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격 더 뛰겠네"…'RE100' 기업들, 삼성 등판에 근심 커진 이유

머니투데이 최민경 기자 2022.11.19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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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힘겨운' RE100, '현실적' CF100(上)

편집자주 태양광 풍력 등 재생에너지만을 활용하는 'RE100'을 선언하는 우리 기업들이 늘어나면서 우려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해외 바이어들의 요구에 따른 불가피한 선택이지만 재생에너지 여건이 열악한 한국 현실엔 맞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원자력 등 다른 무탄소 에너지원을 포함하는 'CF100'의 대안 가능성을 점검하고 현실화를 위해 풀어야 과제를 짚어본다.

삼성전자가 국내 태양광·풍력 절반 쓴다…기업 발목 잡는 RE100
"가격 더 뛰겠네"…'RE100' 기업들, 삼성 등판에 근심 커진 이유


국내 최대 전력소비 기업인 삼성전자가 RE100(재생에너지 100% 사용)에 가입하면서 기존 RE100 기업들의 고민이 커졌다. 삼성전자의 전력소비량은 국내 재생에너지 발전량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한다. 이대로라면 재생에너지 수요가 공급을 초과하게 될 전망이다. 재생에너지 보급에 한계가 있는 국내 특성상 원전과 수소연료전지까지 포함한 CF100(무탄소 전원 100% 사용)이 새로운 대안이 될 수 있도록 우리가 먼저 필요성을 알려 나가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15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를 포함한 국내 전력사용량 상위 5대 기업이 지난해 사용한 전력량은 총 47.67TWh(테라와트시)로, 지난해 국내 신재생에너지 발전량 43.1TWh를 넘었다. 전력소비량은 삼성전자(18.41TWh), SK하이닉스(9.21TWh), 현대제철(7.04TWh), 삼성디스플레이(6.78TWh), LG디스플레이(6.23TWh) 순이다.

문제는 국내 RE100 가입 기업 수가 25개에 달한다는 점이다. RE100은 2014년 다국적 비영리기구 '더 클라이밋 그룹'에서 시작한 캠페인으로 기업이 사용하는 전력 100%를 태양광, 풍력, 수력, 조력 등 재생에너지로 충당하겠다는 내용이다.



전 세계적으로 탄소중립 이슈가 무역장벽으로 작용하면서 삼성그룹, SK그룹, 현대자동차그룹, LG그룹 등 주요 대기업집단이 RE100에 가입해 재생에너지만으로 소비 전력을 충당하겠다고 발표했다. 국내 RE100 가입 기업 중 삼성전자와 그 계열사를 제외한 나머지 22개 기업의 전력 사용량만 집계해도 38.5TWh에 달한다.

한국에선 특히 재생에너지가 충분히 생산되지 않기 때문에 RE100 달성이 어렵다. 재생에너지 가격이 비싼 것도 문제다. 기업들은 RE100 이행수단으로 녹색프리미엄제와 REC(신재생에너지공급인증서)를 주로 채택한다. 녹색프리미엄제는 전력 소비자가 한국전력에 녹색프리미엄을 지불하면 '재생에너지 사용 확인서'를 발급받아 RE100 인증에 활용할 수 있게 한 제도다.

REC 역시 신재생에너지 설비를 통해 전력을 공급했다는 증명서다. REC는 수요·공급에 따라 거래소에서 가격이 결정된다. 전력사용량이 많은 기업들이 REC를 구매할 경우 REC 가격이 폭등하게 된다. 기업 수요가 늘면서 월평균 REC 가격은 올해 1월 1단위당 4만6211원에서 10월 6만3614원으로 올랐다. 국내 최대 전력소비 기업인 삼성전자까지 REC 구매 대열에 합류하면 가격은 여기서 더 뛰게 될 전망이다. REC 가격 증가는 기업의 생산비용 부담으로 이어진다.


향후 국내 재생에너지 여건도 좋지 않다. 정부는 '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실무안'에서 2030년 원전 비중은 32.8%, 신재생에너지 비중은 21.5%로 제시했다. 지난해 11월 2030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와 비교하면 원전 비중을 8.9%p(포인트) 높이고, 신재생에너지를 8.7%p 낮춘 셈이다. 정부는 원전 10기의 수명을 연장하는 것이 온실가스감축목표에 부합하면서 현실적이라고 판단해 이같이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재생에너지뿐만 아니라 원전과 수소연료전지까지 포함한 CF100(무탄소 전원 100% 사용)이 기업 탄소중립의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CF100은 원전과 연료전지까지 포함한 무탄소 전원을 사용하는 캠페인으로 구글과 UN에너지, UN 산하 지속가능에너지 기구(SE4ALL) 등이 함께 만들었다.

2017년 RE100을 달성한 구글은 2018년 CF100으로 전환하고 '24×7(24시간 7일 내내) 탄소배출 제로(Carbon Free)'를 핵심 에너지 정책으로 삼았다. 구글은 24시간 내내 가동되는 데이터센터를 간헐성이 큰 재생에너지로만 운영하면 안정적인 전력공급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구글은 원전을 고정적 무탄소 자원(firm carbon free sources)으로 구분하고, 원전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2018년 시작된 CF100은 2014년 발족된 RE100에 비해 인지도도 낮고 가입 기업도 적지만 최근 국내에서도 CF100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국내 제조업 300개사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응답기업의 62.2%는 국내 재생에너지 여건을 고려해 RE100 대신 CF100을 추진하는 것에 찬성했다.

