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 급등에 회사채 스프레드(국채금리와 회사채 금리의 격차)가 급격히 확대되고 레고랜드 ABCP(자산유동화 기업어음) 지급불이행 사태까지 발생하면서 최근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시장이 빠르게 얼어붙었다. 이에 지난주에는 부동산PF 지급보증 의무를 지닌 건설사들은 '부도 루머'까지 돌며 주가가 급락했다.
부동산 PF시장이 급랭하며 우량 건설사조차 PF대출연장 차환에 실패하자 전일 정부는 비상거시경제금융회의를 거쳐 '50조원+α' 규모 유동성 공급 프로그램을 발표했다. 이는 레고랜드 사태 이후 단기자금 시장 경색을 타개하기 위한 조치다.
이번 조치는 총 50조원의 유동성 공급 프로그램으로 1)채안펀드가 재가동되며 2) 정책금융기관의 회사채·CP 매입조치가 강화된다. PF ABCP 시장안정을 위해 3)한국증권금융을 통한 증권사 유동성 지원 및 4)PF 사업자 보증지원을 실시하기로 했다.
전배승 이베스트투자증권 연구원은 "코로나 발발 직후 시행된 단기자금시장 안정화조치가 모두 포함됐으며 금리인상 기조를 감안해 한은의 RP 매입처럼 통화당국이 직접적으로 유동성을 공급하는 조치만 배제됐다"며 "이는 결국 정부와 금융당국이 PF ABCP 시장의 불안과 파급을 심각하게 인지하고 있음을 시사한다"고 설명했다.
특히 추경호 경제부총리가 발표한 6가지 시장안정 대책 중 첫번째와 다섯번째 대책은 부동산PF 시장 안정에 도움이이 될 전망이다. 첫번째 조치는 시공사 보증 PF의 ABCP등 회사채와 CP매입을 재개하는 것이다. 정부는 20조원 규모 채권시장안정펀드 중 가용재원 1조6000억원을 이용해 10월24일부터 회사채, CP 등 만기도래 차환물량에 대한 매입을 추진한다고 했다.
다만 이번 채안펀드 매입 대상 증권은 AA- 등급 이상 회사채, A1 등급 이상 CP 및 전단채, A1 등급 이상 PF-ABCP 등이다. 현재 CP 등급이 A1인 시공사는 삼성물산, 현대건설, DL이앤씨 3곳에 불과하다.
강경태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이번 정부 조치는 즉시 투입하는 가용재원이 적고 매입대상 증권의 등급 기준이 높아 실질적인 매입 효과는 작다"며 "83개 약정 금융기관 대상 캐피탈콜을 실시해 11월부터 추가 재원 투입 예정인 점을 감안하면, 11월 이후 브릿지론 유동화증권 차환 병목이 일부 해소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정부가 제시한 다섯번째 조치는 단기 유동성 위기에 노출된 양호한 PF사업장에 대해 2022년 4분기부터 2023년까지 총 10조원 규모 보증을 지원하는 것이다. 보증기관은 주택도시보증공사(HUG), 한국주택금융공사(HF)로 보증 규모는 각 5조원이다.
강 연구원은 "시행사와 시공사 요건을 두고 있지만 채안펀드 매입 대상에 비해 범위가 넓고, 브릿지 단계의 PF대출채권 유동화증권 발행잔액이 11조2500억원인 것을 감안하면 보증 규모는 크다고 판단된다"며 "이번 지원에 힘입어 인허가를 마친 미착공 현장의 착공, 브릿지론 상환 병목 현상 해소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한국투자증권은 주택사업을 하는 4대 건설사(현대건설, GS건설, 대우건설, DL이앤씨) 4곳의 모든 브릿지론이 본 PF 단계로 가지 못할 최악의 경우를 가정했다. 이 중 현금성 자산이 남아있는 DL이앤씨를 제외하면 GS건설(2조4700억원), 대우건설(8700억원) 현대건설(1조7400억원)은 현금유동성 부족이 발생하게 된다. 차입과 사채 발행 수단을 제외하고 증자로 자금을 조달한다고 보면 각각 기존 발행주식수 대비 GS건설은 133.1%, 대우건설은 52.7%, 현대건설은 45.8%만큼 신주 발행이 필요한 상황이다.
강경태 연구원은 "유동성 부족 해결을 위한 대규모 증자를 가정해도 현 주가는 과도한 하락"이라며 "이들 건설사 모두 현 주가는 2010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에서 거래되고 있으며, 시장의 우려보다 재무적 체력을 탄탄하게 길렀다"고 진단했다.
정부가 긴급 안정화 대책을 내놨지만 부동산 PF 위기의 조기 진화를 속단하긴 이르다는 견해도 나왔다. 박세라 신영증권 연구원은 "부동산 시장 위기는 대개 경기악화→미분양 증가→시행사 현금흐름 악화→PF부실 순이었는데 지금은 자금시장 경색으로 PF지급보증이 발생한 점이 과거와 다르다"며 "부동산 미분양에 따른 대금 지급 불능 사태는 아직 일어나지 않았기에 더 심각한 상황일 수도 있다"고 판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