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증권가 IB 계약직 칼춤, '진도준'은 없다

머니투데이 김평화 기자 2022.12.20 0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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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률 24.9%를 찍은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 주인공 송중기가 연기한 진도준은 IB(투자은행) 업계 다크호스다. 1998년 기아자동차 매각 사건을 모티브로 한 '아진자동차' 인수건. 진도준은 인수전에 힘을 보태는 조건으로 '고용 승계'를 관철시킨다. 해고직원들의 비참한 삶을 '미래'에서 경험했기 때문이다.



2022년 겨울 돈줄마른 증권가에는 진도준이 없다. 증권사들은 오직 효율화만 바라본다. 타깃은 계약직이다. '법'과 '숫자'를 근거로 수월한 구조조정이 가능해서다.

법적 부담도 없다. '해고'가 아닌 '계약만료'이기 때문이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 9월말 기준 국내 36개 증권사 임직원 중 계약직원의 비중은 29.74%다. 전체 직원 3만8254명 중 계약직이 1만1377명이다. 계약직 수는 증시가 호황이던 지난해 상반기 1만명을 넘긴 후 계속 늘어왔다. 이번 겨울 칼바람이 휩쓸고 나면 1만명 아래로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특히 중소형 증권사의 계약직 비중이 높다. 국내 증권사 중 리딩투자증권의 계약직 비율이 74.84%로 가장 높았다. 코리아에셋투자증권과 흥국증권, 케이프투자증권, 메리츠증권, 한양증권, 다올투자증권 등의 계약직 비중은 정규직보다 높았다. 대형사 중에선 하나증권의 계약직 비중이 50%를 넘겼다.

다올투자증권은 IB 본부 계약직 180여명 중 절반 이상과 재계약하지 않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금융지주 계열 증권사도 연말 20~30% 감원설이 돈다. 이 증권사 역시 계약직이 감원 대상이다.


경제적 부담은 없다. 계약직들에게는 계약만료 후 퇴사에 대한 위로금이나 퇴직금이 없다. 내년 초 지급예정인 올해분 성과급도 계약이 만료되는 직원들에게는 주지 않는다.

계약직 해고(계약만료) 대상엔 과장, 대리는 물론 사회초년생 사원급까지 포함된다. 정규직 부장, 차장들을 대상으로 한 희망퇴직과는 차원이 다른 얘기다.

증권가, 특히 IB 부문은 계약직 비중이 높다. 백오피스 소속 정규직원이 IB 부서로 옮기려면 계약서를 다시 쓰도록 하는 증권사도 있다. 법과 숫자의 부담을 줄이려는 움직임이다.

"지난해 부동산 호황 때 번 돈으로 몇년은 버틸 수 있을 텐데…감원 분위기에 편승하다니". 당사자들의 토로에 섭섭함과 안타까움이 묻어난다.
[기자수첩]증권가 IB 계약직 칼춤, '진도준'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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