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동력 상실' 기로에 선 태광그룹, 또 10년을 잃을 것인가

머니투데이 우경희 기자 2022.11.28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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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광그룹 제조업부문 실적 추이.태광그룹 제조업부문 실적 추이.


흥국생명 콜옵션(영구채 조기상환권) 미행사 결정으로 자본시장을 들썩이게 한 태광그룹을 보는 재계 시선이 불안하다. 뒤늦게 행사하기로 결정하고 사태가 진정국면을 맞고 있지만 복잡한 태광그룹 내부 상황이 그대로 드러났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룹 전반의 분위기는 더 어둡다. 근간인 섬유는 물론 첨단소재 분야에서 오래 투자가 멈추면서 신성장동력이 약화하고 있다.

금융분야에서도 막대한 자금조달에 나서고 있는 경쟁사들에 비해 한 발 뒤처지는게 눈에 보인다. 총수부재로 경영 비상상황이 계속되는 태광에 '잃어버린 10년'이 되풀이된다면 그룹 전체 성장엔진에 불이 꺼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임직원 4200명과 3600여 설계사, 450만명의 가입자를 품은 태광이 생존의 기로에 섰다는 의미다.



일주 이임용 창업주가 일군 태광그룹은 사실상 국내 섬유산업의 원조다. 그러나 총수 부재 10년 동안 미래를 위한 투자는 완전히 멈췄다. 그룹 매출도 12조원 안팎에서 정체다. 그 중 제조업 영역 매출액은 지난 2011년 3조5000억원에서 지난해 2조6000억원으로 역성장했다. 기존 주력제품의 판매량이 탄탄히 받쳐주는 가운데 미래 소재에 투자해야 하는 최근 섬유업계 성장공식과 완전히 반대로 간다.

그룹 제조업부문은 2021년은 코로나19(COVID-19) 기저효과로 영업이익 등 면에서 반짝 호실적을 냈지만 미래 전망은 단기적으로도 어둡다. 2011년 적자에도 불구하고 2010~2012년 3년간 평균 2100억원의 영업익을 냈는데, 이후 5년 평균 240억원 이익에 그치며 곳간을 전혀 채우지 못했다. 오너십이 사라진 상황에서 뚜렷한 타개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시간만 보냈다.



슈퍼섬유라고 말하는 신소재는 과감한 투자와 선행 연구가 필수다. 태광이 국내 최초로 1978년 진출한 스판덱스는 2017년 이후 매년 적자를 냈다. 적기 투자와 해외진출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왔지만 태광은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후발주자인 효성은 공격적 연구개발과 시설투자로 생산능력을 글로벌 1위인 41만톤으로 늘렸다. 태광의 약 13배 수준, 비교가 무의미하다.

효성이 전매특허 신성장동력으로 삼고 있는 탄소섬유도 시작은 태광이 빨랐다. 2012년 1000억원 투자를 단행했지만 후속 투자 불발로 매년 적자를 봤다. 누적 적자가 1200억원을 넘어서던 2017년 결국 사업을 접었다. 섬유업계가 베트남 등 저인건비 국가들을 제 2생산기지로 삼고 있지만 태광은 여전히 과거 사업구조와 수익모델을 고수하고 있다. 희망적 중장기 전망이 어렵다.

금융계열사들도 위축 일로다. 흥국생명 임직원 수는 지난 2015년 직원 2300명에 설계사 1만을 헤아렸다. 2022년 상반기 현재 직원은 1587명, 설계사는 3600여명으로 줄었다. 보험업계 IT화를 감안하더라도 사세가 크게 쪼그라든 셈이다. 반면 경쟁사들은 교보생명이 신창재 회장의 용단 아래 IPO를 결정하고, KDB생명이 대주주 산업은행의 유증으로 자금을 확보하는 등 적극 경영에 나선다.


재계는 리더십 부재 속에 표류하는 태광에 대해 안타깝다는 반응이다. 2018년 공정거래위원회 지배구조 개편 모범사례로 선정되는 등 그룹 차원에서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옥고를 치른 이호진 전 회장 등 오너십이 나서서 정리하고 결정해야 할 문제가 산적해 있다. 이 회장 출소 이후 그룹 최고경영진 재편 등을 추진 중이지만 아직 제대로 힘을 받지 못하고 있다.

이 가운데 그룹이 흔들리는 조짐은 사방에서 나타난다. 티브로드 등 그룹이 신성장동력으로 야심차게 추진했던 방송통신사업은 IPO 실패로 사실상 존립의 위기를 맞고 SK브로드밴드에 합병됐다.

재계는 4200여 임직원, 3600여 설계사, 450만 흥국생명 가입자를 품은 태광을 우려의 눈으로 본다. 조세포탈 혐의로 집행유예 기간인 이 전 회장이 직접 그룹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여지가 제한적인 상황이다. 그룹이 특단의 자구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 가파른 금리인상이 이뤄지고 각국의 보호무역이 강화되는 가운데 글로벌 경기침체는 이미 시작됐다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지금이 고비라는 거다.

태광그룹 관계자는 "기업 총수 부재로 인한 경영 비상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며 "신규투자는 물론 연구개발과 인수합병 등 의사결정이 신속하게 이뤄지지 못하는 현실로 그룹사 전체의 성장동력이 사라지고 있는 안타까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흔들리는 태광그룹의 방향타를 누가 단단히 잡을 수 있을까. 성장동력은 약해진 가운데 외부의 풍랑은 거세지고 있다. 리더십에 큰 책임이 수반될 수밖에 없는 만큼 적잖은 부담이 따라붙을 수 있다는게 재계 중론이다. 바꿔 말하면 지금이 가장 오너리더십이 필요한 시점이자, 이 전 회장에게 경영으로 국가경제에 기여하는 책임을 요구해야 한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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