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둥이 엄마 이영애" 편지에 1000만원…러 희생자 父 "한국에 감사"

머니투데이 정세진 기자 2022.11.04 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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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둥이 엄마 이영애" 편지에 1000만원…러 희생자 父 "한국에 감사"


배우 이영애씨가 이태원 참사로 외동딸을 잃은 고려인 박 아르투르씨(64)에게 성금 1000만원을 전달했다.

한국장애인재단은 3일 오후 고(故) 박 율리아나씨(25) 분향소가 마련된 인천 연수구 함박안로 함박종합사회복지관에서 이씨 편지와 성금을 전달했다. 이씨는 한국장애인재단 문화예술분야 자문위원장을 맡고 있다.

한국장애인재단 관계자들은 앞서 오후 5시부터 엄수된 율리아나씨 추도식이 끝난 뒤 조문객이 드문 시간을 찾아 이영애씨 뜻을 전했다. 재단 관계자들이 분향소를 찾기 불과 2시간 전까지 이곳엔 유정복 인천시장 등 외부 귀빈과 조문객 수십 명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카메라 대여섯 대를 포함해 10여명이 넘는 취재진도 진을 치고 있었다.



재단 관계자가 대신 전한 편지에서 이영애씨는 "저는 쌍둥이를 둔 엄마 이영애"라고 자신을 소개하며 "지금 겪고 있는 율리아나 아버님의 고통을 무슨 말로 위로 할 수 있겠냐"고 했다.

그러면서 "수천만의 언어가 있다고 해도 율리아나 아버님의 슬픔을 함께 할 수 없을 것"이라며 "저 또한 슬픔으로 가슴이 먹먹하고 답답하여 몸과 마음을 추스르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이어 "율리아나 아버님 그래도 힘내셔야 한다"며 "더욱 강건해야 한다. 그래야 하늘에 있는 율리아나가 아버님을 지켜보며 웃을 것"이라고 했다.

이씨는 "끝으로 이태원 핼러윈 행사의 사고로 희생당한 모든 분께 머리 숙여 조의를 표하며 소중한 생명을 지켜주지 못한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가슴 속 깊이 용서를 구한다"고 했다.

"덕분에 딸과 함께 돌아갑니다"…고려인 희생자, 시민 도움에 운구 해결
3일 오후 5시 인천시 연수구 연수동 함박종합사회복지관에 '이태원 핼러윈 참사 희생자' 러시아 국적 고려인 박 율리아나씨(25)의 추도식이 열렸다. 이 자리에는 아버지 박 아르트루씨가 발걸음 해 몰린 취재진을 향해 "장례비 마련을 어떻게 해야 할 지 막막했는데, 국민 여러분들께서 도와주셔서 감사하다"는 마음을 전했다/사진=정세진 기자3일 오후 5시 인천시 연수구 연수동 함박종합사회복지관에 '이태원 핼러윈 참사 희생자' 러시아 국적 고려인 박 율리아나씨(25)의 추도식이 열렸다. 이 자리에는 아버지 박 아르트루씨가 발걸음 해 몰린 취재진을 향해 "장례비 마련을 어떻게 해야 할 지 막막했는데, 국민 여러분들께서 도와주셔서 감사하다"는 마음을 전했다/사진=정세진 기자

앞서 이날 오후 5시부터 엄수된 율리아나씨 추도식을 마친 박 아르투르씨는 몰려든 취재진에게 "도와주셔서 감사다. 마음이 편해졌다"며 떨리는 목소리로 연신 고마움을 표현했다. 이태원 참사로 숨진 율리아나씨 시신 운구 비용을 마련하지 못해 어려움에 처해 있다는 본지 보도 후 배우 이영애씨를 비롯해 시민과 재계가 잇따라 지원의사를 밝힌 것에 대한 감사 표현이었다.

지난 30일 새벽 경찰로부터 외동딸 율리아나씨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접한 후 박씨는 슬픔을 느낄 여유조차 없었다. 미화 약 5000달러(한화 약 710만원) 가량의 돈을 마련해야 했다. 딸 시신을 어머니가 기다리는 고향 러시아로 운구하기 위한 비용이었다.

