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광일 광주경찰청 강력수사대장. /사진=노광일 경정 제공
지난 1월11일 오후 3시47분쯤 광주 서구 화정동 화정 아이파크 신축공사 현장에서 붕괴사고가 발생했다. 201동 39층 바닥이 무너지면서 연쇄 붕괴가 일어나 23층까지 총 16개층이 무너졌다. 이 사고로 현장 작업자 6명이 숨지고 1명이 다쳤다.
수사본부에서 사고 원인을 규명하는 수사전임관을 맡은 노광일 광주경찰청 강력범죄수사대장(경정)은 사고 직후 현장에서 밤낮으로 대기 중이던 실종자 가족들을 만나고 복잡한 감정에 휩싸였다. 사고 이후 2월9일 마지막 실종자가 발견되기까지 꼬박 30일이 걸렸다.
실종된 가족들이 살아 돌아오길 간절히 바라는 이들 앞에서 경찰이 할 수 있는 건 엄정한 수사뿐이었다. 노 대장은 "관련자들을 빠짐없이 처벌해 이런 일이 되풀이되는 걸 막겠다고 다짐했다"고 말했다.
현장 조사 결과 사고 원인은 3가지로 압축됐다. 주요 원인은 콘크리트를 타설할 때 아래층에 설치해야 하는 동바리(지지대)가 없었다는 점이었다. 화정아이파크의 경우 아래층 3개층까지 동바리가 설치돼야 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16개층이 무너진 연쇄 사고의 원인은 콘크리트 양생 불량이었다. 콘크리트가 덜 마른 채 위층 공사를 이어가던 중 39층이 무너지면서 아래층까지 찢기듯 붕괴됐다. 붕괴가 일어난 바로 아래층 38층의 공법을 변경하면서 구조 변경이 없었던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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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해결의 관건은 직접 시공을 맡은 하청뿐 아니라 원청의 관리·감독 부실을 입증해내는 데 있었다. 원청 시공사인 HDC현대산업개발(HDC현산)과 콘크리트 타설 하청업체는 주요 원인인 동바리 미설치를 두고 서로 책임을 떠넘기기 바빴다.
조사 결과 원청도 동바리 설치를 관리·감독하지 못한 책임이 밝혀지면서 HDC현산 소속 현장소장 등 원청·하청·감리 업체에서 총 6명이 구속되고 10명은 불구속 상태로 검찰에 넘겨졌다.
지난 1월 11일 광주 화정아이파크 201동 붕괴사고 현장. /사진=뉴시스
현장 관리자에 대한 인사 권한이 원청 대표에 있다는 점에도 주목했다. 모든 공사 현장에는 콘크리트 등 건축자재 품질관리자를 두게 돼있다. 화정아이파크의 경우 시멘트, 콘크리트 성분을 확인하는 관리자를 6명 둬야 했다. 직제표에도 6명이 기재된 상태였다. 해당 6명에 대한 인사발령 권한은 HDC현산 대표이사에게 있었다.
현장 작업자, 레미콘 운송업체 등을 조사해보니 실제 업무를 수행했던 관리자는 1명이란 사실이 드러났다. 나머지는 이름만 올렸을 뿐 안전부장 등을 겸직해 실제 품질관리는 1명이 도맡아 했다.
노 대장과 수사본부는 하 전 대표를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 조사한 뒤 "인사 배치를 잘못한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며 불구속 상태로 검찰에 넘겼다.
결과적으로 업무상과실치사상 등의 혐의로 원청·하청·감리업체에서 총 17명(구속 6명)이 검찰에 넘겨졌다.
노 대장은 화정아이파크 사고 이전에도 붕괴 사고를 수사한 이력이 있다. 지난해 6월9일 광주 동구 학동에서 철거건물 현장이 붕괴되면서 사고 현장 옆을 지나던 버스를 덮치는 사고가 발생했다. 당시 버스 안에 있던 승객 9명이 숨지고 운전기사와 다른 승객 등 8명이 다쳤다. 500여일만에 최근 수사가 마무리된 이 사건에서 시공업체 관계자 등 35명이 검찰에 넘겨졌다.
두차례의 붕괴 사고를 수사하면서 노 대장은 경찰 안팎 전문가의 필요성을 체감했다. 노 대장은 "자문단을 꾸리지만 붕괴 사고의 경우 건축 전문가보다 구조 전문가가 더욱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건축·토목·구조의 지식이 있는 경찰 인력이 전무한 실정"이라며 "특채 등을 통해서 경찰 내부에도 이런 인력을 확보해야 한다"고 밝혔다.
노 대장은 화정아이파크 붕괴 원인 규명 등의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 21일 제77주년 경찰의날 기념식에서 녹조근정훈장을 받았다. 노 대장은 "사고 원인 규명과 관련자 처벌로 돌아가신 현장 작업자들의 억울함이 조금이나마 해소됐으면 한다"며 "훈장도 받았지만 나만의 공이 아니고 동료 형사·수사관들 모두를 대신해서 받은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1일 오전 인천 연수구 송도컨벤시아에서 열린 제77주년 경찰의 날 기념식에서 광주광역시경찰청 노광일 경정에게 녹조근정훈장을 수여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