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국화꽃 나눔하는 30대男…"인파에 휩쓸려 친구 숨져"

머니투데이 김진석 기자, 김성진 기자 2022.11.02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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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1일 이태원역 1번 출구 옆에서 30대 남성 플로리스트 김씨가 300송이의 추모꽃을 시민들에게 나누고 있다. /사진=김씨 제공지난달 31일 이태원역 1번 출구 옆에서 30대 남성 플로리스트 김씨가 300송이의 추모꽃을 시민들에게 나누고 있다. /사진=김씨 제공


이태원역 인근에 마련된 '이태원 사고' 사망자 합동분향소 부근에서 시민들에게 국화를 무료로 나눠준 이가 있었다. 플로리스트 김서준씨(35)다. 김씨는 지난달 31일 분향소가 차려졌다는 소식을 듣자 국화 300송이를 들고 이태원으로 향했다.

사고 이튿날에 받은 친구의 메시지를 잊을 수가 없었다. 김씨의 동갑내기 친구 A씨가 이태원 사고로 숨졌다. 친구는 곁에 있던 여자친구를 지키고 자신은 인파에 휘말렸다고 했다.



김씨가 힘들 때 A씨는 곁에 있어 준 친구였다. 김씨는 "평소 고민을 잘 들어준 친구"라며 "살다 보니 서로 바빴지만 올해 연말에는 꼭 보기로 했었다"고 했다.

지난 9월 신당역 살인 사건이 터지고 분향소 옆에서 국화를 무료로 나눈 시민이 떠올랐다. 김씨는 "(필요한 순간 남을 돕지 못해)나중에 가서 후회한 적이 많았다"며 "그 시민을 보고 나도 누군가를 위로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했다.



새벽부터 국화를 준비해 오후에 이태원으로 향했다. "국화 무료로 나눠드린다" 김씨 말에 시민들이 줄을 섰다. 시민들은 김씨 손을 감싸 쥐고 "감사하다"고 했다. 김씨는 "내가 더 감사하다"고 답했다.

시민 두명은 김씨 옆에 앉아 국화를 함께 가다듬었다. 김씨 손에 지폐를 쥐여주는 시민도 있었다. 김씨 옆에 커피 등 시민들이 건넨 따뜻한 음료가 줄을 지었다. 김씨는 "나도 누군가의 선행을 보고 (국화 나눔) 한 것이었다"라며 "선행이 옮겨붙는다는 것을 느꼈다"고 했다.

국화를 받아 분향소로 향하는 시민들 발걸음은 무거워 보였다. 김씨는 안타까우면서도 아픔을 함께하는 그 모습이 고마웠다고 한다. 준비한 국화 300 송이는 2시간여만에 동났다. 김씨는 "부족함 없이 나눌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라며 "오히려 부족하더라"라고 했다.


김씨는 2일 오후 6시쯤에도 이태원역 1번 출구 부근에서 국화를 무료 나눔한다. 지난달 31일 김씨와 국화를 다듬은 시민 2명도 함께한다고 한다. 이날은 국화 500송이를 준비했다.

사망자 유족에게 하고픈 말이 있냐는 질문에 김씨는 "누군가의 기억에서 잊히는 것은 정말 마음 아픈 일"이라며 "희생자들이 마음속에 잊히지 않고 오래 자리 잡았으면 좋겠다. 내 친구도 잊히지 않길 바란다"고 했다.

사망자들을 추모하는 시민들을 향해서는 "우리들의 추모로 사람들이 사망자들을 더 추모하고 기억할 것"이라며 "다들 힘내시라"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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