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희생자 송은지씨의 아버지는 이날 김의곤 시인의 '미안하다, 용서하지 마라' 시 전문을 읽으며 오열했다. 그는 "국가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져야 한다"며 "그날 밤 이태원 도로에 차디찬 현장에 국가는 없었다. 인간적인 따뜻함이 조금이나마 있었다면 어슬렁 거리며 식당에 가고, 부하직원들에게 책임 떠넘기고, 상황실 비우는 행동은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희생자 이상은씨(26)의 아버지는 딸에게 자필로 쓴 편지를 낭독했다. 그는 "미국 공인회계사 합격하고 그렇게 가고 싶어했던 회사에서 좋은 소식의 문자가 왔는데 이제는 우리 딸을 볼 수 없다"며 "국민의 생명, 안전을 위해 국가는 무슨 일을 했는지 제발 한 말씀만 해달라"고 말했다.
배우 고(故) 이지한씨의 부모님도 이 자리에 함께 했다. 이씨의 어머니는 "지한이는 연줄 하나 없는 집안에서 태어나 자기 힘으로 대학에 들어갔고 한달 간 오디션을 거쳐 큰 기획사도 들어간 기특한 아들이었다"며 "초동대처만 제대로 이뤄졌어도 158명의 희생자는 한 명도 없었을 것"이라고 오열했다.
희생자 이남훈씨(29)의 어머니는 "술 한잔 먹을 줄 모르고 축구를 좋아했던 우리 아들은 일하다 허리 아픈 것도 참아내고 그저 열심히 살았던 청년"이라고 흐느꼈다.
이날 다른 유족들도 희생자 사진을 품에 안고 아이들의 이름을 목놓아 불렀다. 두 손을 모아 기도를 하기도 하고 "세상에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 "불쌍한 우리 아이들 제발 살려달라" 울부짖기도 했다. 한 유족은 기자회견 도중 건강상의 문제로 실려 나가기도 했다.
제대로된 진상 규명을 원한다는 목소리도 있었다. 대학에서 컴퓨터학과를 전공한 희생자 이민아씨(25)의 아버지는 "유족분들도 참사 17일이 지나서야 수소문 끝에 만날 수 있었다"며 "참사와 관련해 가장 공감할 수 있고 가장 위안 받는 사람은 유가족들이다. 24일이 넘도록 유족들의 공간을 마련해주지 않는 이유를 답해달라"고 했다.
유가족, 정부에 6가지 요구사항 발표윤복남 변호사(TF 팀장)는 가족들과 논의를 거쳐 만든 요구 방안 6가지를 밝혔다. 정부의 △진정한 사과 △성역없이 엄격하고 철저한 책임규명 △피해자들의 참여를 보장하는 진상 및 책임규명 △참사 피해자의 소통 보장, 인도적 조치 등 적극적인 지원 △희생자들에 대한 온전한 기억과 추모를 위한 적극적 조치 △2차 가해를 방지하기 위한 입장 표명과 구체적 대책 마련 등이다.
윤 변호사는 "지금 34명의 희생자 가족들 외에도 추가적으로 연락이 오는 상황"이라며 "현재 수사가 미진한 부분에 대해서 대응팀을 꾸려서 계속 내용을 숙지하고 문제제기를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윤 변호사는 최근 일부 언론 매체의 참사 희생자 명단 공개 논란에 대해 정부의 조치가 미비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윤 변호사는 "유족들의 의사에 따라 명단을 공개하는 것이 결국 핵심"이라며 "정부가 공적 조치를 취해서 유가족들에게 동의를 묻고, 동의하는 사람들 한해서 공개하면 될 일이었다. 현재는 유가족분들 마음에 맞게 배려있게 진행 중이진 않은 것 같다"고 전했다.
이날 기자회견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10·29 참사' 진상규명 및 법률지원TF'가 지난 15일과 19일 유족들과 두 차례 간담회를 갖고 마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