유환익 전국경제인연합 산업본부장은 "한국은 미국 등 다른 국가들에 비해 자연환경과 신재생에너지 조건이 안 좋기 때문에 기업들의 RE100 참여가 불리하다"며 "경제단체에선 정부에 원전을 무탄소 전원으로 포함시키고 인증해줄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하고 있다"고 밝혔다.

"2026년엔 원전 포함 CF100 대세…韓 정부·기업 준비해야"

유승훈 서울과기대 교수유승훈 서울과기대 교수
전문가들도 RE100(재생에너지 100% 사용) 목표 달성이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우려한다. 신재생에너지 비중이 낮고 원전 비중이 높은 국내 여건 특성상 RE100 대신 원전과 수소연료전지까지 포함한 CF100(무탄소 전원 100% 사용)으로 탄소중립 전략을 전환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에너지정책학과 교수는 16일 머니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정부나 기업이 CF100을 염두에 두고 인프라를 마련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유 교수는 "국제사회에서 나오는 문헌과 주장을 보면 CF100에 대한 필요성 논의는 계속 되고 있다"며 "아직은 RE100 영향력이 훨씬 크지만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유 교수에 따르면 CF100 담론이 앞서 있는 국가는 미국이다. 유 교수는 "미국은 캘리포니아와 텍사스 정전도 겪었고 화석 연료 의존도가 상당히 높다"며 "재생에너지 비중이 높은 캘리포니아와 텍사스가 대정전을 겪으면서 CCS(탄소포집저장) 기반의 화석연료발전과 원전을 포함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고 안정적인 전기 공급이 가능하다는 여론이 생겼다"고 말했다.

이어 "미국도 제조업이 많기 때문에 이러한 논의가 확대될 수밖에 없다"며 "각 주별로 에너지를 많이 쓰는 산업체가 있는 곳에서 원전을 포함한 CF100에 대한 고민이 시작됐고 중요성은 커질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유 교수는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현재의 에너지 위기가 최소 2025년까지는 갈 것으로 본다"며 "이런 에너지 위기 상황에서는 재생에너지만으로 유지되는 탄소중립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RE100이 아닌 CF100 논의가 깊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EU(유럽연합) 택소노미에 원전이 포함되고, 전 세계적으로 원전이 지속가능한 친환경 전원이라는 인식이 퍼지는 상황도 힘을 보탤 전망이다. 유 교수는 미국이 CF100을 주도하면 2025~2026년쯤 유럽과 한국 등도 합세하는 방향으로 흘러갈 것으로 관측했다.

그는 "한국은 에너지 자원이 많은 나라도 아니고 전 세계에서 CF100 담론을 주도하기에 한계가 있다"며 "한국이 CF100을 채택해도 국제적인 힘 발휘를 못하니까 미국이 채택하면 자연스럽게 따라가는 방향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와 우리 기업은 미국과의 원전 및 태양광 협력을 토대로 CF100 논의도 진행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가격 더 뛰겠네"…'RE100' 기업들, 삼성 등판에 근심 커진 이유
유 교수는 이 같은 상황에서 정부와 기업이 CF100 도입을 대비한 인프라를 준비해야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CF100엔 원전뿐만 아니라 CCS(탄소포집저장) 기반의 LNG 발전 등도 포함될 수 있다"며 "CCS 기술과 이산화탄소 운반 선박을 확보하는 등 정부는 관련 R&D(연구개발)을 지원하고 기업들이 투자를 본격적으로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원전 12기의 수명을 연장하겠다고 했기 때문에 이를 원활하게 할 수 있도록 주민수용성을 확보하는 작업도 정부가 해야 할 영역"이라며 "수소 분야에서도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유 교수는 CF100에서 수소의 역할이 클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도 화석연료에서 수소를 뽑아내고 CCS로 저장하는 데 굉장히 보조금 지원을 많이 준다"며 "우리도 정부가 수소를 활용하는 것과 관련해서 보조금을 줄 수 있는 수단을 구체적으로 설계하고 재원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지난 9일 열린 수소경제위원회에서 주요 수소 제조·운송·활용 기술 개발 등 담은 '수소기술 미래전략'을 심의해 의결했지만 아직 구체적인 재원은 마련하지 못한 상황이다.

CF100을 어떻게 인증할 것인지도 과제다. RE100의 경우 정부는 2019년부터 이를 이행하기 위한 재생에너지 사용인정제도를 준비했다. 글로벌 기업들의 RE100 가입이 늘고, 하위 공급사들에 대한 이행 요구도 강해지면서 산업통상자원부는 국내 기업이 좀 더 쉽게 RE100에 동참할 수 있도록 지난해부터 K-RE100 제도를 도입했다. 재생에너지 사용인정 수단으로 △녹색프리미엄제 △REC(재생에너지 공급인증서) 구매 △제3자 전력구매계약(PPA) △지분투자 △자가발전 등이 꼽힌다.

CF100은 원전, 수소 등을 사용할 경우에도 무탄소전원으로 인증해줘야 한다. 민간 기업이 이를 인증하면 신뢰성에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에 업계에선 공공의 개입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유 교수는 "RE100은 태양광 발전이 대부분이고, 민간 캠페인의 영역인데 CF100은 원전, 수소, CCS 기반 LNG발전 등이 포함돼 인증하기가 까다롭다"며 "아직 구체화되진 않았지만 복잡하고 전문적인 영역이기 때문에 정부나 에너지 공단 같은 공공기관이 개입되는 것이 필요하지 않냐는 지적도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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