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첫 원자력발전소인 '고리 1호기'가 40년 간의 가동을 멈추고 영구 정지됐다. /사진=뉴스1
원전 1기 해체에 드는 비용은 약 1조원에 달한다. 앞으로 약 100년 동안 550조원 규모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는 전 세계 원전 해체 시장이란 기회가 우리 눈 앞에 열리는 셈이다.
원전 해체에는 통상 15년 정도가 걸린다. 사용후핵연료 반출 등에 5년, 비(非)방사성 시설 철거와 방사성 시설 제염·해체 등에 8년, 이후 부지 복원에 2년이 소요된다. 해체 절차는 대개 사용후핵연료 냉각 및 반출→제염·해체→비방사성시설 철거→폐기물처리시설 구축→방사성시설 철거→부지 복원 순이다.
방사능 제염 작업과 해체, 폐기물처리 등은 고도의 기술력을 필요로 한다. 한국에너지기술평가원에 따르면 2019년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원전 해체 관련 기술수준은 정량적으로 선진국 대비 82% 정도다. 세부적으로 설계·인허가 89%, 제염 76%, 해체 81%, 폐기물처리 73%, 부지복원 74% 등이다. 선진국을 넘어설 정도는 아니지만 고리 1호기를 자체 해체할 수 있는 기술 수준엔 도달했다는게 전문가들의 일반적인 평가다.
문제는 '경험'이다. 원전 해체 업계 관계자는 "확보한 기술을 바탕으로 원전 해체 경험을 쌓아야 기술을 보완할 수 있다"며 "경험없이 기술만 가지고 해외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추긴 어렵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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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컨설팅업체 베이츠화이트는 전 세계 원전해체 시장 규모가 2116년까지 549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했다. IAEA(국제원자력기구)에 따르면 올 9월 기준으로 전 세계에서 원전 203기가 영구 정지 상태로, 해체를 기다리고 있다. 현재까진 해체된 원전은 불과 21기다. 미국 에너지솔루션스(Energy Solutions), 영국 아멕(AMEC), 프랑스 오라노(Orano) 등 초기 원전 도입국가들을 중심으로 10여개 주요 기업들이 원전해체 시장을 장악해왔다.
원전 업계 관계자는 "2002년 한국형 차세대 원전 APR1400 개발 이후 2009년 UAE(아랍에미리트) 첫 원전 수출까지 7년이 걸렸다"며 "고리 1호기를 시작으로 국내 원전 해체 기술과 처리·운영 능력을 국·내외에 증명해야 첫 '해외 원전 해체 수주'라는 기회가 생길수 있고 관련 시장을 선점할 수 있다"고 말했다.
27일 산업통상자원부와 한수원 등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원전 해체에 필요한 96개 기술을 모두 확보한 상태다. 정부는 2026년까지 경수로 실증 기술도 확보한다는 방침이다. 정부 관계자는 "자력으로 원전을 해체할 수 있는 기술적, 이론적 토대는 마련된 상태"라며"지금은 확보된 기술을 실증하는 절차를 밟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 원전 26기 중 영구 정지 상태로 해체가 예정된 것은 고리1호기와 월성 1호기 등 2곳이다. 24기의 상업 운영 원전 중 2030년까지 설계수명이 도래하는 원전도 10기에 달한다. 원전은 핵연료와 냉각재 종류에 따라 △가압경수로형 △가압중수로형 △비등경수로형 등이 있는데 우리나라의 경우 가압경수로형이 22기, 가압중수로형이 4기가 있어 각각에 맞는 해체 기술이 필요하다.
원전 해체 첫 대상인 고리 1호기는 가압경수로형이다. 앞서 정부는 2015년 '원전해체산업 육성정책'을 발표하며 96개 해체기술 중 핵심기반기술 38개는 한국원자력연구원(KAERI)이, 상용화기술 58개는 한수원에서 개발을 추진하기로 했다. 한수원은 방사선관리 오염도·선량변화 예측평가(2018년), 유기착화성 화학제염(2018년), 실시간 방사능 현장측정(2019년), 해체 관련 원격 조작·취급·제어(2020년), 삼중수소 처리(2021년) 등 지난해 12월 기준 △설계 및 인허가 △제염 △해체(절단) △폐기물 처리 △부지 복원 등 5개 분야 18개 분류 58개 원전 해체 상용화기술을 모두 확보했다. 한수원 관계자는 "원자력안전위원회가 해체 승인을 하면 해체 절차를 진행할 수 있는 기술력은 확보된 상태"라고 설명했다. 한국원자력연구원 역시 약속한 38개 기술 확보에 성공했다.
가압경수로 해체를 위한 전문 연구기관도 생긴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달 31일 울산 울주군에서 원천해체연구소 착공식을 가졌다. 원전해체연구소는 원전 해체를 전담하는 우리나라 최초의 연구소로 △해체기술 실증 △해체 기술개발 지원 △방폐물 분석 지원 △국내외 원전해체 정보 제공 등의 역할을 수행한다.
천영길 산업통상자원부 에너지산업실장이 31일 오전 울산시 울주군 서생면 건설현장에서 열린 원전해체연구소 착공식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 제공) /사진=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원전 해체를 위한 인력 양성도 관련 생태계 조성 차원에서 중요한 과제다. 산업부에 따르면 2030년까지 2600여명의 원전 해체 인력이 필요하나 2019년 기준 공공기관 전담인력은 250여명 수준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지난 2021년부터 부산·울산 지역에너지 클러스터 인재 양성을 목표로 지방자치단체와 한국전력 국제원자력대학원대학교(KINGS)가 80억원을 출연해 매년 75명의 전문인력을 양성하고 있다"며 "원전 해체 본격화와 함께 한국원자력 마이스터고 등 고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관련 인력을 양성하고 배출하는 정책적 지원을 강화할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원전 해체 관련 조기 사업 발주도 이뤄지고 있다. 한수원은 지난 2019년부터 올해 10월까지 고리 1호기와 월성 1호기 해체 관련 △해체사업 공정 3D(3차원) 시뮬레이션 제작용역 △해체방사성폐기물 포장용기 시험 모델 제작 △원전해체 통합 사업관리 프로세스 설계 △월성1호기 해체폐기물 처리시설 설계 용역 △플라즈마 토치 혼합폐기물 용융로 시스템 구매 등 1613억원 상당의 사업을 발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