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잘하는 사람에게 맡기자

머니투데이 이학렬 금융부장 2022.11.09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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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을 앞둔 A씨와 B씨. 설거지와 청소를 비롯해 집안일을 어떻게 나눠서 할 지 얘기를 나눴다. '관행'과 '관례'에 따라 A씨가 도맡다가는 부부싸움이 잦을 수 있다. 최악의 경우엔 헤어지는 씨앗이 될 수도 있다. 협의 끝에 A씨와 B씨는 각자 자신이 잘하는 청소와 설거지를 나눠 맡기로 했다.

사회, 나랏일도 마찬가지다. 잘 할 사람에게 '책임' 있는 역할과 업무를 맡겨야 사회와 나라가 제대로 돌아간다.



금융정책에서도 잘 하는 사람의 책임있는 행동이 필요하다. 지난달 국정감사에서는 공매도 관련한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의 소신 발언이 금융위원회와 엇박자를 내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금융위원회는 '금융정책', 금감원은 '감독정책'이라는 이분법적인 시각으로 보면 이 원장의 발언은 영역 침범이고 혼란을 줄 수 있는 발언일 수 있다. 하지만 금융위가 합의제 행정기관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 원장은 충분히 할 수 있는 발언을 했을 뿐이다. 금감원장은 금융위 당연직 위원이다.

역대 금감원장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데 소극적이었던 건 '관례'와 '관행' 때문이다. 이 원장은 시장에서 공매도가 어떻게 악용되고 있는지 잘 알고 이를 잘 해결할 수 있는 금융당국자로서 필요한 메시지를 내야 할 때 주저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 원장이 2017년 이후 5년만에 외신기자 간담회를 열어 한국의 금융상황을 상세히 설명한 것도 책임있는 당국자로서의 필요한 자세다.



거시경제정책도 잘 하는 사람이 맡고 있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금리정책과 재정정책이 따로 가면 안된다고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한은이 물가상승을 억제하기 위해 빅스텝까지 단행하면서 금리를 높이고 있는데 재정당국이 '돈'을 풀면 억제 효과가 떨어진다.

특히 이 총재는 지난달 빅스텝을 단행하면서 금리 인상 배경으로 물가와 함께 '원화 가치의 급격한 절하'를 꼽았다. 거시경제 전문가다운 면모를 보이고 있다는 게 시장의 평가다. 이 총재에 대한 시장 신뢰도 높다. 다만 최근 거시경제정책의 방점을 계속 물가상승 억제에 찍어야 하냐에 대한 우려섞인 분석이 나오기 시작했다. 물가를 주로 보는 한은의 '관행'적 시각이 임명된 지 반년이 넘은 이 총재에 물들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과거에도 잘하는 사람이 특정 정책의 주도권을 가졌다. 문재인 정부 시절 기업 구조조정은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이 도맡았다. 두산중공업 구조개선과 대우조선해양 매각, 아시아나항공을 비롯한 항공업 재편 등은 모두 이 회장이 진두지휘했다. 금호타이어 매각과 아시아나항공 매각때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을 만나 담판한 것도, 정몽규 HDC현대산업개발 회장을 만나 아시아나인수 포기를 재확인한 것도 이 회장이다. 채권단 대표니까 당연한 일을 한다고 할 수 있지만 그동안 굵직한 구조조정을 주로 금융위가 '키'를 잡았던 걸 고려하면 당연한 일은 아니다. 실제로 박근혜 정부 막바지 대우조선해양이 자율 구조조정에 돌입할 수 있도록 힘 쓴 건 금융위였다. 당시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주말 브리핑을 마다하지 않고 대우조선해양 구조조정을 손에 쥐고 이끌었다.


잘 하는 사람에게 일을 맡기는 건 사기업인 금융회사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경영은 경영을 해봤던 사람이 잘 한다. 외부 사람이 잘 하고 있는 기업 인사에 '감놔라 배놔라' 하는 순간, 잘 나가는 기업은 망가지기 시작한다. 특히 지금과 같은 위기 상황에서 외풍은 곧 침몰을 의미한다.

[광화문]잘하는 사람에게 맡기자


몇몇 금융그룹 회장을 비롯한 금융회사가 연말 인사 시즌을 앞두고 있다. 하지만 벌써부터 거짓인지 아닌지 확인할 수 없는 투서가 쏟아지고 있다. 경영을 잘했는지 못했는지, 경영에 책임있는 자세를 갖췄는지 아닌지는 인사권을 가진 '주주'들이 판단할 문제다. 그동안 아무런 관심을 두지 않았던 외부 사람이 나설 때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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