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CEO 줄줄이 연임 '고배'…"새 정부엔 새 경영진" 신호

머니투데이 오상헌 기자 2022.12.13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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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병 신한회장에 손병환 NH회장도 연임좌절
'새술, 새부대에' 새 정부 금융인사 기준 분석도
진옥동 신한회장 내정엔 "낙하산 없다" 기대도

(서울=뉴스1) 김진환 기자 =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14일 오전 서울 중구 은행회관 뱅커스클럽에서 예정된 8개 은행지주(KB·신한·하나·우리·농협·BNK·DGB·JB) 이사회 의장들과 오찬 간담회에 참석하고 있다. 2022.11.14/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서울=뉴스1) 김진환 기자 =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14일 오전 서울 중구 은행회관 뱅커스클럽에서 예정된 8개 은행지주(KB·신한·하나·우리·농협·BNK·DGB·JB) 이사회 의장들과 오찬 간담회에 참석하고 있다. 2022.11.14/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연임을 노리던 금융그룹 최고경영자(CEO)들이 줄줄이 낙마하면서 정부가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는 금융 CEO 인사 원칙과 기준을 시장에 발신하고 있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새 정부가 들어섰으니 이전 정권에서 선임되거나 연임한 CEO는 '비토'(거부권)하겠다는 게 정권 핵심부의 의중이라는 것이다.

12일 금융권에 따르면, 임기 만료를 앞둔 금융권 CEO 중 지난달 조기 사임한 김지완 전 BNK금융그룹 회장에 이어 조용병 신한금융그룹 회장과 손병환 NH농협금융그룹 회장이 자리에서 물러난다.



농협금융은 이날 임원후보추천위원회(임추위)를 열고 이석준 전 국무조정실장을 차기 회장 단독 후보로 추천했다. 이 후보자는 이사회와 주총을 거쳐 최종 선임되며 내년 1월부터 임기를 시작할 예정이다. 임추위는 "복합적인 요인으로 금융환경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대내외 금융·경제 상황에 대한 명확한 판단을 통해 농협금융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고 농협금융의 새로운 10년을 설계할 적임자라 판단해 최종 후보자로 추천했다"고 밝혔다.

차기 농협금융 회장 후보가 이 후보자로 정해짐에 따라 문재인 정부 시절인 지난해 1월 농협금융 회장에 오른 손 회장은 연임에 실패했다. 당초 손 회장은 연임이 유력했지만 이 후보자의 갑작스러운 등장으로 내부 출신 회장의 연임은 물건너갔다.



앞서 지난 8일 신한금융은 조 회장 대신 진옥동 신한은행장을 차기 회장으로 내정했다. 조 회장은 전임 정부 출범 직전인 2017년 3월 신한금융 회장에 취임했고, 2020년 연임에 이어 3연임이 유력하다는 평가가 나왔으나 전격 용퇴를 선언했다.

금융그룹 CEO 인선에서 현직 회장이 모두 낙마하면서 새 정부의 금융권 인사 기조를 확인할 수 있게 됐다. 금융권은 이른바 '외풍'이 작용했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농협금융은 대주주인 농협중앙회가 중앙회장 연임을 허용하는 농업협동조합법 개정을 위해 정부와 교감 하에 대정부 관계가 원만한 관료 출신을 영입했다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부산 출신인 이 전 실장은 박근혜 정부 때 기획재정부 2차관과 국무조정실장(장관급) 등 요직을 두루 거쳤고 윤석열 대통령 후보 시절 인재 영입 1호로 캠프에 참여했다. 윤석열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특별고문도 지냈다. 은행업계 고위 관계자는 "결과적으로 농협중앙회와 정부가 윈윈하는 인사가 된 것 같다"고 했다.


금융 CEO 줄줄이 연임 '고배'…"새 정부엔 새 경영진" 신호
특히 재일교포 주주 중심의 지배구조 덕에 외풍이 작았던 신한금융 회장 교체 사례를 주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국내 대형 금융지주를 포함해 확실한 주인(대주주)이 없는 소유분산 기업의 경우 현직 CEO의 '셀프연임'은 두고 볼 수 없다는 새 정부의 강력한 메시지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금융권 고위 관계자는 "조 회장과 진 내정자 등 내부 인사 3명만 신한금융 회장 후보 숏리스트(압축후보군)에 포함된 것은 회장후보추천위원회(회추위)가 사실상 조 회장을 추대하려 했다는 방증"이라며 "마지막 순간에 상황이 바뀐 이유가 있지 않겠느냐"고 했다.

신한금융 내부 사정을 잘 아는 고위 관계자도 "사외이사들은 회추위 당일까지도 3연임을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였다"며 "조 회장이 어떤 연유인지 모르지만 막판에 용퇴 결심을 굳히고 회추위 프리젠테이션이 끝난 후 고사 의사를 밝혀 다들 놀랐다"고 전했다.

금융당국의 중징계를 받은 손태승 우리금융 회장의 연임 도전도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다만 정부가 민간 금융그룹에 이른바 '자기 사람'을 낙하산으로 내려보내기 위해 연임을 불발시키고 있다는 데에는 이견이 존재한다. 금융권 고위 관계자는 "새롭고 참신한 인물이 필요하지만 과거처럼 특정 인사를 낙점해 자리에 앉히는 인사 개입은 하지 않겠다는 것으로 읽힌다"며 "신한금융 차기 회장으로 이사회가 진 행장을 내정한 것도 그런 이유때문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관치·낙하산 논란에 대해 "금융기관 CEO리스크 관리는 금융당국의 책무"라며 "확실한 건 권위주의 시대와 같은 개입은 전혀 없다는 것"이라고 했다.

반면 이미 연임하지 못하도록 하는 게 자체가 민간 금융회사에 대한 인사 개입이고 결국 현 정부와 관련된 인물이 낙하산으로 오게 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실제로 차기 우리금융 회장이나 BNK금융 회장 후보 하마평에는 현 정부과 가까운 인물이 거론된다.

금융권 고위 관계자는 "특정 인사(낙하산)를 밀어 넣지는 않겠지만, 정부가 바뀌었으니 새로운 사람이 와야 한다는 게 일관된 메시지가 아닌가 싶다"고 했다. 은행업계 관계자는 "이런 인사 원칙이 적용된다면 민간 금융그룹 수장에 관료 출신이나 외부 인사가 낙점될 가능성은 작아 보인다"면서도 "관치·낙하산 논란이 큰 만큼 우리금융과 BNK금융 CEO 인사를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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