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들 기억할게요"…이태원 참사 희생자 추모식

머니투데이 김미루 기자, 김창현 기자, 김도균 기자 2022.12.16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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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오전 10시쯤 서울 종로구 조계사. '이태원 참사 희생자 추모 위령제'(49재)가 봉행되고 있는 모습./사진=김미루 기자16일 오전 10시쯤 서울 종로구 조계사. '이태원 참사 희생자 추모 위령제'(49재)가 봉행되고 있는 모습./사진=김미루 기자


"꽃 같던 그대들을 떠나보내는 길에 우리는 마음 깊이 아픕니다. 우리는 그대들을 아끼고 사랑해 그대들을 기억할 것입니다. 부디 모든 고통을 잊으시고 아픔 없는 곳에서 평온하시기를 바랍니다." (이수민 조계사 청년회장)



"잊히는 게 아니라 지금부터 시작이죠. 내일 모레 환갑인 저 같은 주부도 49재 끝난다고 이 사건이 잊어지리라 생각하지 않아요. 시민으로서 함께 지켜볼 테니 유가족들도 힘을 내면 좋겠습니다." (58세 여성 이모씨)

이태원 참사 희생자 49재를 맞아 종교계와 시민들이 추모제를 열고 희생자들의 넋을 기렸다. 추모객들은 "49재가 끝났다고 잊어버리는 일은 없다"고 말했다.



대한불교조계종 사회복지재단은 16일 오전 10시부터 서울 종로구 조계사 대웅전 앞 특설무대에서 '10·29(이태원) 참사 희생자 추모 위령제(49재)'를 봉행했다. 제단에는 유족 측의 동의를 얻은 영정 67위와 위패 78위가 모셔졌고 조계종 어산종장 화암스님이 의식을 진행했다. 위령제에는 유족측과 불교계에서 각각 150여명씩 참가해 300여명이 자리했다.49재란 사람이 죽은 지 49일 되는 날에 명복을 빌고 좋은 곳에 태어나기를 기원하며 지내는 불교식 제사의례다.

16일 위령제가 시작하기 전 오전 9시40분쯤 서울 종로구 조계사 대웅전 앞에 모인 유족들은 생전 고인이 좋아했다며 커피음료와 감자칩, 락앤락 용기에 든 반찬을 영정 앞에 놓았다. /사진=김미루 기자16일 위령제가 시작하기 전 오전 9시40분쯤 서울 종로구 조계사 대웅전 앞에 모인 유족들은 생전 고인이 좋아했다며 커피음료와 감자칩, 락앤락 용기에 든 반찬을 영정 앞에 놓았다. /사진=김미루 기자
위령제를 시작하기 전 오전 9시40분쯤 유족들은 생전 고인이 좋아했다며 커피음료와 감자칩, 락앤락 용기에 든 반찬을 영정 앞에 놓았다. 영정 앞은 주최측이 준비한 파인애플, 귤 외에도 유족이 준비한 과자 꾸러미로 가득 찼다.

유족들은 패딩점퍼를 입고 목도리를 단단히 매고 위령제에 참석해 150여석의 자리를 가득 매웠다. 희생자를 추도하는 158차례의 명종이 울리자 유족 중 한 남성은 종소리가 끝날 때까지 장갑도 끼지 않은 두손을 꺼내 모으고 기도했다. 서울의 낮 최고기온이 영하 2.2℃에 불과한 이날 추위 탓에 이 남성의 두 손은 금새 새빨개졌다.


이어 영정 앞에 헌화를 하러 줄지어 선 유족들은 슬픔을 감추지 못했다. 10m가량 이어진 줄에 합류해 헌화를 기다리던 남성은 앞에 선 가족을 뒤에서 껴안고 어깨에 얼굴을 파묻어 울었다. 한 중년 남성은 영정 앞에 꽃을 내려 놓고도 영정에 눈을 떼지 못한 채 "OO아 어떡해"라고 말했다. 다른 유족은 손에 낀 흰색 털장갑을 벗어 눈물이 흐른 얼굴 전체를 닦기도 했다.

