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진행해" 공사비 협상 전에 착공...둔촌주공 사태 원인 됐다

머니투데이 방윤영 기자 2022.10.18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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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끝 없는 공사비 인상, 둔촌 사태 또 나온다②

편집자주 '단군 이래 최대'라는 둔촌주공 재건축 공사가 185일만에 재개됐다. 공사중단이란 초유의 사태는 공사비 증액 문제에서 비롯됐다. 둔촌주공은 가까스로 사태를 수습했지만 전국 곳곳의 정비사업장에는 둔촌주공과 같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민간 정비사업을 통한 공급 확대를 목표로 하는 정부 정책에도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어 대책이 필요하다.

"일단 진행해" 공사비 협상 전에 착공...둔촌주공 사태 원인 됐다


둔촌주공 재건축 사업은 '국내 최대 규모 재건축'으로 불릴 정도로 주목받던 곳이었다. 하지만 공사중단이랑 초유의 사태를 맞이하면서 정비업계의 '블루칩'에서 '디폴트'(채무불이행) 위기까지 내몰리며 나락으로 떨어졌다. 둔촌주공 위기의 시작점은 공사비 증액이었다. 공사에 본격적으로 돌입하기 전에 공사비 협상을 마쳐야 했지만, 제대로 마무리되지 않으면서 착공 이후에도 공사비를 증액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겼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사업 지연될라 착공부터..부실한 본계약에 공사비만 불어나
둔촌주공 조합은 2010년 8월 시공사로 현재 시공사업단(현대건설·HDC현대산업개발·대우건설·롯데건설)을 뽑고 같은 해 1조9000억원에 가계약을 맺었다. 사업시행인가를 받고 2016년 본계약을 체결할 때 공사비는 약 2조6000억원으로 뛰었다. 이어 2019년에 착공에 들어갔는데 이듬해 공사비가 더 얹어져 약 3조2000억원으로 계약서가 수정됐다.



한 정비업계 관계자는 "본계약을 맺을 때는 설계변경에 따른 공사비 변동분을 조합과 시공사가 합의하고 공사비를 정해야 하는 시기"라며 "둔촌주공은 공사비 협상이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부실한 본계약을 맺었고 설계변경에 따른 공사비 인상분이 이듬해 수정된 계약서에 반영된 것"이라고 했다.

시공사를 선정할 때 맺는 가계약서는 예정 공사비가 반영된다. 말 그대로 현재 시점에서 공사비에 대한 예산을 잡는 단계여서 가격이 변동될 수 있다. 본계약을 맺을 때는 설계변경에 따른 공사비 인상 범위를 협의하는 게 합리적인 과정이다. 하지만 둔촌주공을 포함한 조합 대부분은 사업 지연을 우려해 일단 착공부터 하고 '공사비는 차차 협의하자'는 식으로 넘어가는 일이 많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사업 진행이 늦다'며 불만을 토로하는 조합원들의 등쌀에 착공을 서두르게 되는 이유도 있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 공사비 변동률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고급화' 요구에 수차례 설계변경…공사비 또 늘어나
착공을 한 이후에도 설계변경이 수차례 일어나고 이에 따라 마감재와 시설 고급화가 이뤄지는 일도 허다하다. 이는 조합이 요구하면서 발생하는 일이다. 당연히 공사비도 오를 수밖에 없다. 실제로 둔촌주공은 지속적으로 단지 위상에 맞는 고급화를 위해 마감재, 외관, 조경 등 설계변경을 요구해 왔다. 시공사로부터 공사비 증액 통지서를 받은 서울 서초구 신반포3차·경남 통합 재건축(반포 래미안 원베일리) 역시 그동안 6차례 설계변경이 이뤄졌다.

둔촌주공 조합 내부 갈등 문제도 컸다. 공사비 증액을 결정한 조합장에 반대하는 세력이 생겼고, 이들이 옛 조합장을 해임하고 새 조합 집행부를 꾸리는 데에만 9개월이 걸렸다. 사업 기간이 길어질수록 공사비는 늘어나는 구조다.

조합장을 교체하고 나서도 달라진 건 없었다. 두 번째 조합 집행부는 '공사비 재협상'을 목표로 했으나 결국 실패했고 공사비는 약 1조원이 더 추가돼 4조3400억원으로 불어났다. 공사재개 협상에 성공한 이후 조합원들에게 남은 건 1인당 1억원가량의 추가 분담금뿐이다.


정비업계 관계자는 "설계변경은 조합 요구에 따라 이뤄지고 이에 따른 공사비 인상도 당연한 수순"이라며 "추가 분담금을 감당할 수 있고 사업성이 좋은 사업지는 문제가 없겠지만, 그렇지 않은 곳은 사업이 아예 엎어지는 곳이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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