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성년 자녀 있더라도…이혼한 아버지 성별 변경 허용

머니투데이 김효정 기자 2022.11.25 0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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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합의체 "혼인 중이 아닌 상태에도 불허, 편견 고착화" 11년 만에 판례 변경

미성년 자녀 있더라도…이혼한 아버지 성별 변경 허용


성전환자에게 미성년 자녀가 있더라도 가족관계등록부에 기록된 성별을 바꿀 수 있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미성년 자녀가 있다는 사정만으로 이혼 한 성전환자의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행복추구권, 평등권 등 헌법상 기본권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는 취지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박정화 대법관)는 24일 A씨가 가족관계등록부상 성별을 여성으로 바꿔 달라며 낸 등록부 정정 신청 재항고 사건에서 A씨에게 미성년 자녀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성별정정허가 신청을 불허하는 취지로 판단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가정법원으로 돌려보냈다.



남성으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성정체성의 혼란을 겪던 A씨는 2013년 성주체성장애(성전환증) 진단을 받고 2018년 여성으로 성전환 수술을 했다. A씨는 성전환 수술 전 성정체성을 숨기고 살아왔다. 또 결혼 생활을 하면서 2명의 자녀를 뒀지만 결국 이혼했다.

이혼 후 성전환 수술을 받은 A씨는 가족관계등록부에 적힌 자신의 성별을 남성에서 여성으로 바꿔달라며 정정 허가 신청을 냈다.



법원은 대법원 판례를 들어 A씨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011년 성전환자가 현재 혼인 중에 있거나 미성년자인 자녀가 있는 경우 성별 정정을 허용할 수 없다고 결정한 바 있다.

1·2심 재판부는 "미성년 자녀의 입장에서는 부(父)가 남성에서 여성으로 바뀌는 상황을 일방적으로 감내해야 하므로 정신적 혼란과 충격에 노출될 우려가 있다"고 판단했다.

이어 "감수성이 예민한 미성년 자녀를 동성혼 문제에 노출시키는 것은 친권자로서 기본 책무를 다하지 않는 것"이라며 "자녀의 복리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고려할 때 성별정정 신청은 허가하지 않는 것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그러나 대법원은 현재 '혼인 중이 아닌' 성전환자에게도 미성년 자녀가 있는 경우 성별정정을 허가할 수 없는지 여부가 쟁점이라고 봤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성전환자의 기본권 보호와 미성년 자녀의 복리의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법익의 균형을 위한 여러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실질적으로 판단해야 한다"며 "단지 성전환자에게 미성년 자녀가 있다는 사정만을 이유로 성별정정을 불허해서는 안 된다"고 설명했다.

전합은 "성전환자와 그의 미성년 자녀가 성병정정 전후를 가리지 않고 개인적·사회적·법률적으로 친자관계에 있다는 점은 달라지지 않는다"며 "성별정정 자체가 가족제도 내의 성전환자의 부 또는 모로서의 지위와 역할이나 미성년 자녀가 갖는 권리의 본질적이고 핵심적인 내용을 훼손한다고 볼 수도 없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성전환된 부 또는 모와 미성년 자녀 사이에 존재하거나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상황을 살펴보지 않고 법원이 단지 미성년 자녀가 있다는 사정만으로 성별정정을 막는 것이 오히려 실질적인 의미에서 미성년 자녀의 복리에 부합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다만 이동원 대법관은 "성별정정을 불허하는 것이 우리 법체계 및 미성년자인 자녀의 복리에도 적합하고 사회 일반의 통념에도 들어맞는 합리적 결정"이라며 상고 기각 취지의 소수의견을 냈다.

대법원 관계자는 "미성년 자녀를 둔 성전환자가 '혼인 중이 아닌 상태'에 있음에도 성별정정을 불허하는 것은 성전환자가 소수자로서 겪는 고통을 외면해 성전환이나 성별정정에 대한 사회적 차별과 편견을 더욱 고착화·내면화하는 결과를 야기하는 것을 지적한 판결"이라며 "성전환자와 미성년 자녀에 대한 사회적 판결과 편견을 근본적으로 시정할 책무가 국가와 사회에 있음을 확인한 것"이라고 의의를 설명했다.

이번 판결로 미성년 자녀를 둔 성전환자의 성별정정에 관한 판례는 2011년 이후 11년 만에 변경됐다. 다만 이번 전합 판결은 미성년 자녀가 있는 성전환자 중에서 이혼 등으로 '혼인관계에 있지 않은 경우'에 한해 성별정정을 허가한 것으로, 혼인 상태에 있는 성전환자에게 미성년 자녀가 있는 경우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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