이태원 참사로 사망한 배우 고(故) 이지한씨의 어머니 조미은씨는 유가족 대표로 무대 앞에 나와 "잊지 말아달라"고 했다. 조씨는 "대한민국 한복판 그 이태원 골목에서 차갑게 생을 다한 우리 아들·딸들을 잊지 말고 기억해달라"며 "여러분이 기억해주는 한 우리 아들·딸들은 가장 행복한 나라에서 다시 태어날 거라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위령제를 마무리하는 소전의식(영가의 위패와 옷가지 등을 불로 태워 영혼을 보내는 의식)이 진행되는 동안 유족들 사이에서는 통곡이 터져나왔다. 34세 아들을 잃은 한 아버지는 타오르는 불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내가 세상을 다 준다고 해도 너랑은 바꿀 수가 없다"며 "고향 올 때마다 제 아빠 좋아하는 호두과자 사오던 아들이었다"고 했다. 유족들은 위패와 옷가지가 다 타올라 재가 될 때까지 불 앞을 떠나지 못했다.

16일 서울 녹사평역 사거리 인근 합동분향소. 분향소를 방문한 시민이 향에 불을 붙여 희생자를 추모하고 있다. /사진=김창현 기자16일 서울 녹사평역 사거리 인근 합동분향소. 분향소를 방문한 시민이 향에 불을 붙여 희생자를 추모하고 있다. /사진=김창현 기자
조계사 위령제가 한창 진행되던 이날 오전 11시쯤 이태원역 앞 합동분향소에도 향 30개 이상이 연기를 내며 타고 있었다. 금요일 이른 아침부터 분향소를 찾은 시민들은 이날 처음 공개된 영정 사진을 살펴보며 흐느꼈다.

인근에 사는 김현무씨(63)는 미리 집에서 준비해온 조의금 봉투를 분향소 관계자에게 건넸다. 김씨는 "날씨가 춥지만 오늘 저녁 이태원 49재 추모제에 동료 시민으로서 참여하는 게 도리라고 생각한다"며 "은퇴하고 올해 용산에 이사를 왔다. 지역 주민으로서도 미안하다"고 했다.

오전 11시40분쯤 시민들이 하나둘 두고 간 국화꽃이 영정 앞에 가득 늘어졌다. 시민들은 "잊지 않고 기억하겠다"고 약속했다. 중랑구에서 1시간 동안 지하철을 타고 왔다는 김인숙씨(66)는 "자식 키운 부모 심정이면 얼마나 슬픈지 다 알 것"이라며 "미안하고 우리가 유가족과 함께 마음을 나누고 기억할 것"이라고 했다.

김서윤씨(52)는 "오늘 분향소에 온 것은 유가족이 힘을 냈으면 하는 생각 때문"이라며 "시민들이 49재 끝났다고 잊어버리는 일은 없으니 함께 연대했으면 한다"고 했다.

이날 오후 2시부터 녹사평역 인근 합동분향소에선 7대 종단(불교·원불교·유교·천도교·천주교·민족종교·개신교)의 이태원참사 합동추모식이 열렸다. 마련된 50여석의 자리는 종교인들과 시민들로 가득찼다. 자리에 앉지 못한 100여명의 시민들은 주변에 둘러 섰다.

조계종 스님은 추도사에서 "생명 존엄은 인간 행복의 근원"이라며 "이태원 참사는 가족을 뒤흔들 뿐 아니라 사회 공동체 흔드는 심각한 결과를 초래했고 우리 사회에 고통과 비극이 다시는 생기지 않도록 종교계와 시민들이 거듭 다짐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오후 6시에는 사고 현장 인근인 서울지하철 6호선 이태원역 앞 도로에서 '우리를 기억해 주세요' 시민추모제가 열린다.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와 시민대책회의가 공동으로 주최한다. 4개 종단(불교·개신교·천주교·원불교)의 종교의식을 시작으로 희생자 유가족·친구·최초 신고자 등의 발언, 추모 영상 상영 등이 이어진다. 추모객이 몰리면 4개 차선이 모두 통제될 예정이다.

16일 서울 종로구 조계사에서 열린 이태원 참사 희생자 추모 위령제(49재)의 소전의식(영가의 위패와 옷가지 등을 불로 태워 영혼을 보내는 의식)에서 유족들 사이 통곡이 터져나왔다. /사진=김미루 기자16일 서울 종로구 조계사에서 열린 이태원 참사 희생자 추모 위령제(49재)의 소전의식(영가의 위패와 옷가지 등을 불로 태워 영혼을 보내는 의식)에서 유족들 사이 통곡이 터져나왔다. /사진=김미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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