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점에 착안한 기업지배구조 개선 펀드도 종종 나타났다. 한 외국계 자산운용사는 고령의 대주주가 보유한 기업의 2~3대 주주가 될 정도의 지분을 사들이는 방식을 취했다. 상속 이후 주가가 기업가치를 반영할 것이라는 판단에서였다. 행동주의를 표방한 펀드의 성격상 지분을 사두는 데 그치지 않았다. 상속세를 내기 위해 주식을 처분하는 과정에서 경영권이 위협받게 될 경우 '주주가치 실현'을 위한 요구조건을 내걸고 응하면 백기사 역할을 하고 거부하면 적대적 인수합병을 하겠다는 전략적 접근을 했다.
그러니 가업승계를 위해서는 자식 명의의 기업을 세워 일감을 몰아주는 등 법과 도덕에 반하는 방법을 찾을 수 밖에 없다. 기업지배구조의 후진성도 과도한 상속·증여세에서 기인한다. 그렇지 않으면 기업을 팔아야 한다. 락앤락, 농우바이오, 유니더스 등의 중견기업의 주인이 사모펀드로 바뀌었다. 천문학적인 세금을 내기 위해 주식을 파는 것도 만만치 않다. 대주주는 적대적 M&A에 노출되고 이를 막느라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야 한다. 세금납부를 위한 매물 부담으로 주가가 빠지면 소액주주들 뿐만 아니라 국민연금 등 연기금의 수익률에 악영향이 간다.
사람은 제도에 반응하는 존재다. 제도를 어떻게 설계하느냐에 따라 행위가 바뀌고 결과가 달라진다. 물려받은 재산의 절반 이상을 국가가 약탈하는 상속·증여세를 수용할 수 있는 수준으로 낮추되 도덕적 해이나 위법을 저지르면 강력 처벌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아가야 한다.
정부가 유명무실한 기업상속공제제도의 실효성을 높여 가혹한 상속·증여세를 줄여주는 세제개편안을 내놓았지만 국회 통과가 불투명하다. '기업의 번성'과 '고용의 지속'이 다른 게 아니라면 업력을 이어갈 수 있는 합리적 제도로 뒷받침해야 한다. '부자감세'라는 프레임으로 기업과 일자리를 걷어차는 한 백년기업은 나올 수 없고 오히려 세금의 기반이 허물어진다. 복지제도도 위태롭게 되고, 연금고갈 시기도 앞당겨질 것이다. 그렇게 하는 것이 선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