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싸움 막는 냉장고"…세계가 놀란 LG 혁신, 개발 뒷얘기

머니투데이 오문영 기자 2022.12.05 0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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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OOO 앞에서 춤을 춰요."

"남편한테 OOO 색상 보고 내 기분을 파악해달라 했어요."

놀랍게도 냉장고 구매 후기다. 'LG 디오스 오브제컬렉션 무드업'(무드업 냉장고)이 그 주인공이다. 터치 한 번이면 도어 상칸 22종, 하칸 19종의 색상 중 원하는 것을 골라 공간 분위기를 바꿀 수 있다. 색상을 조합하면 17만개가 넘는 나만의 냉장고를 만드는 게 가능하다. 탑재된 블루투스 스피커를 통하면 다양한 음악도 함께 즐길 수 있다.



LG전자는 이 냉장고를 지난 9월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유럽 최대 가전 전시회 IFA 2022에서 공개하며 전 세계인들을 놀라게 했다. 냉장고라면 단연코 주방 한 편을 묵묵히 지켜줄 것이란 고정관념을 깨버렸다. 이미 제품이 출시된 국내에서는 뜨거운 반응이 이어지고 있고, 해외에선 출시를 기다리는 목소리가 연일 나온다.

어떻게 기존에 없는 혁신이 가능했을까. 지난달 28일 서울 영등포구 LG트윈타워에서 제품 기획·개발에 참여한 3명의 전문가를 만나 물었다. 이들은 무드업 냉장고가 고객 입장에서 지독하게 고민하고 논의한 끝에 나온 결과물이라고 입을 모았다. '고객 경험의 완전한 진화를 이뤄보자'는 말은 과정 전체를 관통하는 신념 같은 말이었다고 전했다.



왼쪽부터 LG전자 디자인경영센터 이호필 전문위원, LG전자 H&A사업본부 키친어플라이언스상품기획팀 김명상 책임, LG전자 디자인경영센터 익스피어리언스 인포매틱스 태스크 이건우 리더./사진제공=LG전자왼쪽부터 LG전자 디자인경영센터 이호필 전문위원, LG전자 H&A사업본부 키친어플라이언스상품기획팀 김명상 책임, LG전자 디자인경영센터 익스피어리언스 인포매틱스 태스크 이건우 리더./사진제공=LG전자


혁신 뒤엔 남다른 시작이…"고객 입장에서 지독한 고민"
첫발은 2020년 LG전자 디자인경영센터 '익스피어리언스 인포매틱스 태스크'(EI 태스크)에서 쏘아 올렸다. 팀원들은 냉장고 교체 주기가 빨라지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사람들은 평소 기분에 따라 집안 환경을 바꾸고 싶어 했고, 이 욕구에서 냉장고도 예외가 아니었다. 과거에 비해 집 안에서 파티를 즐기는 사람이 늘고, 혁신적 가치에 돈을 소비하는 경향이 짙어지고 있다는 점도 눈에 띄는 대목이었다.

변화하는 트렌드를 포착했으나 소비로 이어질지는 미지수였다. 철저한 검증과정이 뒤따랐다. 이건우 LG전자 디자인경영센터 EI 태스크 리더는 "목업(실물 모형) 등을 고객들에게 비밀리에 보여주며 검증과정을 여러 차례 거치며 공을 많이 들였다"면서 "대규모의 고객은 아닐 수 있어도 굉장히 파급력 있는 일부 고객들이 분명히 (무드업 냉장고를) 좋아한다는 것을 검증했다"고 밝혔다.

이호필 LG전자 디자인경영센터 전문위원은 "일정한 컨셉과 고객층을 사전에 설정하지 않고 변화하는 취향을 포착하고 발굴하는 데 집중했기에 가능했던 일"이라며 "연령과 세대로 끊기보다는 취향과 성향, 가치관, 성격, 관심사, 가지고 있는 제품 등 여러 가지의 것들을 가지고 고객들을 분류했다"고 전했다.


