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이 혐의 벗은 중국계 미국인...주홍글씨는 남았다[김지산의 '군맹무中']

머니투데이 베이징(중국)=김지산 특파원 2022.11.19 0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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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군맹무상(群盲撫象). 장님들이 코끼리를 더듬고는 나름대로 판단한다는 고사성어입니다. 잘 보이지 않고, 보여도 도무지 판단하기 어려운 중국을 이리저리 만져보고 그려보는 코너입니다.

셰리천 박사/사진=셰리천 페이스북셰리천 박사/사진=셰리천 페이스북


중국 스파이로 오해받던 중국계 미국인 여성 학자가 결국 미국 정부를 상대로 승소했다. 미중간 패권 다툼에서 애꿎은 사람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 결론적으로 미국 정부의 과잉 대응이며 인종 차별 소지가 있지만 미국 정부도 힘들긴 마찬가지다. 중국이 자국민 또는 중국계 외국인을 포섭하거나 협박해 스파이로 이용해온 사례가 실제로 여럿 있었기 때문이다.

최근 중국계 미국인 수문학자인 셰리천이 미국 정부를 상대로 벌인 180만달러 소송에서 수년째 공방 끝에 승소했다. 그녀는 미국 국립기상청에서 근무하던 중 부당한 기소와 해고로 피해를 보았다며 2건의 소송을 제기했다.



이 사건은 잠재적인 스파이로 의심받는 중국계 학자들이 제 목소리를 낼 획기적인 계기가 될 것으로 관측된다. 인권단체들은 미국 법무부가 증거 부족에도 중국계 과학자들을 표적 삼아 수시로 감시해왔다고 주장해왔다.

천 박사 사건은 201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으로부터 미국 안보를 지키겠다며 '차이나 이니셔티브' 캠페인을 벌이기 4년 전이다.



차이나 이니셔티브로 중국계 학자들은 광범위한 조사를 받았다. MIT 테크놀러지 리뷰에 따르면 23명이 재판을 받았는데 이 중 3명이 일부 또는 모든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받았다. 그리고 8명은 증거 부족으로 기소가 취하되고 1명은 정부와 합의를 봤다.

천 박사는 중국에서 태어났지만 일찌감치 미국으로 이주한 뒤 미국 시민이 됐다. 2007년 3월 국립기상청에서 일하기 시작해 오하이오 강과 그 지류의 물 흐름을 예측하는 모델을 개발했다. 그러다 2014년 10월 불시에 체포됐는데 2년 전 중국 가족을 방문했을 때 연방 수사관들에게 거짓 진술을 하고 정부 데이터베이스에서 데이터를 다운로드했다는 혐의였다.

그녀는 체포된 지 한 달 만에 무급 정직 처분됐다. 천 박사는 과거 학교 친구를 돕기 위해 공개된 정보만 모았을 뿐이라고 항변했다. 이에 법무부는 형사 고발을 취하했지만 국립기상청은 2016년 그녀를 해고했다.


그녀는 국립기상청 상위기관인 상무부(DoC)에 차별을 호소했지만 거절당했다. 천 박사는 2019년 법무부, 2021년에는 상무부를 상대로 민형사 소송을 잇달아 냈다. 두 건의 소송은 모두 천 박사의 승리로 끝났다.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 템플대 물리학자 시샤오싱은 2015년 가족들 보는 앞에서 총이 겨눠진 채 체포됐다. 기밀 기술을 중국 학자들에 넘겼다는 혐의였다. 시 박사는 과학자들과 서신 교환은 일상적인 학술 활동이며 정보는 이미 개방된 것들이었다고 항변했다. 법무부는 기소를 취하했지만 시 박사는 미국 저부와 연방 수사관들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 1심에서 패소한 그는 항소를 낸 상태다.

바이든 정부 들어 차이나 이니셔티브가 폐기됐다지만 미국에서 활동 중인 중국인 또는 중국계 미국인 과학자들은 여전히 좌불안석이다.

