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이란·러시아에 자유를"…신촌서 목 쉬어라 외친 中 유학생

머니투데이 김성진 기자 2022.12.11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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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이란, 러시아인들 세계인권의날 맞아 신촌에 모여
"한국에 사는 자유인으로서 목소리가 내야"

지난 10일 오후 2시 무렵 서울 서대문구 신촌의 공터에서 재한 중국인, 이란인, 러시아인들이 반정부 연대 시위를 하고 있다. 재한 중국인 A씨는 마이크를 잡고 "이란인들이 원하는 것은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기본권"이라며 "오늘날 한국에 사는 자유인으로서 우리가 이들의 목소리가 돼야 한다"고 했다. /사진=김성진 기자지난 10일 오후 2시 무렵 서울 서대문구 신촌의 공터에서 재한 중국인, 이란인, 러시아인들이 반정부 연대 시위를 하고 있다. 재한 중국인 A씨는 마이크를 잡고 "이란인들이 원하는 것은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기본권"이라며 "오늘날 한국에 사는 자유인으로서 우리가 이들의 목소리가 돼야 한다"고 했다. /사진=김성진 기자


중국 국적 A씨(28)는 '외국인 친구가 많다'고 자평한다. 수년 동안 경남 지역의 수입 식료품점에 일하면서 중동, 동유럽 사람들과 친분을 쌓았다. 이란의 히잡 반대 시위, 러시아의 반전 시위가 각국 정부의 탄압을 받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A씨는 남일 같지 않았다. A씨는 중국 소수민족으로 중국에서 지낼 때 일상적으로 '차별받는다'고 느꼈다.

지난달 중국에서 벌어진 백지시위는 A씨에게 충격이었다. 백지시위는 시진핑 정부의 '제로코로나' 방역 수칙에 반발한 중국인들이 백지를 들고 거리에 나선 집회다. 중국에서는 공산당을 향한 비판이 허용되지 않아 반정부 구호를 적은 피켓을 들면 처벌당할 수 있다. 빈 종이를 들면 처벌할 명분이 사라진다.



A씨도 가만히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A씨는 "우리가(재한 중국인들) 고국에 있는 이들의 목소리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카카오톡에서 A씨와 뜻을 함께하는 중국인 300여명이 모인 오픈 채팅방을 통해 지난 7일 오후 서울 마포구 홍대입구에서 중국 방역 정책을 비판하는 시위가 진행됐다.

같은 날 중국 정부는 '10가지 방역 추가 최적화 조치'를 발표했다. 이 조치에는 방역 정책을 대폭 완화하는 내용이 담겼다. 1989년 톈안먼 사태 후 규모가 가장 큰 반정부 시위의 요구를 수용한 것으로 해석된다.



지난 10일 오후 2시 무렵 재한 중국인, 이란인, 러시아인들이 서울 서대문구 신촌 공터에서 반정부 연대 시위를 하고 있다./사진=김성진 기자지난 10일 오후 2시 무렵 재한 중국인, 이란인, 러시아인들이 서울 서대문구 신촌 공터에서 반정부 연대 시위를 하고 있다./사진=김성진 기자
A씨는 반정부 시위를 이어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전세계가 위드코로나로 전환하는데 중국 정부가 강력한 방역 정책을 고집한 배경에는 관성적인 억압이 있다고 생각했다. 해묵은 소수민족과 여성 인권 문제는 건드리지도 못했다.

A씨는 세계인권의 날이었던 지난 10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에서 반정부 시위를 이어가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카카오톡 방 반응은 미지근했다. A씨는 "얘기를 나눠보면 베이징 같은 대도시 출신 중에는 소수민족 탄압 문제를 들어본 적도 없는 유학생이 많더라"고 말했다.

