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봉창 의사 선서문(왼쪽)과 이 의사의 한인애국단 입단 모습. /사진제공=문화재청, 독립기념관
1931년 12월13일 이봉창 의사(1900~1932년)가 일본에 대한 항쟁을 다짐하며 국한문 혼용으로 작성한 선서문이다. 이 글은 김구가 결성한 항일독립운동단체인 한인애국단(韓人愛國團)에 제출됐다. 이날 서명을 마친 이 의사는 안중근 의사의 막내동생이자 한인애국단 임원이었던 안공근의 집에서 이 선서문을 가슴에 달고, 양손에 수류탄을 든 채 기념사진을 찍었다. 교과서 등에서 볼 수 있는 그 흑백사진이다.
이봉창 의사 선서문은 이 의사가 한인애국단 제1호 단원으로 입단하면서 선서한 당시 작성된 문건이다. 이 의사는 선서를 한 이듬해 일본 도쿄 연병장에서 관병식을 끝내고 경시청 앞을 지나가던 히로히토 일왕에게 폭탄을 투척한 '이봉창 의사 의거(동경의거)'를 벌이고, 같은 해 사형선고를 받아 순국했다.
익산 미륵사지 사리장엄구(사리봉영기-앞). /사진제공=문화재청
이 중 금제사리봉영기는 미륵사지 사찰을 창건하고 기해년(己亥年·639년)에 사리를 봉안해 왕실의 안녕을 기원한다는 내용은 193자가 새겨져 있다. 그간 '삼국유사'를 통해 전해진 미륵사 창건설화에서 구체적으로 나아가 조성 연대와 주체에 대한 역사적 사실을 밝힌 계기가 됐다. 서체 역시 곡선미와 우아함이 살아있어 백제서예의 수준을 보여주고, 한국서예사 연구에도 중요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이처럼 익산 미륵사지 서탑 출토 사리장엄구는 백제 왕실에서 제작후 봉안할 당시 모습 그대로 발굴돼 고대 동아시아 사리장엄 연구에 있어 절대적 기준이 된다는 평가다. 제작 기술면에서도 최고급 금속재료와 기술을 활용해 탁월한 예술품으로 승화시켜 한국공예사에 뚜렷한 자취를 남긴 유물로 위상이 높다. 문화재청 측은 "7세기 전반 백제 금속공예 기술사를 증명하는 한편, 동아시아 사리공예품의 대외교류를 밝혀주는 자료"라며 "역사·학술·예술적 가치가 매우 커 국보로 지정해 보존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손소 적개공신교서. /사진제공=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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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청 관계자는 "이번에 국보로 지정 예고되는 익산 미륵사지 서탑 출토 사리장엄구, 보물로 지정 예고되는 이봉창 의사 선서문 등 7건에 대해 30일간의 예고 기간 중 각계의 의견을 수렴·검토하고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국가지정문화재(국보.보물)로 지정할 예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