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칸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을 받았던 ‘올드보이’는 한국영화계에서도 중요한 작품이지만 외국 영화를 즐겨 보던 전세계 영화 팬에게도 중요한 영화였다. 그때 한국 영화를 접한 이들이 훗날 영어권 영화계에서 영화를 만들고, 제작하고, 배급하고, 글을 쓰는 인사들이 되었다. ‘박찬욱’이란 이름은 외국 영화의 신세기를 열었던 상징적인 이름이고 신작이 나올 때마다 굉장한 주목을 받는다.
2016년작 ‘아가씨’는 미국에서 ‘올드보이’ 못지 않은 인기를 누렸다. 아마존 프라임에서 배급해 프라임 회원이면 언제든 스트리밍할 수 있는 작품으로 지금까지 IMDB 유저 평점 8점대를 유지한다. 외국 시네필이 열정적으로 감상을 표출하는 소셜 네트워킹 앱 ‘레터박스드(letterboxed)’에서 ‘아가씨’의 평점은 ‘올드보이’를 뛰어넘는다. 이 평점을 기반으로 ‘레터박스드 최고 극영화 250’가 매겨지는데 마니아가 열광하는 컬트 장르나 고전 영화를 제외하고 2010년 이후 작품 중에 ‘기생충’이 1위이고 ‘아가씨’가 6위(전체 순위 34위)다. 한국 영화만 따진다면 ‘기생충’ ‘아가씨’ ‘올드보이’ ‘살인의 추억’ 순으로 모두 100위권 안이다. ‘아가씨’는 레즈비언 로맨스 영화로도 명작 평가를 받았고 이 점 덕분에 꾸준히 주목을 받고 있다. ‘헤어질 결심’이 10월 14일 미국에서 한정 개봉되었을 때부터 이 영화의 최대 경쟁작은 다름아닌 박찬욱 감독의 이전작들이었다.

개봉 시기에는 ‘원초적 본능’같은 로맨틱 스릴러인지, ‘나이브스 아웃’같은 살인 추리극인지 장르 판별에 혼란이 있었지만, 봉준호 감독이 봉준호 장르를 개척한 것처럼 박찬욱 감독도 비슷하게 이해되고 있다. 또한 모든 미디어에서 ‘기생충’ 개봉 당시 봉준호 감독을 ‘준호 봉’이 아니라 ‘봉준호’라 발음했던 것처럼, 박찬욱 감독을 ‘박찬욱’으로 한 어절처럼 발음하고 있는 풍경도 새삼 재미있다. 작년 오스카 국제영화상 수상작인 ‘드라이브 마이 카’의 하마쿠치 류스케 감독을 여전히 ‘류스케 하마구치’라 표기하고 있는 상황에서 유독 한국 영화인만 한국식으로 표현하려고 하는 집착이 꽤 흥미롭다.(‘아가싸’ 개봉 때만 해도 ‘챈욱 팍’으로 불렸다)

국제영화상 관련해 다른 선두 영화는 벨기에의 ‘클로즈’, 프랑스의 ‘세인트 오메르’, 아르헨티나의 ‘아르헨티나, 1985’, 덴마크의 ‘홀리 스파이더’, 오스트리아의 ‘코르사주’, 스페인의 ‘알카라스’, 멕시코의 ‘바르도, 약간의 진실을 섞은 거짓 연대기’, 폴란드의 ‘EO’ 등이다. 그리고 현재 넷플릭스에 공개되어 다크 호스로 떠오르는 독일의 ‘서부 전선 이상 없다’가 있다. 박찬욱 감독 못지 않은 팬층을 거느린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의 신작 ‘바르도, 약간의 진실을 섞은 거짓 연대기’가 넷플릭스 공개를 기점으로 달라질 수도 있지만, 현재 ‘헤어질 결심’만큼 미디어에서 말이 많이 오가는 출품작은 드물다. 이 열기가 잘 유지된다면 연말 비평가 시상식에서 수상하며 더 많은 주목을 받을 수 있으리라 예상된다.
“금세기 최초의 위대한 에로틱 스릴러 영화”(더 애틀란틱), “독창적인 영화 효과는 눈부시고 아찔하다”(뉴욕 타임즈), “올해 최고 로맨틱 영화”(인디와이어) 등 찬사가 내년 아카데미 시상식까지 이어질 수 있기를. 물론 상을 놓친다고 해서 ‘헤어질 결심’의 가치가 빛을 잃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