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병원 파업 이해하지만, 위급상황땐…" 환자들 '불안'

머니투데이 정세진 기자, 원동민 기자 2022.11.25 05:38
글자크기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소속 서울대병원 분회의 파업 이틀차인 2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본원에서 한 환자가 병원 앞을 산책 중이다. /사진=정세진 기자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소속 서울대병원 분회의 파업 이틀차인 2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본원에서 한 환자가 병원 앞을 산책 중이다. /사진=정세진 기자


"사람이 부족하다니 파업한다는 건 이해를 하지…그런데 위급상황이 생기면 어떻게 하나. 우리 병실 환자 중에 한명이 갑자기 위급해지면 다른 환자들은 주사도 못 맞거든."

24일 오후, 호흡기계 질환으로 2주째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본원에 입원 중인 A씨(70)는 파업에 참여한 병원직원들을 보며 걱정에 잠겼다. 이날 오후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소속 서울대병원 분회(서울대병원·보라매병원) 소속 노조원 1100여명은 전면 파업 이틀 차를 맞아 서울대병원 본원 내 대한의원 본관 앞에서 결의대회를 진행했다.



자신을 보살펴 준 간호사들이 인력부족을 호소하는 모습을 보면 A씨도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고 했다. 그는 별도 보호자나 간병인이 없이 입원할 수 있는 간호간병통합병동에 입원 중이다.

A씨는 간호사들이 말하는 '인력부족' 문제도 어느 정도 체감하고 공감한다고 했다. A씨는 매일 오전 5시면 링거액에 주사약을 투약받아야 한다. 응급환자가 발생해 간호사가 투입되면 주사를 놓아줄 사람이 없어 주사 맞을 시기를 놓친다.



A씨가 병동 간호사들에게 "오늘은 주사 처방 없어?"라고 물으면 그제야 간호사는 미안하다며 주사를 놔준다. 주사를 맞은 다음에 응급환자가 발생하면 제때 바늘을 빼주지 않아 팔에 꽂힌 주삿바늘을 통해 투명 호스에 피가 역류하기도 한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조합원들이 2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병원에서 열린 '가짜 혁신안 폐기! 서울대병원 파업사태 해결! 총력결의대회'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날 참가자들은 의료 필수인력 충원과 노동조건 향상 등을 정부와 병원 측에 촉구했다. /사진=뉴스1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조합원들이 2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병원에서 열린 '가짜 혁신안 폐기! 서울대병원 파업사태 해결! 총력결의대회'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날 참가자들은 의료 필수인력 충원과 노동조건 향상 등을 정부와 병원 측에 촉구했다. /사진=뉴스1
A씨는 그래도 자신은 상황이 나은 편이라고 말한다. 지난 4월 일반병동에 입원했을 때는 중증환자 비중이 훨씬 높았다. 간호간병통합병동은 의식이 있는 환자만 들어올 수 있는데 간병인이 있어야 하는 일반 병동은 중증도가 높은 환자도 입원한다. 한밤 중에도 석션(가래나 혈액을 기계를 통해 흡입해주는 의료행위)을 해야 하는 환자들이 많다.

당뇨와 기관지계 질환으로 입원한 70대 남성 B씨와 그의 아내는 식사가 제일 큰 걱정이다. B씨의 아내는 "어르신이 밥을 잘 드셔야 하는데 음식이 너무 형편없어. 점심에 김, 조기, 묵이 전부였어"며 "밥이 전부 도시락으로 나온다"고 토로했다. 파업 후 서울대 병원은 도시락으로 병원식을 제공하고 있다.

B씨는 하루 세끼를 도시락으로 먹기 힘들지만 별다른 선택권이 없다. 병세 완화를 위해 식사를 챙겨 먹어야 하지만 병원 지하 식당가에는 프렌차이즈 음식점들이 입점해 있다. 70대인 B씨 입맛에 맞는 식당은 미역국을 파는 한식집 한 곳이라고 했다. B씨의 아내는 "다음주면 퇴원할 수 있다고 했는데 오늘 교수님이 그것도 다시 지켜봐야 알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며 "식사가 제일 걱정이다"라고 말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서울대병원분회가 파업에 돌입한 지 이틀째인 24일 오후, 노조측은 서울 동작구 보라매병원 내부에 인력충원을 요구하는 플래카드를 걸었다. /사진=원동민 기자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서울대병원분회가 파업에 돌입한 지 이틀째인 24일 오후, 노조측은 서울 동작구 보라매병원 내부에 인력충원을 요구하는 플래카드를 걸었다. /사진=원동민 기자
서울 동작구 신대방동 보라매병원의 사정도 비슷하다. 의료연대본부에 따르면 보라매병원 근무 간호사 800여명 중 150명이 파업에 참여했다. 이날 오후에도 10여분 사이에 30여명이 대기 접수표를 뽑고 기다리면서 보라매병원 접수처가 붐볐다.


보라매병원은 차상위계층과 독거도인, 무연고 환자 등 취약계층 환자에게 의료비를 지원하고 노숙인을 위한 행려병동도 운영한다. 이들은 가족이나 간병인의 도움을 받기 어렵다. 보라매병원에 근무하는 간호조무사와 간호사의 업무 강도가 높은 이유다.

보라매병원 병동 간호사 C씨는 "병동 간호사는 대체인력을 투입하기 어렵다"며 "다른 병원에서 근무 중인 간호사를 갑자기 데리고 올 수도 없고 파업이 언제 끝날지 몰라 신규 인력을 투입하기도 어렵다"고 했다.

C씨가 근무했던 병원은 42베드(병상 42개) 규모 수간호사를 제외한 25명의 간호사가 근무 중이다. 정맥주사 등 특수처치를 담당하는 전담 간호사를 제외하고, 3교대로 근무조를 짜면 간호사 1명이 8명 이상의 환자를 돌봐야 한다. 노조에 따르면 간호조무사 1명이 주간엔 15명 야간과 주말엔 30명의 환자를 돌봐야 한다.

C씨는 "하루 사망자가 2명 이상 발생할 정도로 중증도가 높은 환자들이 많다"며 "중증도 높은 환자를 돌보면 나머지 환자들은 사실상 방치되면서 간호사들이 죄책감을 느낀다"고 했다. 노조에 따르면 인력부족으로 파업 전에도 이 병원에선 월 평균 4.3회 낙상사고가 있었다.

보라매병원은 파업에 따른 의료서비스 차질을 줄이기 위해 환자 입원 기간을 줄이고 대체인력을 투입한다는 방침이다.

이 병원에 입원한 지 11개월째라는 D씨는 "어제 아침부터 식사가 도시락으로 나오고 있다"며 "밥과 국만 병원에서 하는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보라매병원은 병원비가 싸서 병실이 비면 무섭게 환자가 들어왔는데 파업 영향인지 5~6인실에서 한 두 자리씩 병상이 비어 있다"고 했다.

민주노총 의료연대본부 서울대병원분회는 정부가 발표한 서울대병원 간호인력 35명 감축안을 철회하고 보라매병원의 의료인의 담당 환자 비율을 간호사 1대 7, 간호조무사 1대 20명 수준으로 배치하도록 예산을 지원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지난 23일 오후 민주노총 의료연대본부 소속 조합원이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본원 앞에서 열린 파업 출정식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민주노총지난 23일 오후 민주노총 의료연대본부 소속 조합원이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본원 앞에서 열린 파업 출정식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민주노총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