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2050 탄소중립 녹색성장위원회와 환경부 등이 공동 개최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국제 콘퍼런스에 연사로 나온 국내 굴지 기업 부사장의 말이다. RE100(Renewable Electricity 100%)을 보는 국내 기업들의 시각을 잘 보여준다. RE100은 비영리기구가 주도한 민간의 자발적 캠페인이지만 기업엔 관세보다 더 무섭다. 국내 여건을 감안할 때 몇몇을 제외하곤 사실상 충족이 어렵기 때문이다.
정부가 10차 전력 수급계획 실무안에서 2030년 신재생에너지 비율을 21.5%로 제시했지만, 여전히 갈 길은 멀다. 규모가 작은 만큼 당연히 가격도 비싸다. 한 재계 고위 관계자는 "한국에서 사업을 하려면 해외서 사업하는 데 비해 RE100 달성에 더 많은 돈을 들여야 한다"며 "대안을 찾아야 하는 기업들의 눈이 해외를 향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삼성전자 글로벌 재생에너지 사용량은 2019년 3220GWh에서 2020년 4030GWh, 2021년 5278GWh로 매년 크게 늘었다. 지역별로 보면 이 기간 미국이 96%에서 100%로, 유럽은 95%에서 100%로, 중국은 90%에서 100%로, 브라질은 90%에서 94%로 재생에너지 비율이 늘었다. 가장 많이 늘어난 곳은 멕시코다. 2019년 3.8%에서 지난해 71%로 늘었다. 인도도 14%에서 23%로 소폭 늘었다.
한국에선? 공개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해외 대비 매우 낮다는 예상만 나온다. 낮은 재생에너지 비율은 곧 많은 지출을 의미한다. 그린피스가 2019년 기준으로 추정한 자료를 보면 삼성전자 글로벌 신재생에너지 사용량 중 REC(재생에너지증명), 즉 돈으로 때운 비율은 약 66%다. 재생에너지 공급량이 적은 한국에선 REC 비율이 훨씬 높을 거라는 추정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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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보다 자금 사정이 나쁜 기업들의 부담은 더 클 수밖에 없다. 숙제를 할 수 없는 곳에서 숙제를 강요받는 셈인데, 그럼 답을 다른 곳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삼성전자는 CDP(탄소정보공개프로젝트)에 자료를 내면서 E100을 요구하는 해외 고객사의 요구를 충족하지 못하면 매출이 최대 20%까지 줄어들 수 있고 손실이 26조원에 달할 수 있다고 밝혔다.
미국의 IRA(인플레이션 감축법)와 EU택소노미(녹색 분류체계) 등 보호무역 장벽이 가뜩이나 커진다. 가장 손쉬운 답은 해외 증설이다. 기업의 엑소더스 위협 요소를 줄이기 위해 정부와 민간이 의견을 모아 무탄소전원 범위를 넓혀야 한다는 전망이 나온다. RE100 대신 원전 등 무탄소 발전을 포함해주는 CF100(Carbon Free 100%)을 주장하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는 것은 이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