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멤버', 수십년 지나도 유효한 메시지 "그날을 기억하라!"'

머니투데이 정수진(칼럼니스트) ize 기자 2022.10.17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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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적절한 소재와 강렬한 메시지 그러나 오락성을 더하려 했더니

사진제공=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사진제공=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절묘한 타이밍이다. 영화 ‘리멤버’가 촬영을 마친 지 2년여가 지나 개봉을 앞두고 있다. 그러나 최근 정치권에서 불거진 식민사관 논란을 보면 시의적절한 개봉이 아닌가 싶다. 이 논란이 영화 흥행에 득이 될지 실이 될지는 알 수 없으나 적어도 영화가 던지는 메시지가 이 시대에 유효하다는 의미인 셈이니까.

영화 ‘리멤버’는 80대 노인 필주(이성민)가 60여 년간 품고 있는 복수를 실행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뇌종양 말기,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어 하루하루 기억을 잃으며 죽어가는 노인인 필주가 평생을 품어온 복수는 일제강점기 때 자신의 가족을 죽음으로 몰아간 친일파들을 처단하는 것. 순사에게 고문당하다 죽은 아버지와 그로 인해 정신을 잃고 세상을 뜬 어머니, 강제 징용으로 일본 탄광에서 일하다 죽은 형과 일본군 위안부였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누나•••. 필주 가족에게 닥친 불행은 그 시대의 불행으로 인한 것이다. 그런데 그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행위에 적극적으로 가담한 실체적인 가해자가 있고, 그 가해자가 여전히 떵떵거리며 잘 살고 있다면? 수십 년이 흘렀어도 눈이 뒤집힐 것은 자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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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최고령 최장수 아르바이트생으로 근무하며 20대 청년들과도 스스럼없이 어울리는 ‘핵인싸’ 할아버지 필주. 장성한 자식들이 각자 가정을 이루고 아내마저 세상을 뜨며 가장과 아버지로의 책임에서 자유로워진 그는 더 이상 기억을 잃기 전에 오랫동안 품은 복수를 실행하고자 한다. 손가락마다 처단해야 할 이름을 먹으로 새기고, 평생 모은 돈을 가방 안에 그러모으고, 오래 전에 파묻었던 권총을 다시 땅에서 꺼내고, 자신이 왜 복수극에 나서는지 담담한 목소리로 설명하는 동영상을 남긴다. 혼자는 아니다.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사귄 ‘절친’ 인규(남주혁)에게 일주일간 운전을 부탁했다.



‘리멤버’의 설정이나 ‘톤 앤 매너’는 좀 묘하다. 80대 노인이 수십 년을 품어온 복수극을 실행하는 만큼 느린 듯 느리지 않은 속도감이 묘하고, 다섯이나 되는 이들을 처단해야 한다면서도 굳이 복수극 실행의 ‘발’로 강렬한 빨강색 스포츠카 포르쉐를 타고 다니는 점도 그렇다. 황정민과 강동원을 내세운 버디 무비 ‘검사외전’을 연출한 이일형 감독의 전력 때문에 80대 노인 필주와 20대 청년 인규가 빚어내는 독특한 케미의 화끈한 버디 무비라 예상할 수도 있겠지만, 또 그러기엔 담은 메시지가 무겁다. 오락성을 완전히 포기하지도 못했고, 그렇다고 절절한 울림이 있는 드라마로 가기엔 너무 단선적이다. 밸런스를 맞추기 어려웠다면 과감하게 어느 한 면을 포기하는 게 나았을 수 있는데 어정쩡하다. 아이러니한 속도감을 강조하고 싶었다면 편집을 좀 더 타이트하게 했으면 좋았을 뻔했다.

사진제공=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사진제공=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필주가 처단하는 친일파들도 아쉽다. 대기업 회장인 정백진(송영창), 식민사관을 교묘히 정당화하며 ‘역사에 매몰된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고 설파하는 교수 양성익(문창길), 자위대 퇴역 장성인 토조 히사시(박병호), 한국전쟁에서 공을 세우며 육군참모총장까지 지냈던 장군 김치덕(박근형) 등 친일파들의 현재 모습과 그들이 내뱉는 변명이 너무 빤해서 실망스러울 정도. 필주와 김치덕의 대면, 그리고 이후 필주와 인규의 대면은 영화에서 가장 긴장감이 고조돼야 할 장면인데, 그리 충격적이지 않은 반전과 과도한 설명으로 도리어 힘이 쪽 빠지는 느낌이다.


물론 장점이 없진 않다. 이성민의 열연은 돋보인다. 가래가 끓는 듯한 목소리, 구부정한 자세와 휘청휘청한 걸음걸이, 순간순간 정신을 놓았다 애써 기억을 부여잡는 절실한 눈빛 등 자연스러운 노인 연기와 느리지만 느리지 않은 독특한 속도감의 ‘노인 액션’이 어우러지며 왜 필주를 이성민이 맡아야 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친일파 캐릭터의 단선적인 설정과 별개로 배우들의 무게감은 빛났다. 특히 김치덕 장군의 오라는 박근형 외에 대안이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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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무엇보다 수십 년이 흐른 지금도 유효한 메시지. 사실 이 영화의 가장 큰 특징이자 장점은 그 메시지에 있다. 인규 캐릭터의 활용이나 그에게 부여된 대사의 과함은 너무도 아쉽지만 젊은 세대에게 무엇을 기억해야 하는지 준열한 질문을 던진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광복 이후 우리나라의 변화는 상전벽해(桑田碧海) 그 자체이지만 그 시대를 살아남은 사람들이 있고, 그 시대의 잔재 또한 엄연히 남아 있다. 광복이 된 지 채 100년도 안 되는 시간임에도 과거는 잊고 앞으로 나아가라는 일부 목소리에 대한 질타를 ‘리멤버’는 들려준다. 그 유효한 메시지만큼 영화도 관객들에게 유효하게 남을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10월 26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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