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찬받아 마땅한 K-장르물의 진화 '소방서 옆 경찰서'

머니투데이 이주영(칼럼니스트) ize 기자 2022.12.16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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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물의 규범을 잘 지키면서 한국적 색채 가해 공감 유도

사진제공=SBS사진제공=SBS


한국 드라마보다 미국, 영국 등의 해외 드라마를 더 많이 보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처럼 OTT 플랫폼이 대중화되었을 때도 아니니, 그간 그리 많이 보아왔던 작품들은 대부분 정상적 유통 경로가 아닌 우회 유통되는 것들이었다. 그런 시리즈들을 보며 한국은 왜 이런 장르들을 만들어내지 못할까라는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특히 범죄 수사물에서 더욱 그런 한숨이 나왔던 듯 하다. 예전부터 '수사반장'과 같은 걸출한 드라마가 있긴 했지만 과학보다는 ‘운동화 끈을 조이는 형사’에 더 포커싱되어 있는 작품들이 많았다.

'CSI 과학수사대'가 그런 시기와 질투의 중심에 있었다. 라스베이거스, 뉴욕 등 도시 별 과학수사대로 스핀 오프 되었으니 한 시대를 풍미한 범죄 수사 장르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NCIS 해군 범죄 과학수사대'에 굉장한 애정을 가졌었다. 2003년부터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으니 20년 째다. 더욱이 이 시리즈는 LA, 뉴올리언즈, 하와이까지 범주를 넓혔고, 내년에는 시드니까지 확장된다. 각설하고 이 장르는 국내에서도 꽤 큰 팬덤을 보유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한국산 시리즈의 영향력이 폭발적으로 커졌다. 그 탓에 앞서 언급한 시리즈들은 추억의 드라마들로 기억 속에 간직되고 말았다. 그럼에도 범죄수사 장르물에 대한 갈증은 여전히 존속되고 있었다.



최근 '소방서 옆 경찰서'라는 작품이 눈에 들어왔다. 제목에서 직관적으로 알 수 있다. 맞다 이 드라마는 소방관과 경찰관이 협업해서 어떤 범죄(방화, 살인 등)를 해결하는 이야기일 것이다. 라고 추측할 수 있는 그런 작품이다. 미국 드라마에도 소방관을 다루는 작품이 있고, 형사물이 다양하게 존재하고, 과학수사를 근간으로 하는 시리즈도 많다. 그러니까 '소방서 옆 경찰서'는 이 모든 장르의 범주를 한데 버무리는 맛깔스러워 보이는 성찬임에 틀림없다. 혹자는 제목만 보고서 ‘음, 이게 과연 재미있을까?’ ‘김래원이 나오니까 '해바라기'의 명대사 “꼭 그렇게 가져가야만 속이 후련했냐?”가 떠오르는데?’ 등의 다양한 의문이 속출했다. 그럴 법도 했다. 제목과 출연진만 놓고 보면 그리 보이기 십상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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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적으로 '소방서 옆 경찰서'는, 툭 까놓고 말해서 굉장히 할리우드적인 범죄 수사물에 근접해있는, 흥미로운 작품이라 말할 수 있다. 첫째는 오리무중의 거대한 악을 찾아나가는 전체 흐름이 있어서 그렇고, 둘째는 에피소드 별로 소방과 경찰의 공조를 통한 사건 해결이 흥미롭다. 마지막으로는 장르물 특유의 잔혹과 무게를 간직하되 조화로운 캐릭터 배치를 통한 위트를 풍긴다는 점이다. 여기에는 과학수사 등에 꽤나 공을 기울여온 작가 민지은의 힘이 크다고 보인다. 그는 '검법남녀' 시리즈를 통해 그 토대를 잘 쌓아왔다. 동시에 소방관 역의 손호준, 형사 역의 김래원, 구급대원 역의 공승연 등의 캐릭터들이 의외로 좋은 조화를 이루어낸다. 여기에 소방서의 대원들, 경찰서의 팀원들, 과학수사대의 연구원들이 함께 버무려지며 빠르게 진행되는 내러티브를 보유한 '소방서 옆 경찰서'는 꽤 잘 만들어진 장르물로 다가온다.

사실 어떤 작품이든 괜히 트집을 잡자고 들면 지적해야 할 게 태산일 게다. '소방서 옆 경찰서'라고 단점이 왜 없겠나. 후반으로 접어드는 상태 임에도 불구하고 캐릭터 구축, 사건 해결 등의 개연성이 떨어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리즈는 큰 축의 범죄, 단편적 사건 해결이라는 단순한 이야기 구조 속에서 등장인물들의 유기적 조합을 잘 이끌어내고 있다는 더 큰 장점을 칭찬해줘야만 한다. 진짜 이렇게 생각한다. 그 이유는 보는 내내 팽팽한 긴장과 의문을 잘 유지하고 보존하며 에피소드를 진행시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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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부터 한국 시리즈의 위상은 ‘K’라는 수식어를 앞에 단 채 승승장구 중이다. '오징어 게임'을 시작으로 한국 드라마는 전 세계적으로 그 파급력을 더해가고 있다. 이런 와중에 수 많은 해외 시리즈를 벤치 마킹했지만, 한국적 어떤 것을 가미하면서 더 흥미로워진 게 바로 '소방서 옆 경찰서'라는 생각도 해본다. 장르물의 규범과 관습을 잘 지키면서, 가미된 ‘어떤 것’에도 초점을 맞춰 볼 만하다. 그건 바로 한국 수사물에서 고전적 규범으로 자리하고 있는 근성, 끈기, 열정, 책임감 등에 대한 것들이다.

불도저라 불리는 소방관은 한국적으로 저돌적이다. 진돗개라 불리는 경찰관은 '수사반장'에서 '인정사정 볼 것 없다'를 거쳐 '살인의 추억'에 이르는 한국적 형사의 근성을 가졌다. 구급대원은 아주 한국적인 ‘정’을 근간으로 한다. 사실 이게 가미되어 있지 않았다면 이 시리즈는 단순히 해외 시리즈의 모방에 불과했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한국적인 뭔가가 있어야만 시청자의 공감을 일으킬 수 있다는 점을 놓치지 않았다. 물론 마지막 에피소드까지 다 경험해야 진짜 결론을 내릴 수 있을 테다. 현재까지 '소방서 옆 경찰서'가 내고 있는 스코어가 이렇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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