지난해 10월 과학 잡지 네이처에 따르면 애리조나대학 사회과학대 제니리 박사가 그 해 5~7월 사이 미국 내 1949명 과학자(응답자의 3분의 1은 중국계)를 대상으로 벌인 설문 조사에서 중국계 과학자의 절반이 미국 정부로부터 감시당하고 있다는 두려움을 호소했다. 또 중국계 과학자의 42%는 인종차별이 도사린다고 답했다. 그러나 비중국계 과학자 중 인종차별을 언급한 과학자는 9%뿐이었다.

인종 간, 국가 간 인종 문제에 관한 가해자와 피해자 존재 여부에 인식 차이가 얼마나 큰지 보여주는 부분이다. 적극적으로 해석하면 중국계는 자신들 아닌 미국인들이 자신들에게 가혹하다고 보지만 중국계를 제외한 미국인들은 당연히 그럴 수도 있는 일이라고 인식한다는 걸로도 볼 수 있다.

중국의 기술 탈취, 스파이 행각은 여럿 사실로 입증됐는데 최근에는 쉬옌쥔이라는 중국 국가안전부 소속 요원이 미국 항공 산업 영업 기밀을 훔치려다 붙잡히고 법원으로부터 징역 20년형을 선고받는 일도 있었다.

미연방수사국(FBI)은 쉬씨가 2013년부터 2018년까지 가명을 써서 유령회사를 만든 뒤 미국 GE 자회사인 GE항공 등 여러 미국 항공우주 관련 기업들 기술을 빼내려 했다고 봤다. 그는 2018년 벨기에에서 체포된 후 미국으로 신병이 인도됐다.

사실상 공산당이 배후에 있다고 의심받아 미국에 의해 영업 기반이 서서히 무너지고 있는 화웨이. 화웨이에 대한 미국 검찰 수사 정보를 빼내 수사를 방해하려 했다는 혐의로 중국인 스파이 혐의자 2명이 기소된 일도 있다. 반체제 인사들을 협박하는 등 간첩 활동을 한 혐의를 받는 중국인 11명이 재판에 넘어가기도 했다.

중국 스파이 활동에 관한 미국의 뿌리 깊은 불신은 '중국의 정보 전쟁: 간첩, 사이버 전쟁, 통신 통제 및 미국의 이익에 대한 기타 위협' 저자인 데니스 에프 포인덱스터가 2015년 6월15일 미 의회 산하 미중 경제 안보 검토위원회(USCC) 청문회에서 한 증언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그들은 단지 사업체만 해킹하는 게 아니다. 모든 수준의 비밀정보 취급인가 처리자, 보험사, 의료, 방위, 컴퓨터 보안, 교육 기관, 그리고 정보기술 같은 미국 정부 및 계약직 인력을 지원하는 산업을 해킹해왔다. 그들은 훔친 기술로 미국 사업 부문과 경쟁할 의지로 가득 차 있다. 그들은 국영기업을 통해 강화된 정보 군사 부서, 대학연구센터를 이용해 정보를 수집하고 적용한다. 그리고는 모든 것을 부인하며 '증명해보라'고 한다"

미국 상원의원과 하원의장을 지낸 뉴트 깅리치는 저서 '전체주의 중국의 도전과 미국'에서 모든 중국인이 스파이는 아니지만 중국 정부는 해외에서 공부하거나 여행하면서 보고 들은 모든 걸 모든 걸 요구할 권한이 있고 그렇게 모든 모래 같은 정보들을 모으고 모아 거대한 팩트를 꿰맞춘다고 했다.

중국에 대한 미국의 불신이 이 정도라면 미국 내 중국계는 오랜 기간 핍박을 피하기 어려울 가능성이 높다. 미국 입장에서는 불신을 해소하기 위해 중국이 노력해야 해야 한다고 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 갈등이 노력으로 해소될 성격이 아니라는 건 누구나 안다. 두 나라 갈등의 본질은 절대 강자 자리를 지키려는 나라와 그 자리에 올라서고 싶은 나라의 패권 다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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