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씬한 여성에 떼로 몰려가 '찰칵'…맘껏 찍으라는 여성들, 왜[김지산의 '군맹무中']

머니투데이 베이징(중국)=김지산 특파원 2022.11.26 0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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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거리 촬영사 '제파이'와 미래 인터넷 스타들의 공생관계

편집자주 군맹무상(群盲撫象). 장님들이 코끼리를 더듬고는 나름대로 판단한다는 고사성어입니다. 잘 보이지 않고, 보여도 도무지 판단하기 어려운 중국을 이리저리 만져보고 그려보는 코너입니다.

제파이라는 이름의 도촬꾼들/사진=바이두제파이라는 이름의 도촬꾼들/사진=바이두


중국에서 패션피플이 많이 모이는 곳에는 어김없이 특이한 사람들이 눈에 들어온다. 카메라를 메고 이 여자 저 여자를 촬영하는 이들이다. 한 두 명이 아니다. 어쩌다 키 크고 늘씬한 여성이 현란한 차림의 옷을 입고 나타나기라도 하면 떼로 몰려 여성의 걸음걸이, 몸매를 카메라에 담는다.

제파이(街拍). 말 그대로 걸거리 촬영꾼들이다. 마구 촬영한 영상을 플랫폼에 올리고 클릭을 유도하는 걸로 돈을 번다.



남의 몸을 허락도 없이 함부로 찍는다는 점에서 도둑촬영, 즉 도촬꾼과 다를 바 없다. 한국에서 도촬꾼이라면 피사체 몰래 소형 카메라로 촬영하는 변태 성향의 범죄자를 말하지만, 중국 사정은 그렇지 않다.

도둑 촬영대놓고 찍는다. 마음에 드는 피사체가 나타나면 수십명이 달려든다. 촬영이 끝나면 서로 카메라 속 영상을 보여주며 품평한다. 가장 이상한 건 도둑 촬영을 당한 여성도, 이 행위를 지켜보는 사람 누구도 제파이들에게 항의하거나 이들을 저지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마치 일상적이며 정상적인 일을 하는 사람들을 대하듯 한다.



대부분 여성은 그렇지 않겠지만 일부는 제파이들과 공생관계를 자처한다. 제파이 앵글에 들어오기 위해 모델처럼 걷는다. 일반인들과 차원이 다른 의상은 기본이다. 제파이 보라고 두세 명이 상황극을 하기도 한다. 인터넷 스타, 즉 '왕훙'을 꿈꾸는 이들이다. 남다른 비주얼이 제파이들에 의해 세상에 알려지고 추종자들이 생기면 돈벌이 길이 열린다. 악어와 악어새 관계다.

중국에서 가장 인기 많은 왕훙 웨이야/사진=바이두중국에서 가장 인기 많은 왕훙 웨이야/사진=바이두
왕훙으로 성공하려는 이유는 분명하다. 돈을 긁어모으기 때문이다. 대표적 왕훙인 웨이야. 2600만 팔로워를 거느리고 있다. 그녀가 1년에 버는 돈은 8000억원이 넘는다. 리자치도 초대형 왕훙이다. 한 번은 라이브 커머스에서 립스틱을 팔았는데 5분 만에 1만5000개를 팔아 립스틱 오빠라는 별명이 붙었다. 연 수입 3400억원을 자랑한다. 중국의 연간 라이브 커머스 거래액이 70조원을 초과한다.

미래 왕훙들이야 제파이 플랫폼이 꼭 필요하지만 모든 패션 피플이 그렇다고 볼 수는 없다. 피해자들도 당연히 존재한다. 이런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한 법도 있다. 민법 1019조다. 어떤 조직이나 개인도 타인의 초상권을 침해해선 안 된다고 규정한다. 만약 촬영을 허락한다고 해도 이를 게시하거나 출판하는 건 별개의 문제다. 별도의 허락이 필요하다.


그러나 마구잡이로 영상을 촬영하는 제파이는 있어도 피사체 여성에게 양해를 구하는 제파이는 없다. 제파이들이 관광객들 눈살을 찌푸리게 하자 청두 내 패션 1번지 청두 타이구리는 제파이 행위를 금지하기에 이르렀다. 베이징 타이구리 역시 최근 제파이 출입 금지 팻말을 세웠다.

제파이들로부터 선량한 관광객들의 초상권을 보호해야 관광객이 늘고 그래야 상권도 활성화될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 소용이 없다. 베이징이 준봉쇄된 지금 타이구리는 텅 비었지만 제파이들은 여전히 타이구리를 배회한다. 초상권 보호에 대한 인식이 확산하고 법을 어길 경우 엄하게 처벌받는 사례가 늘지 않는 한 변화를 기대하기 어려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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