 느낀 점과 전문가를 취재한 내용을 전해드립니다.

 파리 히볼리(Rivoli)가의 모습. 자동차 도로는 한 차로에 불과하다./사진=최경민 기자 파리 히볼리(Rivoli)가의 모습. 자동차 도로는 한 차로에 불과하다./사진=최경민 기자


루브르 박물관 뒤편 히볼리(Rivoli)가. 파리 시내 중심지를 관통하는 주요 도로다. 그런데 이곳 4차선 중 '자동차 도로'는 한 차선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모두 자전거 도로다. 자전거, 전동 킥보드, 휠체어 등 자동차를 제외한 모든 탈 것들이 이곳을 지나간다.

파리 시내에서 이런 광경은 낯설지 않다. 기자가 지난해 10월 파리에 왔을 때 숙소 인근 도로도 공사를 하고 있었다. 최근 공사가 끝난 후 이 도로는 승용차 도로 1차선, 버스와 자전거 공용도로 1차선, 그리고 자전거 전용도로 1차선으로 정비가 됐다. 다른 대부분의 도로들도 마찬가지다. 파리 시내에서 자동차가 다닐 길은 계속 좁아지고 있다.



"차 몰지 말란 말이냐" 비판에도 '15분 도시' 박차
파리 시내 도로 정책의 방향성은 명백하다. 차선을 줄이고, 차선과 확실하게 구분된 자전거 전용 도로를 확충하며, 자동차 주차장 대신 나무가 심어진 공원과 자전거 전용 주차장을 확보하고, 인도를 대폭 넓히는 것. 파리지앵들은 이를 "파리 시내에서 승용차를 몰지 말라"는 선언처럼 느낀다고 한다. "왜 차를 몰지 말란 말이냐. 너무 불편하다"는 볼멘소리가 당연히 있지만, 다른 한 편에서는 "도시 환경이 쾌적해졌다"는 환영도 나온다.

최근 정비를 마친 파리 3구의 한 도로. 자전거 전용 도로, 자동차 도로, 버스 및 자전거 공용도로가 한 차선씩 마련됐다./사진=최경민 기자 최근 정비를 마친 파리 3구의 한 도로. 자전거 전용 도로, 자동차 도로, 버스 및 자전거 공용도로가 한 차선씩 마련됐다./사진=최경민 기자
변화는 안 이달고(Anne Hidalgo) 시장이 2014년 파리시장에 선출된 후 일어나기 시작했다. 이달고 시장은 세느강가의 차선을 모두 없애고 이곳에 자전거 도로와 공원을 확보했다. 이제 세느강 강변은 100% 공원화돼 어린이들도 마음껏 뛰놀 수 있게 정비됐다. 바스티유 광장과 같이 파리의 랜드마크 역할을 해왔던 '로터리 형태'의 넓은 도로들도 변화를 겪었다. 차선을 메워 섬처럼 떨어져있던 광장을 'U'자 형으로 정비해 인도와 연결했고, 자동차 위주 도로를 자전거 친화적으로 바꿨다.



이달고 시장은 2020년 재선에 도전할 때 이런 비전을 더욱 구체화해 제시했다. 도보와 자전거로 15분 거리 안에서 모든 생활이 가능해지는 도시. '15분 도시'의 개념이었다. '15분 도시' 개념의 창시자인 카를로스 모레노(Carlos Moreno) 소르본대 교수를 자신의 스마트시티 특보로 위촉하기도 했다. 급진적이라는 우려 속에서도 이달고 시장은 재선에 성공했고, 현재 '15분 도시' 정책은 파리 시내에서 더욱 과감하게 시행되고 있다.

이미 파리 시내 도로들에 차선과 차별화된 자전거 도로를 만드는 과정이 거의 다 완료됐다. 목표는 파리 시내 골목길 등 모든 도로에 자전거 전용 도로를 까는 것이다. 2026년까지 이 프로세스는 진행될 예정이다. 콩코드 광장과 샹젤리제 거리 등 가장 차도가 넓은 랜드마크들도 변화의 대상이다. 파리 시내에서 버스와 택시와 같은 대중교통, 그리고 일부 운송용 차량 외에 승용차를 점점 더 보기 힘들어질 것으로 보인다.

'로터리' 형태의 자동차 위주 도로가 지나갔던 과거 바스티유 광장의 모습 '로터리' 형태의 자동차 위주 도로가 지나갔던 과거 바스티유 광장의 모습
구글맵에서 현재 바스티유 광장 주변 자전거 도로를 표시한 모습. '로터리'가 'U자형 광장'으로 바뀌었고, 그 주변을 자전거 도로가 감싸고 있다.구글맵에서 현재 바스티유 광장 주변 자전거 도로를 표시한 모습. '로터리'가 'U자형 광장'으로 바뀌었고, 그 주변을 자전거 도로가 감싸고 있다.
실제 지금 바스티유 광장을 가보면 자전거 도로가 차선만큼 끊김없이 확보돼 있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사진=최경민 기자실제 지금 바스티유 광장을 가보면 자전거 도로가 차선만큼 끊김없이 확보돼 있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사진=최경민 기자
단순 도로 정비가 아닌 '도시의 업그레이드'
'15분 도시' 콘셉트의 창시자로 파리시청의 정책에 영향을 줬던 모레노 교수를 지난달 2일 말라케(Malaquai)가에 위치한 그의 사무실에서 만날 수 있었다. 모레노 교수는 "자전거로 이동 가능한 도로가 파리 시내에 총 1200㎞ 정도가 확보됐다. 공간을 재구조하는 과정을 통해 보행자 전용 거리도 많이 확보했다"며 "파리는 지금 굉장한 변화를 겪고 있다. 자동차를 위한 공간을 대폭 줄이는 게 추세적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15분 도시'는 단순 도로를 정비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도보 혹은 자전거로 15분 거리 안에 도시에서 생활하기 위해 필수적인 거주(Living), 업무(Working), 생활서비스공급(Supplying), 건강(Caring), 학습(Learning), 여가(Enjoying) 6가지 요소를 만족시킬 수 있게 도시를 업그레이드한다는 콘셉트다. '15분'은 도보 혹은 자전거로 무리없이 이동할 수 있는 시간을 잡은 것이라고 한다.
그래픽=최헌정 디자인기자그래픽=최헌정 디자인기자
모레노 교수는 "자동차가 불필요해지는 콘셉트라고 할 수 있겠다. 바게트 빵을 걸어서 사러 갈 수 있는데, 굳이 자동차를 타고 갈 필요가 없지 않나"라며 "의사를 만난다거나, 학교를 간다거나, 출근을 한다거나, 운동을 한다거나, 장을 보러 가는 등, 데일리 라이프에서 필요한 모든 수준 높은 서비스 지원이, 내가 위치한 장소에서 근접한 곳에서 다 해결이 되게끔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15분 도시' 콘셉트를 처음 생각한 것은 기후 문제에 대한 걱정에서 비롯됐다. 그런데 전세계적인 팬데믹, 에너지 문제 때문에 도시 사람들이 '15분 도시'를 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며 "우리가 살고 있는 주거지에서 접한 곳에서 생활하는 방향으로 점점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주거지 주변에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동선을 잡는 콘셉트"라고 말했다.
그래픽=최헌정 디자인기자그래픽=최헌정 디자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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