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찍는 구경꾼들, 끔찍했던 현장" CPR 의사의 분노

머니투데이 양윤우 기자 2022.10.31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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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일 오전 서울 용산구 이태원 일대에서 경찰이 압사 사고 현장을 조사하고 있다. /사진=뉴스1 30일 오전 서울 용산구 이태원 일대에서 경찰이 압사 사고 현장을 조사하고 있다. /사진=뉴스1


'이태원 압사 참사' 현장에서 심폐소생술(CRP)에 나섰던 한 의료진이 참혹했던 당시 사고 현장 상황을 전하며, 일부 시민의 몰지각한 행동을 비판했다.

지난 30일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에는 '이태원 현장에서 끔찍했던 것'이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블라인드는 재직 중인 직장 정보를 인증해야 가입할 수 있는 커뮤니티로, 글쓴이의 직장이 작성된 글과 댓글에 표기된다.



국립암센터 소속 의료진이라고 밝힌 글쓴이 A씨는 "어제(29일) 밤 이태원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며 "사고 소식을 듣고 CPR는 할 줄 아니까 도움이 될까 싶어서 이태원으로 갔다"고 밝혔다.

그는 "평상시에도 무딘 편이라 괜찮을 줄 알았는데 막상 가니 끔찍했다. 몇십미터 전방부터 구급차 소리에 울음소리에 아수라장이었다"고 회상했다.



A씨는 경찰에게 출입 통제를 받았지만 자신이 의료진임을 밝히며 CPR를 할 수 있다고 한 뒤 사고 현장에 진입할 수 있었다. A씨가 현장을 둘러보니 바닥에 누워 있는 사람들의 얼굴에 이미 청색증이 와 있는 수준이었다.

A씨는 "응급구조사가 눕힌 사람에게 CPR를 하는데, 코피가 나고 입에서도 피가 나왔다"며 "내가 이 사람을 살릴 수 없겠구나 싶었다"고 말했다.
 30일 새벽 서울 용산구 이태원 일대에서 의료진과 소방대원들이 압사 사고 사망자들을 이송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  /사진=뉴스1 30일 새벽 서울 용산구 이태원 일대에서 의료진과 소방대원들이 압사 사고 사망자들을 이송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 /사진=뉴스1
A씨는 당시 상황에서 가장 끔찍했던 건 '가지 않고 구경하는 구경꾼들'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앰뷸런스에 환자가 실려 떠나고 잠시 쉬었다가 다시 CPR 하려고 앰뷸런스 뒤에서 물 마시는데, 지나가는 20대가 '아씨 홍대 가서 마저 마실까?'하고 말하는 걸 들었다"며 "정말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가 몸서리쳐진다"고 분노했다.


그러면서 "아무리 CPR를 해도 맥박이 돌아오지 않았던 사람을 보며, 무능한 의사가 된 듯한 기분도 끔찍했다"면서도 "타인의 죽음 앞에서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고 다음 술자리를 찾았던 그들을 평생 못 잊을 것 같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의료인 B씨 역시 "나도 거기 있다가 바로 (CPR) 시작했는데 처음으로 인간에 대한 혐오를 느꼈다"며 "사진 찍는 사람이 너무 많았다"고 밝혔다.

이어 "여태까지 꽤 많은 죽음을 봤다고 생각했는데 어제는 좀 충격이 크다. 가망 없는데도 친구 살려달라고 울고불고 난리여서 그만둘 수가 없었다. 자꾸 떠오른다"며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PTSD)를 호소했다.
31일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 마련된 이태원 참사 사망자를 위한 합동분향소를 찾은 한 시민이 헌화를 마친 뒤 눈물을 흘리고 있다. /사진=이기범 기자 leekb@31일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 마련된 이태원 참사 사망자를 위한 합동분향소를 찾은 한 시민이 헌화를 마친 뒤 눈물을 흘리고 있다. /사진=이기범 기자 leek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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