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박지혜 기자 =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30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중대재해 로드맵을 발표하고 있다. 이날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해 지금껏 형식적으로 운용되고 있던 기업의 ‘위험성평가’를 의무화하기로 했다. 이를 통해 8년째 정체 중인 산재 사고사망 만인율을 오는 2026년까지 0.29로 감축하겠다는 계획이다. 2022.11.30/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최근 5년간 산업현장에서 발생한 중대재해로 사망한 근로자의 숫자다. 사망자 수가 조금씩 줄어드는 추세지만 여전히 800명을 넘어선다. 중대재해는 개인의 생명과 가족의 행복을 파괴하고, 사회적 갈등은 물론 국가적 손실을 초래한다.
최근 산업안전법 전면개정(2020년 1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등 처벌을 강화했지만 여전히 중대재해는 줄지 않고 있다. 올해 1~9월까진 510명의 근로자가 일터에서 목숨을 잃었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2022년 1월27일)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사망자 수는 오히려 8명 늘었다. 대전 아울렛 화재, SPL 끼임사고, 안성 물류창고 붕괴 등 근로자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
우리나라는 다른 선진국에 비해 제조업과 건설업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고 고령자, 외국인 근로자 등 안전에 취약한 계층도 빠르게 증가하고 있어 중대재해에 상대적으로 취약한 게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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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30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가진 브리핑에서 "세계 10위권 선진국에 걸맞게 중대재해 감축 정체기를 극복하고 산업안전 선진국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기존 사고와 방식에서 벗어나야한다"며 "산업안전 패러다임을 대전환하고 중대재해 감축에 국가적 역량을 모으기 위해 이번 로드맵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우리나라는 1981년 사업장 안전의 기본법으로 산업안전보건법을 제정한 이래 규제와 처벌에 주안점을 두고 중대재해 감축 전략을 유지해 왔다. 산업안전보건법령은 1220개 조항으로 방대하다. 뿐만 아니라 법령이 본래 가지는 제약상 획일적·일반적인 것이 많아, 개별 사업장의 특성 및 여건 등이 반영되지 못한다. 그러다보니 노사가 이행하는 과정에서 기본 취지인 사업장의 안전을 향상하려 노력하기보다는 법령의 세세한 기준을 맞추려고만 하는 경향이 있다. 규제의 내용 또한 급변하는 신기술의 반영이 지체되어 사각지대가 발생하는 등 안전보건규정이 시대 흐름에 뒤떨어지는 문제도 심각하다.
산업안전감독도 마찬가지다. 매년 2만~3만개 사업장에 대해 감독을 실시하고 있으나 주로 적발과 처벌에 중점을 두고 운영되고 있다. 사고를 유발하는 요인보다 안전관리자 선임, 안전보건교육 실시 여부 등 적발하기 쉬운 서류상 점검에 치중한다. 지난 5년간 특별감독을 실시한 83개 기업 중 12개 기업에서 사망사고가 재발하는 등 감독의 예방 효과도 미흡하다.
기존의 산업재해로부터 동종·유사 재해의 재발 방지를 위한 교훈을 얻지 못하고, 기본적 안전대책조차 갖추지 못한 기업도 많다. 최근 사회적으로 이슈화 되었던 한 식품회사의 경우 5년간 동일·유사한 끼임 사고가 15건이나 발생했음에도 별다른 대책을 취하지 않은 채 생산을 계속해오다 결국 끼임 사망사고로 이어졌다.
우리보다 먼저 중대재해 감축의 정체기에 직면했던 선진국은 1970년대 이후 사전 예방에 더욱 중점을 두고 노사의 자발적 노력을 촉진하는 방향으로 정책 패러다임을 전환했다. 노사가 함께 사업장 내 유해·위험 요인을 스스로 파악하여 개선대책을 수립·이행하는 '위험성평가' 제도를 중심으로 자기규율 예방체계를 확립한 것이다. 이는 그간의 경험에 비춰 다수의 입법을 통한 촘촘한 정부 규제와 처벌만으로는 더 이상 사망사고를 줄일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자기규율 예방체계로의 전환 이후 선진국의 중대재해는 크게 감소했다. 영국은 자기규율 예방체계에 기반한 산업안전보건법 제정(1974년) 이후 5년 만에 사고사망만인율이 30%(0.34 → 0.24‱) 줄었다. 이후에도 빠른 속도로 중대재해가 감축됐다. 현재 영국, 독일의 사고사망만인율은 각각 0.7‱, 0.8‱로 우리나라의 20% 수준에 그치고 있다.
이 장관은 "중대재해 사고를 줄일 수 있는 산업안전 패러다임을 바꾸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이번 로드맵을 토대로 내년 상반기까지 재계와 노동계, 학계 등과 충분히 논의해 중대재해를 줄일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을 찾고 또 그것을 위해 모든 것을 동원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