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작출시 줄줄이 연기, 게임업계 "경직된 주 52시간제 개선해야"

머니투데이 최우영 기자 2022.12.05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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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시간'에 갇힌 대한민국] 2-① 유연한 근무제도 호소하는 업계

편집자주 대한민국 산업현장이 기술혁신과 디지털혁명 등으로 급변하고 있다. 또 일하는 방식과 노동 구조의 변화, 해외 인력 수급, 고령화에 따라 노동시장이 대변혁에 직면해 있다. 하지만 '주 52시간제'로 정해진 근로시간제도는 여전히 과거 패러다임에 머물고 있다. 기업들은 이 틀에선 새로운 산업환경에 대응하기 힘들다고 토로한다. 우리 사회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 근로시간제도 개편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머니투데이가 실제 산업현장의 현실을 짚어보고 대안을 모색해본다.

올해 출시 예정이던 엔씨소프트의 대형 신작 TL의 트레일러 영상. 출시가 지연되며 내년 상반기 출시 역시 불투명한 상황이다. /사진=엔씨소프트올해 출시 예정이던 엔씨소프트의 대형 신작 TL의 트레일러 영상. 출시가 지연되며 내년 상반기 출시 역시 불투명한 상황이다. /사진=엔씨소프트


"올해 게임사들이 수년간 개발해온 대작 게임들을 연내 출시하겠다고 공언했지만 줄줄이 연기하고 있습니다. 완성도를 높이기위해서 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개발인력 운용이 타이트하다는 반증입니다. 올들어 게임사 실적과 주가부진도 이와 무관치않습니다. 경직된 현행 주52시간제도 하에서는 이같은 출시지연이 상시화될 수 밖에 없습니다."



신작 가뭄에 시달리는 게임업계가 근로제 유연화를 호소하고 있다. 신작 출시를 앞두거나 이용자 민원에 적극 대응해야하는 비상 상황임에도 인력운용이 어렵다는 것이다. 이 같은 호소에는 고숙련 인력의 집중 근로가 필요할 때, 제조업처럼 무작정 고용을 늘린다고 업무를 처리할 수 없다는 현실적 배경도 있다.

신작 일정 밀리면서 주가도 '바닥권'
5일 게임업계에 따르면 대작 게임으로 기대를 모으던 엔씨소프트의 TL, 펄어비스 (30,350원 ▼300 -0.98%)의 붉은사막 등은 출시 일정이 연기되면서 각각 내년과 내후년에 선보일 예정이다. 이마저도 각 업체에서는 시기를 확정짓지 못하는 상황이다. '미래 먹거리'를 담당할 신작 출시 지연에 각사 주가도 좀처럼 상승하지 못하고 있다.



신작 출시 지연은 과거처럼 신작 개발 마무리 단계에 개발인력을 집중 투입하는 게 힘들어졌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코로나 팬데믹 시기 활성화된 재택근무에 더해 주 52시간제가 정착하면서 이를 넘어서는 근무가 원천봉쇄된 탓이다. 한 게임업계 관계자는 "과거 유연한 근로가 가능하던 시기엔 크런치모드를 겪고 나면 장기간의 휴가를 재량껏 누렸는데, 이젠 선택지가 없어진 셈"이라고 토로했다.

최근 전병극 문화체육관광부 1차관과 게임업계 간담회에서도 주52시간제 개선요구가 이어졌다. 이들은 비단 신작 출시만이 아닌, 대규모 버그 발생 등 이용자 민원이 폭주하는 시기에도 유연한 근로시간이 필요하다는 점을 호소했다.

초보 고용 늘린다고 버그 잡지 못해
/사진=게티이미지뱅크/사진=게티이미지뱅크
게임업계의 근로시간 완화 요구에는 비교적 고숙련 인력이 투입되는 특성이 반영됐다. 신작 출시에는 전사적 개발역량을 단기간에 모아야해서다. 과거 정부가 주 52시간제 도입 당시 대안으로 제시했던 '고용 증대'만으로는 해결하기 힘들다. 개발 히스토리를 공유하고 돌발적으로 발생하는 버그에 대처할 베테랑들의 집중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이용자 민원 발생 등의 돌발상황 대처 역시 마찬가지다. 이미 출시한 게임이나 서비스에서 대규모 장애가 발생할 때는 소수의 당직 인력만으로 해결하기가 힘들다. 게임은 아니지만, 최근 데이터센터 화재로 각종 서비스가 먹통이 됐던 카카오 (54,400원 ▼400 -0.73%)의 경우 전 부문 직원들이 긴급히 출근해 판교 카카오아지트에 밤새 불이 켜진 모습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근로시간을 정해놓지 않는 재량근로제 역시 업무지시가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IT 업종에 대입하기는 쉽지 않다. 업계 관계자는 "평상시 자유로운 업무 형태를 띄다가도 집중이 필요한 시기에는 명확한 방향성과 지시 아래 고숙련 인력들이 일사불란하게 집중 협업해 문제를 해결하는 게 IT업계의 특징"이라며 "다른 업계와 근로제도를 다르게 가져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연장근로, 1주 12시간 대신 1달 52시간으로 바꿔야"
/삽화=임종철 디자인기자/삽화=임종철 디자인기자
게임업계는 연장근로 정산 기준을 1주일 12시간이 아닌, 1달 52시간으로 바꾸는 방안을 바라고 있다. 1달 전체 근로시간을 늘리지 않으면서도 유연하게 비상상황에 대응할 여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출퇴근시간을 유연하게 가져갈 수 있는 선택근로제 단위기간은 현행 3개월에서 6개월로 늘리길 원한다.

일각에서는 이 같은 근로시간 유연화가 자칫 1주일 안에 한 달의 모든 연장근로를 쏟아붓는 '주 90시간 근로'와 같은 극단적 형태로 나타날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다만 이는 '11시간 연속 휴식 보장' 등의 제도적 장치 덕분에 실제로 나타나기는 힘들 전망이다.

다만 노조가 없고, 이미 존재하는 근로기준법 등에 대한 위반이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중소 사업장에서는 이 같은 근로제도 유연화 방안이 과거 악용되던 '크런치모드'를 다시 불러올 것이란 우려도 여전하다. 한 중소업체 관계자는 "근로제도를 개선하더라도 11시간 연속 휴식 등을 위반하는 업체에 대해서는 감시 및 처벌을 강화하는 투트랙이 필요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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