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선영, ‘연매살’로 확인한 연기 치트키

머니투데이 조이음(칼럼니스트) ize 기자 2022.11.16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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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tvN사진제공=tvN


곽선영은 작품에서 마주할 때마다 왠지 익숙한 느낌이다. 다른 작품, 다른 캐릭터로 마주해도 ‘아, 나 이 배우 아는데!’ 하는 건 그의 또랑또랑한 눈빛과 발음이 남긴 강렬함의 잔상이다. 다만 이는 그가 어떤 작품에서 어떤 캐릭터를 꺼내기도 전에 시청자로서 마음을 놓는 부분이기도 하다. ‘아, 곽선영이 연기한다!’ 하는 순간, 툭 치고 나오는 무언가. 이는 결국 어떤 연기도 거뜬하게 소화할 수 있는 넓은 연기 스펙트럼을 지닌, 이마저도 반전이 되는 배우란 거다. tvN 월화드라마 ‘연예인 매니저로 살아남기’(극본 박소영 이찬 남인영, 연출 백승룡)에서도 곽선영은 자신의 치트키를 제대로 활용한다.

‘연예인 매니저로 살아남기’(이하 ‘연매살’)는 일은 프로, 인생은 아마추어인 연예인 매니저들의 하드코어 직장 사수기를 그리는 드라마다. 곽선영이 연기하는 천제인은 현장 매니저로 일을 시작해 어느덧 14년 차가 된 매니지먼트 팀장이다. 목표가 정해지면 일단 달려들고, 다혈질에 직감에 따라 충동적으로 일을 저지르기도 하지만, 아무리 가능성 낮은 일이라도 끈질기게 버티고 부딪혀 반드시 이뤄내고야 마는 승부욕의 화신이다. 무엇보다 자신의 일을 사랑하고 즐기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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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부터 열까지 질문을 쏟아내는 후배 매니저에게 답해주랴, 제 업무 보랴 눈 코 뜰새 없이 바쁘게 등장한 천제인의 모습은 배우 곽선영의 여러 작품을 자연스럽게 연상시킨다. 깔끔하게 똑떨어지는 칼단발 머리마저 ‘슬기로운 의사생활’(2020) 속 이익순과 연결되니 더욱 그렇다. 하지만 역시나 마음을 놓는 순간, 곽선영의 치트키가 작동한다. 극 중 후배 매니저는 천제인의 농담과 진담도 구분하지 못해 그에게 “정신 차려!”라는 불호령을 듣고, 대표가 참석한 회의에선 눈치 없는 대꾸를 하다 결국 짐을 싼다. 이 후배는 천제인을 향해 “사이코패스, 성격파탄자, 개 꼰대”라며 악을 쓰는데, 이 상황에도 천제인은 ‘후임자 찾기’에 몰두한다. 그런 천제인에게 뚝 떨어진 수습 매니저 소현주(주현영)는 “전화는 24시간 열려있어야 해. 먹고, 자고, 싸고, 씻을 때도 (전화는) 받아야 한다는 말이야. 야근은 시도 때도 없이, 밤샘은 빈번, 사생활 보장은 못 해. 그래도 괜찮아?”라는 구시대적 질문에도 불만을 품지 않는다.



이후 전개에서 천제인은 촬영을 3주 앞둔 영화에서 갑작스럽게 하차를 선언한 배우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노력하고, 다른 배우의 출연 소식을 듣곤 하차 선언을 번복한 탓에 더블 캐스팅이 된 복잡한 상황을 타개하고자 감독과 제작사에 스토리라인 변화를 구상해 제안하는 등 자신이 맡은 배우와 작품에 대해 끝까지 책임지는 프로의 면모를 보인다. 일에 있어서는 불도저인 면모와 달리 사랑에 있어서 서툰 천제인이 이상욱(노상현)과 쓰기 시작한 ‘격정 멜로’ 또한 눈길을 끈다.

사진제공=tvN사진제공=tvN
사실 ‘연매살’ 한국판 제작 소식이 알려졌을 당시 많은 이들의 관심은 크게 두 갈래로 나뉘었다. 리메이크 작품을 향한 시선이 으레 그렇듯 원작과 얼마나 비슷하게(혹은 다르게) 리메이크 될 것인지, 그리고 이 드라마는 얼마나 많은 시청자의 관심을 끌 수 있을지 말이다. 전자는 2015년부터 프랑스에서 인기리에 방영돼 국민 드라마로 등극한 동명의 시리즈를 원작으로 하는 까닭이고, 후자는 연예계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가 우리나라 시청자에게 이렇다 할 관심을 받지 못한 탓이 크다. 엔터테인먼트 회장이 죽은 이후 이야기가 펼쳐지는 것을 비롯해 주요 캐릭터의 설정 대부분이 원작과 비슷하다. 다만 필자가 한국판 ‘연매살’의 시작부터 강렬하게 느껴진 건, 곽선영이 쓴 치트키에 제대로 맞은 한방이 얼얼했기 때문이다. 완벽해 보이지만 어딘가 부족하고, 잘하는 듯하지만 허점이 드러나는, 작은 차이로 자신의 캐릭터를, 나아가 작품의 완성도를 높인 것. 아직 두고 봐야겠지만, 시작만으로는 분명 나쁘지 않았다.


많은 이들이 ‘슬기로운 의사생활’로 그를 기억하겠지만, 곽선영은 2006년 뮤지컬 ‘달고나’로 연기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에도 뮤지컬 ‘사의 찬미’ ‘러브레터’ ‘빨래’ ‘궁’ ‘노트르담 드 파리’, 연극 ‘두근두근 내 인생’ ‘렁스’ 등 다수의 작품을 거쳐 드라마로 시청자와 만났고 지금에 이르렀다.

특히 드라마 ‘남자친구’ 장미진과 ‘슬기로운 의사생활’ 이익순에 이어 ‘구경이’ 나제희 까지. 곽선영의 드라마를 떠올리면 생각나는 캐릭터 대부분은 심지가 곧고 강단 있는 인물이었다. 이를 펼치는 곽선영의 연기 또한 각각의 자리에서 다르게 빛났다. 이제 4회가 막 방송된 만큼 천제인의 이야기는 펼쳐질 것들이 많겠지만, 또 다른 반짝임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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