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성전자는 27일 이사회를 열고 회장 승진 안건을 의결했다. 1991년 삼성전자에 입사해 2012년 부회장에 오른 지 10년 만이다. 김한조 이사회 의장이 회장 승진 안건을 발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회장은 이날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승진 소감을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어깨가 무겁다. 국민에게 사랑받고 신뢰받는 기업을 만들겠다"고 짧막한 소회를 밝혔다.
삼성전자 이사회는 글로벌 대외 여건이 악화되고 있는 가운데 △책임 경영 강화 △경영 안정성 제고 △신속하고 과감한 의사결정이 절실하다고 판단해 이같이 의결했다고 밝혔다. 실제로 이날 삼성전자는 실적(확정치) 발표를 통해 3분기 영업이익이 전년동기대비 31.39% 감소한 10조8520억원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분기 영업이익이 줄어든 것은 2019년 4분기 이후 약 3년만이다. 글로벌 IT 수요 부진과 메모리 시황 약세가 이어질 것으로 보이는 만큼 4분기 실적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업계에서는 반도체 불황이 오랜기간 지속되면 삼성전자가 적잖은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우려를 내놓고 있다.
이 회장도 당초 회장 승진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입장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 회장은 부친이 2014년 와병생활을 시작한 이후 기업을 실질적으로 이끌어왔다. 구체적으로 △2018년 180조 투자·4만 명 채용 발표 △2019년 시스템반도체 비전 2030 발표 △2022년 역동적 혁신성장을 위한 삼성의 미래 준비 등을 진두지휘했다. 대외적으로는 이 회장은 부회장 직함이긴 했지만 삼성을 대표하는 총수로 활동했다. 2018년 5월 공정거래위원회가 삼성그룹의 동일인(실질적 총수)으로 이재용 당시 삼성전자 부회장을 지정했다. 또한 각종 정부행사에도 삼성을 대표해 참석하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대내외 경영환경이 빠르게 악화되면서 회장 승진을 고사할 명분이 옅어졌다. 이 회장은 이달 25일 부친의 2주기 추도식 직후 경영진과 만난 자리에서 "최근 글로벌 시장과 국내외 사업장들을 두루 살펴봤다. 절박하다"면서 "우리 앞에 놓인 현실은 엄중하고 시장은 냉혹하다"고 평가했다. 이 회장은 "어렵고 힘들 때일수록 앞서 준비하고 실력을 키워나가야 한다"며 "지금은 더 과감하고 도전적으로 나서야할 때"라고 했다.
이 회장은 선대로부터 이어온 인재경영, 기술경영의 기치를 이어갈 계획이다. 미래 기술에 우리의 생존이 달려있으며 최고의 기술은 훌륭한 인재들이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이 회장은 "성별, 국적을 불문하고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인재를 모셔오고 양성해야 한다"면서 "세상에 없는 기술에 투자해야 한다. 미래 기술에 우리의 생존이 달려있다"고 했다. 또한 "인재들이 마음껏 뛰놀 수 있는 조직문화가 필요하다"면서 새로운 조직문화를 만들겠다는 의지도 밝혔다.
이 회장은 1968년생으로 올해 55세(만 54세)를 맞았다. 경영자로서는 전성기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나 구광모 LG그룹 회장 등에 비해서는 늦은 나이지만 사실상 그룹을 이끌면서 제2의 신경영 비전을 준비해왔다. 이 회장은 2017년부터 회사에서 보수를 받고 있지 않고 있다. 회장 취임 이후에도 보수를 받지 않는 '무보수 경영'을 이어갈 계획이다.
정부는 이 회장의 취임과 관련해 국가경제에 이바지하는 경영자로써의 역할을 강조했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회장으로 승진한 것과 관련해 "(삼성이) 중요한 기업이니까 거기에 맞게 (이 회장이) 또 중요한 책임을 지고 잘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 총리는 "삼성이 투자도 많이 하고 경제에 많은 기여를 하고 초격차기술도 많이 개발을 해서 대한민국 경제에 중요한 플레이어임에는 틀림이 없다"며 "국내뿐 아니라 국제적으로 기여도 많이 하고 건설적인 경제 활동을 하는 플레이어가 됐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재계는 이 회장의 취임에 한 껏 기대감을 내비쳤다. 유환익 전국경제인연합회 산업본부장은 "이 회장의 취임을 계기로 삼성전자가 신기술에 대한 과감한 투자 등을 바탕으로 글로벌 시장에서의 경쟁력을 유지하고, 우리 앞에 놓인 위기를 새로운 기회로 바꿀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강석구 대한상의 조사본부장은 "그동안 삼성그룹의 최고경영자로서 실질적인 역할을 수행해온 만큼 이 부회장의 회장 승진은 경영 안전성을 높이는 결정"이라며 "대외 경영여건이 악화되는 상황에서 위기 대응을 위한 책임경영을 강화하고, 한국경제의 리딩 컴퍼니로서 미래전략을 수립하는데 과감한 의사결정과 시너지 효과를 기대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