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파업해서 출근 안할래요"…'근무 혁신' 나선 기업들

머니투데이 오진영 기자 2022.12.01 0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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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윤선정 디자인기자/사진 = 윤선정 디자인기자


#경기도 안양시에서 서울 종로구까지 매일 왕복 3시간을 출근하는 직장인 A씨(32)는 최근 늘어난 출근 시간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장애인 단체의 시위로 지하철이 지연되고, 서울행 광역버스의 입석까지 중단되면서 불편이 가중됐다. A씨는 "오늘 총파업 때문에 여유를 두고 아침 7시에 집을 나섰는데 9시 출근에 실패했다"라며 "회사에서도 뚜렷한 대책이 없어 스트레스가 극심하다"고 호소했다.



잇단 파업과 시위로 수도권 출·퇴근길 불편이 가중되자 재계가 유연 근무에 속도를 내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재택근무와 거점오피스 근무 등 다양한 형태의 근무 효율성이 입증되자 불필요한 출근 스트레스를 줄이고 업무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조치다. 출근이 불가피한 제조업 기반의 기업에서도 선택형 출퇴근제를 도입하는 등 '출근 혁신'은 점차 가속화될 전망이다.

30일부터 서울교통공사 양대노조 연합교섭단은 지하철 1~8호선과 9호선 2·3단계에서 총파업에 돌입했다. 1호선(53.5%)와 2호선(72.9%), 4호선(56.4%) 등 주요 호선의 운행률은 최대 절반 수준으로 줄어든다. 지난 18일 '이태원 참사'로 경기도~서울을 오가는 광역버스 입석이 중단돼 3000여명이 영향을 받은 지 약 2주 만이다. 전국장애인철폐연대(전장연)의 출근길 지하철 시위도 1년째 이어지고 있다.



주요 기업들은 출근 스트레스 줄이기에 나섰다. 근로 문화를 개선해 직원들의 업무 만족도를 높이는 '사내 복지'의 일환으로, 출퇴근시간을 조정하거나 업무 공간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취업포털 벼룩시장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직장인 10명 중 8명은 출퇴근시 스트레스를 받으며, 소요 시간이 왕복 1시간 30분 이상인 경우 직장 생활에 만족하는 응답자는 22.7%에 불과했다.

가장 적극적인 곳은 삼성전자다. 2015년부터 생산직을 제외한 전 직군에서 자율출퇴근제를 적극 운영하고 있다. 구성원들은 다른 직장인들이 몰리는 '러시 아워'를 피해 근무 시간을 자율적으로 정할 수 있다. 사무실 출근이 번거롭다면 지난달 문을 연 서울 서초와 대구, 수원, 구미, 광주 등에 마련된 유연 근무공간 '딜라이트'를 활용해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근무할 수 있다.

거점 오피스를 도입하는 기업들도 점차 늘고 있다. LG그룹의 계열사 CNS는 최근 서울과 경기에 48곳의 거점 오피스를 확대하면서 기존 거점 오피스(3곳)보다 10배 이상 확대했다. SK는 그룹 차원에서 근무 효율성을 위해 거점 오피스를 늘리고 있다. 그룹 내 핵심 계열사인 SK하이닉스는 내년 초 서울 중구 을지로에 거점 오피스를 마련할 계획이다.


거점오피스 외에 집이나 해외 등 근무지를 선택할 수 있는 근무 형태도 주목받는다. LG전자는 직원들이 회사 밖에서 자유롭게 근무하도록 하는 '리모트 워크'를 운영 중이며, SK하이닉스는 5주간 해외 사업장에서 근무하는 '글로벌 익스피리언스 프로그램'을 시행하고 있다. SK그룹의 일부 계열사들은 매달 3째주 금요일을 쉬는 '해피 프라이데이' 제도도 도입했다.

새로운 형태를 뜻하는 '뉴노멀' 근무는 노동시장의 주류로 자리잡은 MZ세대(1980년대~2000년대 초반 출생자) 직장인의 선호도가 높다. 특히 인력난에 시달리고 있는 반도체·전자 업종의 경우 이같은 복지 확대에 예민하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주요 기업은 초봉을 5~10% 이상 올려 구인에 나섰지만, 연봉 인상에 한계가 있어 사내 복지가 인력 확보에 도움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재계 관계자는 "코로나19 기간 다양한 근무 형태의 효율성이 이미 입증됐기 때문에 일부 업종을 제외하고는 반드시 출근할 필요가 없어졌다"라며 "유연근무는 디지털 기기에 익숙하고 워라밸을 중시하는 MZ세대의 만족감이 높고, 불필요한 스트레스로 인한 퇴사·이직을 줄일 수 있어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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