A씨는 재한 이란·러시아인을 떠올렸다. 이란에서는 20대 여성 마사 아미니가 히잡을 느슨하게 썼다는 이유로 체포됐다가 사망하자 이슬람식 통제에 저항하는 시위가 거세다. 러시아에서는 우크라이나 전쟁 반대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A씨는 '우리는 연대한다(We Stand in Solidarity)'는 주제의 포스터를 만들었다. 포스터는 이란인과 러시아인의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타고 퍼졌다. 시위가 예정된 10일 오후 2시 무렵 신촌에는 중국인, 이란인, 러시아인 30여명이 모였다. 이들은 무너진 건물 앞에 눈물 흘리는 우크라이나 여성과 히잡을 벗은 채 환히 웃는 마사 아미니 사진을 들었다.

지난 10일 오후 3시 무렵 재한 이란인들이 서울 서대문구 신촌 공터에서 반정부 연대 시위를 하고 있다. 이들은 "단 하나의 해법, 혁명(One solution, revolution)" "당신의 침묵은 폭력이다(Your silence is violence)"이라 외쳤다. 누군가 "그녀의 이름을 외치자(Say her name)"이라 외치면 "마사 아미니"라 후창하기도 했다. /사진=김성진 기자.지난 10일 오후 3시 무렵 재한 이란인들이 서울 서대문구 신촌 공터에서 반정부 연대 시위를 하고 있다. 이들은 "단 하나의 해법, 혁명(One solution, revolution)" "당신의 침묵은 폭력이다(Your silence is violence)"이라 외쳤다. 누군가 "그녀의 이름을 외치자(Say her name)"이라 외치면 "마사 아미니"라 후창하기도 했다. /사진=김성진 기자.
이들은 시위대 사진을 찍는 머니투데이 취재진에게 '얼굴을 반드시 가려달라'고 요구했다. 중국인들이 특히 얼굴 노출을 두려워했다. 중국인으로 보이는 행인들이 시위대 사진을 찍을 때 이들은 고개를 돌렸다. 반정부 시위에 반대하는 재한 중국인 80여명이 단체 메신저방을 만들고 시위 참가자들 얼굴 사진을 공유하고 있다고 한다. 이른바 '신상털기'다.



A씨는 시위대 앞에 서서 "이란 거리에서 350여명이 죽고 1만5000여명이 체포됐다"며 "너무 늦기 전에 우리가 체계적인 변화의 촉매가 돼야 한다"고 외쳤다.

이어 "우리는 지금 행동해야 한다"며 "그들의 생명은 여러분과 저의 삶만큼이나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당시 길 건너 공터에서는 거리 공연이 열리고 있었다. 음악과 환호성 소리에 목소리가 묻히자 A씨는 목소리를 더 크게 질렀다. "여성, 삶, 자유"를 외칠 때 A씨의 목은 쉬어 있었다.



지난 10일 재한 러시아인들이 서울 서대문구 신촌에서 반정부 연대 시위에 참여하고 있다. 이들은 "우크라이나와 함께한다(I stand with Ukraine)" "푸틴을 막아달라(Stop Putin)"이라 외쳤다./사진=김성진 기자.지난 10일 재한 러시아인들이 서울 서대문구 신촌에서 반정부 연대 시위에 참여하고 있다. 이들은 "우크라이나와 함께한다(I stand with Ukraine)" "푸틴을 막아달라(Stop Putin)"이라 외쳤다./사진=김성진 기자.
중국, 러시아, 이란인들은 각자 준비한 구호를 함께 외쳤다. 러시아인들은 "전쟁에 익숙해지지 마라", "푸틴은 독재자", "우크라이나에 평화를"이라고 외쳤다.

이란인들은 "단 하나의 해법, 혁명", "당신의 침묵은 폭력"이라고 외쳤다. 누군가 "그녀의 이름을 외치자"고 하면 "마사 아미니"라고 후창했다.

같은 날 일부 중국인은 중국 대사관이 있는 서울 중구 명동 인근에서 반정부 시위를 했다. 이란인들은 오는 17일 서울 용산구 녹사평역 인근 공터에서 반정부 시위를 이어갈 계획이다. 러시아인들도 매주 정기적으로 반전 시위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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