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구로구 온수일반산업단지 내 임대문의 현수막이 걸려있다./사진=이재윤 기자
강추위가 들이닥친 지난 2일 머니투데이가 찾은 온수산단에선 주52시간제로 시름하는 곳은 S기공만이 아니었다. 온수산단은 면적 15만7560㎡(4만7661평)에 중소 제조업체 200여곳이 밀집한 산업단지다. 서울에 남은 마지막 기계공업단지로 손꼽힌다. 대다수가 산업·차량용 부품제조를 맡고 있는데, 거의 대부분의 업체에서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사업을 접는 곳도 적지 않다. 온수산단 곳곳엔 임대문의가 붙어있는 빈 공장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코로나19(COVID-19)로 외국인 근로자 공급이 끊긴데다 최저임금 인상까지 계속된 게 가장 큰 영향을 줬다고 한다. 무엇보다 지난해부터 5인 이상 사업장으로 주52시간제가 확대되면서 존폐의 위협을 받고 있다는 게 현장에서 만난 이들의 공통된 목소리다.
서울 구로구 온수일반산업단지 내 한 공장에서 근로자들이 작업을 하고 있다./사진=이재윤 기자
최근 열린 '중소기업 노동규제 개선 촉구 대토론회'에서도 중소기업 인력난에 관한 호소가 가장 컸다. 특히 30인 미만 사업장에 주 8시간 추가연장근로를 허용하는 추가연장근로제가 올해를 끝으로 일몰될 예정이어서 이를 걱정했다. 구경주 이플러스마트 대표는 "대학생 자녀가 있는 직원에 380만원을 주고 있는데 (내년부터) 300만원으로 낮춰야 한다"며 "이런 직원은 퇴사하거나 대리운전, 배달 등 투잡을 뛰어야 한다"고 말했다.
양옥석 중기중앙회 인력정책실장은 "행정력과 자금력이 부족한 30인 미만 중소기업들은 추가 채용이나 유연근무제로 근로시간을 단축하기에 역부족"이라며 "8시간 추가연장근로제마저 사라지면 인력 공백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52시간 적용 후 대·중소기업간 생산성 격차 더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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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8월까지 대기업 생산지수는 123.4인데 반해 중소기업은 96.8에 그친다. 제조업 생산성지수는 2015년을 100으로 보고 현 시점의 생산성을 비교하는 수치인데,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제조업 생산지수가 2015년 지수도입 이후 가장 큰 격차를 보였다. 300인 이상 대기업에 52시간제를 적용한 2018년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생산지수는 각각 107.9와 100.1이었다. 하지만 50인 이상 300인 미만 중소기업에 적용된 2020년에 이르자 생산지수는 109.9와 95.3으로 차이가 나기 시작했다. 50인 미만 사업장 도입이 적용된 지난해 7월 이후엔 대기업의 생산지수가 큰 폭으로 오른 반면, 중소기업은 제자리걸음을 걸었다. 연초부터 적용된 올해에는 그 폭이 더 넓어졌다. 기초체력이 튼튼한 대기업은 주52시간제에 잘 적응했던 반면 허약한 중소기업은 영향을 많이 받았던 것으로 해석된다.
생산성과 직결된 중소기업의 공장가동률도 전체 평균에 못 미친다. 1~8월 중소기업 제조업 공장가동률은 72.2%로 전체 제조업 76.6%를 따라잡지 못한다. 2019년에는 오히려 중소기업이 평균을 웃돌았다. 하지만 주52시간제가 시행된 2020년엔 평균보다 2.4%포인트 낮아진 것이다.
이런 가운데 중소기업의 대출규모는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중소기업의 은행권 대출잔액은 지난해 말 기준 886조4000억원으로 전체 규모의 83%를 차지했다. 지난달 말 기준 952조6000억원까지 불어 1000조원을 눈앞에 두고 있다. 연초에 비해 금리가 2배 가까이 높아진 영향으로 이자 부담은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중소기업의 연쇄 부도 가능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인력 수급 상황을 보면 미래는 더 어둡다. 대기업 대비 중소기업의 연구원수는 10년간 4.7%에서 3.8%로 감소했고, 전체 평균임금도 63.5%에서 58.8%로 줄어들었다. 특히 복지비용은 58.6%에서 39.8%로 차이가 더 크다. 신규인력이 중소기업을 외면하는 풍토가 가속화되면 중소기업의 성장은 요원해진다. 중소기업이 '생산성 악화→저임금 유지→우수인력 이탈→R&D 투자 위축→생산성 악화'로 이어지는 저성장의 늪에 빠진 셈이다.
노민선 중소벤처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중소기업 근속을 전제로 한 장학금 제도와 사업주·근로자간 성과공유같은 인력시장 유인책이 필요하다"며 "윤석열 정부 국정과제인 중소기업 생산성 특별법은 금융·세제와 기술개발을 지원하고 우선구매 등을 담고 있어 중소기업 생산성 향상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52시간제에 발목잡힌 中企 '주간→월' 단위로 바껴야
'근로시간 유연화'는 주단위로 묶여있는 근로시간을 월단위와 분·반기, 연단위로 늘려 적용하거나 노사가 합의하면 언제든지 연장근로가 가능하도록 하는 방안이다. 주52시간제로 경영애로를 겪는 사업주(사용자)의 문제를 해결하면서도 근로자의 선택권을 보장하는데 무게가 실린다. 김용진 서강대학교 교수(중소벤처기업정책학회장)는 "세밀하게 고민해서 경제 전반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 해야하는데 무조건 법만 바꾸려는 건 문제"라며 "납품시기와 인력수급 등을 안배할 수 있으려면 월단위 보다는 분기 단위로 늘리는 게 효과적"이라고 조언했다.
김 교수는 "궁극적으로 외국인 근로자를 늘려나가야 한다"며" 인구감소와 제조업 기피현상 등을 감안하면 지금의 2.5배 수준인 100만명 가량의 외국인 근로자를 받아들이는 대안도 있다"고 말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중소기업의 부족인원이 59만8000명에 달하는데, 이를 외국인 근로자로 대체하자는 의견이다.
노민선 중소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외국인 근로자 확대와 동시에 내국인 인력육성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노 연구위원은 "당분간은 외국인 근로자가 늘어나야 하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닐 것"이라며 "현재 고졸 취업률은 30%로 낮은데 중소 제조업체의 고졸취업을 활성화 해서 체질개선을 해야 한다. "고 덧붙였다.
올해 말까지인 8시간 추가연장근로제의 연장할 필요성도 있다. 노 연구위원은 "중소제조업의 40%이상이 하도급 기업인데, 마음대로 납품기간을 정할 수 없고 근로시간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임채운 서강대학교 명예교수도 "주52시간제로 중소제조업과 소상공인 등 3D(더럽고, 위험하고 힘든) 업종에 특히 피해가 심각한 현실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