박씨는 오는 4일 강원 동해시 동해항에서 출발하는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행 페리선편으로 율리아나씨 시신을 운구할 계획이었다. 고인 어머니가 홀로 있는 러시아 항구 도시 나홋카에서 장례를 치르기 위해서다. 4일 출발하는 페리선을 놓치면 다시 일주일을 기다려야 했다. 율리아나씨 어머니가 이미 장례식 준비를 마쳤다. 운구 일정을 지체하기 어려웠다.

한국정부에서 지급하는 장례비 등 생활안정금을 받으려면 빨라도 일주일 정도 걸린다는 안내를 받은 박씨는 조급해졌다. 예순이 넘은 그는 양로원에서 일하고 있었고 수중엔 큰 돈이 없었다. 딸을 4일 출항하는 배로 운구하기 위해서는 2일까지 업체에 700여만원을 결제해야 했다.

본지 보도로 이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배우 이영애씨를 비롯해 다수 시민들이 지원의사를 밝혔다. 러시아대사관, 외교부, 용산구청은 박씨가 구호금 2000만원과 장례비 1500만원 등을 바로 받을 수 있도록 조지했다. KB국민은행은 1000만원을 후원하기로 약속했다. 재한러시아인 단체인 러시안 커뮤니티협회를 통한 기부도 이어졌다. 여러 선의가 모여 박씨는 외동딸을 고향 러시아로 보낼 채비를 마쳤다.

참사 희생자 父 "대한민국 시민 여러분 지원해주셔서 너무 감사하다"
 3일 오후 인천 연수구 함박종합사회복지관에서 고려인 박 율리아니씨의 추도식이 진행되고 있다. 그는 지난달 29일 직장 동료와 함께 핼러윈 축제가 열린 이태원을 찾았다가 사고를 당했다./사진=뉴시스 3일 오후 인천 연수구 함박종합사회복지관에서 고려인 박 율리아니씨의 추도식이 진행되고 있다. 그는 지난달 29일 직장 동료와 함께 핼러윈 축제가 열린 이태원을 찾았다가 사고를 당했다./사진=뉴시스
박씨는 이날 추도식에서 "제가 지금 말이 잘 안 나온다"며 서툰 한국말이지만 또박또박 말을 이어 나갔다. 박씨는 "제일 큰 문제는 돈이었다"며 "결제할 돈을 모금했다. 대한민국 시민 여러분 지원해주셔서 너무 감사하다"고 말했다.

이어 "제 계좌에 1000원부터 50만원까지 들어왔다"며 "그것은 돈이 있든 없든 모든 사람이 괴로워해 줬다는 것"이라고 했다.

박씨는 "1000원이라도 괴로움을 보여준 것"이라며 "크게 감사하고 싶다. 조금이라도 도와주셔서 너무 감사하다"고 했다.

박씨에게 많은 도움의 손길이 닿았지만 박씨는 필요 이상의 도움은 사양했다. 이날 추도식을 진행한 손정진 너머인천고려인문화원 대표는 "고인의 아버지가 미안하고 부담스러워 자신이 지인들에게 빌려서 시신운구 비용을 마련했다"며 "급한 돈은 구했다고 성금을 그만 받겠다고 했다. 그래도 기부하겠다는 사람들이 있었다"고 했다.

손 대표는 "유족들은 러시아 현지에서 우리 풍습 그대로 장례하고 매장할 것"이라며 "딸 소식을 듣고 쓰러져 입원한 어머니를 추스르고 대책 없이 딸을 보내게 됐지만 아버지는 '시민들의 추가 성금은 됐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고인의 시신은 오는 4일 오후 강원 동해시 동해항에서 블라디보스토크행 페리선에 실려 고향 나홋카로 향한다. '그냥 한국에 살고 싶다'며 러시아 고향마을을 떠난 지 1년 6개월 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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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참사로 세상을 떠난 박 율리아나씨(25) 사진이 지난 1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 참사 현장에 놓여있다. /사진=박 율리아나씨 유족 제공이태원 참사로 세상을 떠난 박 율리아나씨(25) 사진이 지난 1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 참사 현장에 놓여있다. /사진=박 율리아나씨 유족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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