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길을 다니다보면 "니하오"라는 말을 심심찮게 듣는다. 옆에 중국사람이 있는지 고개를 돌려 살펴보면 동양인은 나뿐이다. 내가 한국인임을 밝히면 그제서야 '김치, 삼성, BTS'라는 단어가 들려온다. 미국 내 중국인 또는 중국계 인구가 워낙 많다보니, 이제 웬만한 동양인은 중국인이라고 여기는 것 같다.
트럼프 행정부 이후 계속되는 미·중 갈등으로 양국 간 감정의 골은 아직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지만, '메이드 인 차이나'가 '아메리칸 라이프'에 미치는 영향은 여전히 지대하다. 미국 최대 온라인쇼핑몰 '아마존'에서 물건을 주문하면 상당수는 중국어 표기가 붙은 상품 상자에 담겨 배송된다. 제품에 문제가 있어 판매처에 '애프터서비스'를 신청했더니, 얼마 뒤 중국 선전에서 부품을 보내와 당황했던 기억이 있다. 중국 공급망에 문제가 생기면 미국인들의 생활은 당장 불편해질 수밖에 없다.
미국에서 지내는 중국인들도 고국의 현실에 마음이 편치 않다. 뉴욕시 근교에 거주 중인 상하이 출신의 한 중국인은 "나와 가족은 중국에 절대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더 정확히 표현하면 "돌아갈 수 없다"고 했다. 자신이 알고 있는 중국이 더 이상 아니기 때문이다.
문득 10년 전 중국 베이징에서 만났던 중국 청년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시멘트 바닥의 낡은 대학 기숙사에서 그들은 미래를 꿈꿨다. 찢어지게 가난했던 과거와 비교할 때 현재 생활은 훨씬 좋아졌고, 미래는 지금보다 더 나을 것이라는 확고한 믿음이 있었다. 그래서 중국을 통치하는 공산당이 무슨 결정을 하든지 믿었고(상관하지 않았고), 입을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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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침묵했던 '그들'이 길거리로 나왔다. 1989년 천안문 항쟁 이후 33년 만이다. 서슬퍼런 중국 공안에 맞선 용감한 시위대가 등장한 것은 '민생' 때문이다. 사람들은 살기 힘들어졌고, 더 나은 미래를 그릴 수 있는 꿈도 사라졌다. 경제를 최우선 과제로 삼아 중국을 세계2위 경제대국의 자리에 올려놨던 장쩌민 전 국가주석도 지난 30일 별세했다.
아직 미국이 중국을 압도할 수 있는 힘 중 하나는 '민생 중심'의 국정운영이다. 이번 중간선거를 앞두고 조 바이든 대통령은 기름값을 낮추기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뛰었다. 물론 표를 얻기 위한 노력이었겠지만, 그래도 중심에는 '국민의 삶'이 있었다.
2050년 세계 최강국이 되겠다는 중국의 꿈은 요원해 보인다.
. /사진=임동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