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2년 장충동 자택에서 고 이병철 창업회장(왼쪽)과 이건희 선대회장(가장 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가장 앞쪽). / 사진 = 삼성전자 제공
이 창업회장은 오늘날 브랜드 가치 124조원(인터브랜드 통계)짜리 글로벌 그룹으로 발돋움한 삼성의 기틀을 닦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과일과 건어물을 수출하던 무역 기업을 지휘해 반도체 불모지였던 한국의 반도체 사업을 일으킨 주역으로도 첫손에 꼽힌다. 재계 서열 1위 삼성그룹을 이끌면서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새 사업을 구상했던 호암 이병철 창업회장의 발자취를 따라가 봤다.
1985년 반도체 생산라인을 둘러보는 고(故) 이병철 창업회장. / 사진 = 삼성전자 제공
이 창업회장은 인력 외에 자원이 부족한 한국의 현실을 고려하면 원자재를 수입해 가공·수출하는 제조업으로의 전환이 불가피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1953년 제일제당을 설립하고 설탕 제조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그 결과 1953년 설탕 100%를 수입에 의존하던 데에서 3년 후인 1956년 93%까지 국내 생산하는 쾌거를 이뤄낸다.
이후 제일모직(1954년), 삼성전자(1969년), 삼성중공업(1974년)등 여러 기업을 일으키면서 의욕적으로 사업을 일으켜 오던 이 창업회장은 삼성뿐만 아니라 한국 경제를 좌우할 결정을 내린다. 1983년 3월 미국에 다녀온 후 반도체 사업에 투자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당시 회사 내외부에서 미국·일본이 선점하고 있던 반도체 진출에 반대가 많았으나, 이 창업회장은 '반도체가 미래 먹거리'라며 뚝심 있게 밀어붙였다.
결국 삼성전자는 메모리 반도체 1위를 차지하며 세계 반도체 업계를 호령하게 됐다. 증권가와 시장조사업체 IDC에 따르면 삼성전자의 올해 3분기 D램 점유율은 41.0%, 낸드플래시도 33.3%로(2분기 기준) 1위다. 이 창업회장은 사내 반도체 회의에서 "돈벌이를 하려면 반도체 말고도 많지만, (반도체에) 애쓰는 이유는 국가적 사업이고 미래산업의 총아이기 때문"이라고 언급했다.
"기업은 국가와 사회에 공헌해야 한다"…시대 앞서간 선견지명
고(故)이병철 삼성그룹 창업회장 사진. /사진 = 삼성전자 제공
이 창업회장이 삼성문화재단을 설립해 호암미술관을 개관하는 등 다방면의 예술에 공헌하는 것 역시 기업 외의 영역에서 사회에 공헌하고자 한 의지에서 비롯됐다. 또 대한암협회장을 지내면서 병 치료에도 다방면으로 힘썼으며, 삼성장학회를 설립하고 대구대학과 성균관대학교 이사장을 맡아 인재 발굴에 노력했다.
재계 관계자는 "이병철 창업회장은 불모지였던 한국경제가 오늘에 이르기까지 발전해 오는데 선도적 역할을 해 온 기업인"이라며 "경제 부문뿐만 아니라 문화와 예술, 교육, 언론 등 사회 각 분야의 발전에도 큰 업적과 교훈을 남겼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