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강 신화' 엄마 뱃속에서 봤는데"…광화문 달군 월드컵 베이비

머니투데이 정세진 기자, 박상곤 기자 2022.11.25 0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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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타르2022]

24일 밤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변정현·남지수씨(23)가 2022 카타르 월드컵 거리응원을 하고 있다. /사진=박상곤 기자 24일 밤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변정현·남지수씨(23)가 2022 카타르 월드컵 거리응원을 하고 있다. /사진=박상곤 기자


23일 2022 카타르 월드컵 조별리그 H조 1차전 대한민국과 우루과이의 경기를 보기 위해 2만 6000여명(경찰 추산)의 시민이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 모였다. 당초 주최 측이 예상한 1만여명을 두 배 이상 뛰어넘은 규모다.

경기는 무승부를 기록했지만 대표팀을 향한 시민들의 응원 열기는 뜨거웠다. 경찰과 주최측은 이태원참사가 남긴 교훈을 의식하듯 안전관리에 만전을 기했다. 시민들은 흥분의 도가니 속에서도 끝까지 질서정연한 모습을 보였다. 시민들과 경찰, 주최 측의 협조 속에 축제는 사고 없이 마무리됐다.



처음 거리 응원 나선 10대 시민 "애국심 생겨요"...대표팀 경기력 호평도 이어져
24일 밤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붉은악마와 시민들이 2022 카타르 월드컵 거리응원을 하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우리나라 대표팀의 조별리그 경기 1차전이 열리는 이날 오후 전국 12개 장소에 4만여 명이 모여 거리 응원을 펼친다. /사진=뉴스124일 밤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붉은악마와 시민들이 2022 카타르 월드컵 거리응원을 하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우리나라 대표팀의 조별리그 경기 1차전이 열리는 이날 오후 전국 12개 장소에 4만여 명이 모여 거리 응원을 펼친다. /사진=뉴스1
이날 밤 9시쯤, 경기 시작까지 1시간 정도 남았지만 서울 광화문 광장엔 몰려든 시민들로 인해 붉은악마 측이 준비한 응원석 공간의 90% 이상이 채워졌다.



서울 종로구 혜화동에서 아내와 딸과 응원하러 온 김광삼씨(52)는 "2002년에 아내와 함께 거리응원을 하러 온 기억이 있는데 딸과도 추억을 만들고 싶어서 왔다"고 했다.

김씨는 "오랜만에 사람들과 부대끼면서 응원할 수 있어서 너무 좋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지난달 말 발생한 이태원참사를 떠올렸다. 그는 "젊은 친구들의 안타까운 죽음을 보면서 기성세대로서 마음이 무거웠다"며 "오랫동안 슬퍼하거나 기뻐하기보다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응원하려 한다"고 했다.

대구에서 남자친구와 함께 KTX를 타고 올라왔다는 임모씨(28)는 "광화문에서 응원하는 게 의미 있을 거 같아 올라왔다"며 "오늘 대한민국이 2대 1로 승리할 것 같다"고 했다.


밤 10시에 경기가 시작된 후 시간은 자정에 가까워졌지만 누구하나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특히 이날 처음으로 거리응원에 나온 10대와 20대 시민들은 경기가 끝나고 나서도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최예린양(16)은 "다 같이 응원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겨 너무 신나고 재밌다"며 "질 줄 알았는데 비겨서 다행이다"고 말했다.

2002년생 김도윤씨(21)는 "4강 신화를 엄마 뱃속에서 봤다"며 "그때 이야기를 주변 어른들한테만 들어서 이번에 꼭 응원을 나오고 싶었다"고 했다.

한민영씨는 "러시아 월드컵 때는 학교 강당에서 같이 보면서 응원했는데 이렇게 야외 응원을 나오니까 분위기가 백배, 천배 사는 것 같다"며 "너무 재밌다"고 했다.

24일 밤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최예린, 박은우양(16)이 2022 카타르 월드컵 거리응원을 하고 있다. /사진=정세진 기자 24일 밤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최예린, 박은우양(16)이 2022 카타르 월드컵 거리응원을 하고 있다. /사진=정세진 기자
이화여대에 다니는 변정현·남지수씨(23)는 지난 월드컵 때 고등학교 3학년이었다. 수능시험을 준비하느라 거리응원에 나서지 못했다. 변씨는 "4년만에 열린 월드컵을 즐기고 싶어서 왔다"며 "직접 카타르에 가긴 어려우니까 조금이나마 열기를 느끼기 위해 친구와 함께 나왔다. 확실히 사람 많은 곳에서 응원하니까 힘이 난다"고 말했다.

