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현지시간) 카타르 도하 알투마마 스타디움에서 열린 월드컵 조별리그 B조 이란 대 미국 경기에서 이란 응원석 관중들이 히잡을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끌려가 의문의 죽음을 당한 여성 '마흐사 아미니'의 이름이 적힌 종이를 들고 있다./로이터=뉴스1
미국과 이란은 정치적으로 오랜 앙숙이다. 1979년 이슬람 혁명으로 반미 정권이 들어섰고, 같은 해 벌어진 테헤란 주재 미 대사관 인질 사건으로 양국 관계는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넜다. 이후 이란의 핵 개발과 이에 따른 미국의 경제 제재 조처로 두 나라가 갈등과 협상을 반복하면서 수십 년간 충돌을 이어왔다.
이런 아이러니한 상황이 연출된 것은 반정부 성향의 시민들이 이란 대표팀을 '배신자'로 간주하고 있어서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란 대표팀이 출국 전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을 만나 고개를 숙여 인사하는 모습에 국민들은 분노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8월 집권한 보수 강경파인 라이시 대통령은 집권 후 여성들의 복장 단속을 강화하는 등 여성 인권을 후퇴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히잡 의문사'로 시작된 이란 반정부 시위는 석 달째 이어지고 있다. 22세 여성 마흐사 아미니는 지난 9월 13일 히잡을 느슨하게 착용했다는 이유로 체포됐는데, 사흘 만에 감옥에서 사망했다. 경찰은 심장마비로 숨진 것이라고 주장했으나, "경찰이 진압봉으로 아미니의 머리를 때렸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전국에서 시위가 격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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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월드컵 대표팀 사이드 에자톨리히가 인스타그램에 게재한 사마크 관련 게시물/사진=인스타그램 캡처
한편 이란 대표팀 일부 선수는 공개적으로 정부를 비판하고 반정부 시위에 대한 지지를 표했다. 대표팀 간판 사르다르 아즈문은 월드컵을 앞두고 소셜미디어(SNS)에 "이란 여성과 민중을 죽이는 건 부끄러운 일이다. 이에 대한 처벌이 국가대표 제외라면, 그것은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겠다"며 정부를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이란 대표팀은 지난달 21일 조별리그 1차전 잉글랜드와의 경기에서는 국가 제창을 거부하며 저항 의사를 밝혔다. 이에 이란 당국이 가족을 볼모로 삼으며 선수들을 협박하고 있다고 CNN은 보도했다. 이란 대표팀은 미국전에서는 작은 목소리로 국가를 따라 불렀는데, 아즈문은 땅을 바라본 채 침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