"음성인식 기능 넣읍시다" 기획 막바지에 벌어진 소동
이후 상품화되기까지 디자인·연구개발·상품기획 조직이 하나가 돼 움직였다. 매주 화상 회의를 진행했다. 끝없는 논의와 설득이 이어졌다. 눈으로 직접 보지 않으면 이해가 어려운 제품인 만큼, 시제품은 전국 곳곳의 사업장을 옮겨 다녔다. 극비 프로젝트였던 탓에 매번 까다로운 보안 서약을 거쳤다. 이 모든 과정은 고객을 일 순위로 한 채 이뤄졌다.

고객 관점에서 기존에 없던 새로운 제품을 만드는 일이다 보니 기술적 어려움도 많았다. 빛을 통해 색상을 연출하지만, 빛이 아닌 냉장고 제품 본연의 색으로 보이도록 해야 하는 일은 가장 큰 숙제였다. 이호필 전문위원은 "가장 어려웠던 것은 오브제컬렉션 본연의 가치를 잃지 않는 것이었다"면서 "당장은 화려해서 구매하더라도 결국엔 많은 시간은 냉장고 자체로 있을 것이기 때문"이라 말했다.

이 전문위원은 이어 "남들이 쉽게 생각 못하는 굉장한 특허들이 숨어있다"면서 "특히 TV와 다르게 베젤(테두리) 없는 냉장고에서 빛샘 현상을 막기 위해 시간을 많이 쏟았다. 어떤 색상으로 바꿔도 기존 오브제컬렉션 냉장고의 실제 고급스러운 색상처럼 보이게끔 하기 위한 노력이었다"라고 말했다.

LG 디오스 오브제컬렉션 무드업의 다양한 컬러./사진제공=LG전자LG 디오스 오브제컬렉션 무드업의 다양한 컬러./사진제공=LG전자
제품 기획 막바지에 작지 않은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음성인식 기능을 추가로 탑재하라는 지시가 떨어진 것이다. 단순히 부품 하나를 교체하는 수준이 아닌, 내부에 들어가는 칩들을 모두 바꿔야 하는 일이었다.

김명상 LG전자 H&A(생활가전)사업본부 키친어플라이언스상품기획팀 책임은 "무드업 냉장고 통해 홈파티를 즐기는 경우 가장 이상적인 장면이 무엇일까 고민했다"면서 "LG 씽큐 앱을 통해 색상과 음악을 고르는 것보다는 '하이 엘지, 파티타임'이라 말하면 음악이 나오고 컬러가 움직이는 장면이 인상적일 것이란 의견이 나왔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개발 일정이 지연된다 하더라도 가장 이상적인 고객 경험이라 한다면 반영해야 한다는 의사결정이 이뤄졌다"면서 "개발팀이나 제어팀 등 직원들이 고생했던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무드업 혁신 이어질까…
고객을 향한 끝없는 고민과 노력은 결실로 이어졌다. 이건우 리더는 "호평을 보이거나 구매를 결정한 고객들이 초기에 설정했던 라이프스타일 특징과 유사한 모습을 보여 뿌듯했다"고 말했다. 이호필 전문위원은 "필수가전이던 냉장고가 컬러 마케팅이 중요해지면서 취향 가전으로 넘어왔고, 무드업을 통해 엔터테이닝 가전으로 거듭났다고 생각한다"면서 "그런 역할을 하는 제품은 무드업 뿐이다. 완벽한 진화를 이뤄내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전했다.

고객 경험을 위한 무드업 냉장고의 변신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색상 변경 후 별다른 움직임이 감지되지 않으면 30분 뒤 자동으로 꺼지던 것을 3시간으로 연장한 것이 대표적이다. 김명상 책임은 "지속 시간이 짧아서 아쉽다는 등의 VOC(고객 목소리)를 빠르게 캐치해 조치했다"면서 "고객들의 원하는 무드업 냉장고 콘텐츠도 지속 발굴해 제공할 예정"이라 말했다.

2023·2024년형 무드업 냉장고를 기대해도 될까. 이날 만난 전문가들은 긍정적인 반응을 내비쳤다. 이들은 "(출시 이후) 반응이 좋아서 다음 제품을 빠르게 준비하고 있다. 자세히 얘기하기는 어렵지만 용량 대를 다양화할 계획이고, 해외 출시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색상을 취향에 따라 바꾸는 기능이 다른 제품으로도 확대될지를 묻는 말에는 "어떻게 생각 하시냐"고 역으로 질문하며 웃음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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