대표팀 경기력에도 칭찬이 이어졌다. 김모군(16)은 "기대보다 훨씬 잘한 거 같아서 기분이 좋고, 비겼음에도 우루과이가 상당히 잘하는 나라였기 때문에 만족스럽다"며 "처음으로 거리응원을 나와봤는데 다 같이 함께하면서 즐기는 분위기가 너무 좋은 것 같다"고 했다.

참사당일 이태원 방문했던 외국인들 "응원 안전관리, 그날 이태원과 달랐다"
성균관대 1학년 조영린씨(19. 왼쪽에서 두번째)가 교환학생을오 한국에 방문한 외국인 친구들과 24일 밤 한국 대표팀을 응원하기 위해 서울 광화문 광장에 나왔다. /사진=정세진 기자 성균관대 1학년 조영린씨(19. 왼쪽에서 두번째)가 교환학생을오 한국에 방문한 외국인 친구들과 24일 밤 한국 대표팀을 응원하기 위해 서울 광화문 광장에 나왔다. /사진=정세진 기자
"PRAY FOR ITAEWON(이태원을 위해 기도합니다)"

경기 시작 전 대형 스크린에는 이태원참사를 추모하는 문구가 떴다. 시민들도 이 때만큼은 엄숙한 분위기로 이태원참사 희생자들을 추모했다.

광화문광장에는 혹시나 있을지 모르는 안전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119현장상황실이 마련되고 곳곳에 경찰과 소방대원을 배치됐다.

안전관리 인력도 341명으로 대폭 늘렸다. 90명을 배치한 2018 러시아 월드컵 때보다 4배 가까운 인력을 배치한 것이다. 경찰은 8대 기동대, 경찰관 150명과 경찰특공대 21명을 현장에 배치했다. 서울소방재난본부는 소방공무원 54명과 소방차 9대, 119구급대 4대를 광화문 광장에 배치했다. 서울시청과 종로구청도 상황실을 운영했다.

응원단의 열기와 별개로 안전관리에 나선 경찰과 주최측 안전통제인력들 사이에서는 혹시나 사고가 생길지 몰라 긴장감 마저 감돌았다.

주최 측은 인파 분산을 위해 메인무대에서 100m 간격으로 300인치 크기 스크린을 차례 2개 더 설치했다. 응원구역은 메인무대 앞에서부터 5곳으로 나눴고 구역은 철제펜스로 구분했다.

구역사이 통행로에는 경찰과 안전요원들이 경광봉을 들고 우측 통행을 안내했다. 통로에 시민들이 멈춰서 정체가 발생하지 않도록 "멈추지 말고 걸어달라"며 이동을 유도했다. 통행 흐름이 막힐 경우 한순간 많은 인파가 몰려 병목현상이 생길 것을 우려해서다. 구역별로 최대 인원의 80~90%가량이 차면 더 이상의 인원 출입을 막았다. 시민들은 안내에 따랐다.

철저한 안전관리 덕에 시민들은 안전사고에 대한 우려를 덜었다. 이태원참사 당일 이태원에 있었다는 대학생 조영린씨(19)는 "사고 당일엔 사람이 너무 많아서 이태원에서 홍대로 이동했다"며 "오늘은 경찰들이 안전관리를 하는 모습을 확실히 그때와는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80대 노인도 이번 월드컵 거리응원의 안전관리가 역대 최고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경기도 용인에서 온 박모씨(80)는 "2002년 월드컵 이후 꾸준히 거리 응원을 나왔다"며 "예전 거리 응원에 비해 질서가 상당히 잘 지켜지는 것처럼 보인다. 통로와 응원하는 곳이 명확하다"고 했다. 박씨는 "질서가 잘 지켜지면서 활기찬 모습이어서 너무 보기 좋다"고 말했다.

경기종료 후 광장 청소 하고 질서정연한 퇴장
24일 밤 11시 50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붉은악마와 시민들이 월드컵 거리응원 후 광장을 치우고 있다./사진=정세진 기자24일 밤 11시 50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붉은악마와 시민들이 월드컵 거리응원 후 광장을 치우고 있다./사진=정세진 기자
시민들은 응원을 마치고 떠나는 순간까지 질서정연한 모습을 보였다. 주최 측과 응원에 참여한 시민들은 응원도구와 쓰레기 등을 함께 치우고 광장을 비웠다. 우루과이전이 끝난 지 불과 20여분 만에 응원구역 5개 내부의 청소가 마무리 단계에 들어섰다.

지하철과 버스도 연장운행을 한 덕에 시민들은 귀가할 때 차를 놓칠까봐 서두르지 않아도 됐다. 서울시는 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의 승강장 혼잡수준을 모니터링해 필요시 무정차 통과해 운영했다. 대신 지하철 2·3·5호선을 자정부터 25일 오전 1시까지 총 12회 늘려 운영했다. 광화문을 경유하는 46개 시내버스 노선은 막차 시간을 광화문 출발 기준 24일 오전 0시 30분으로 연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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