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민정, 작품 속을 유유히 헤엄치는 배우

머니투데이 박현민(칼럼니스트) ize 기자 2022.10.13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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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중에 상관없이 강렬한 존재감 드러내며 대세 행보

사진제공=SBS '천원짜리 변호사'사진제공=SBS '천원짜리 변호사'


지난해 방송된 tvN 드라마 '갯마을 차차차'에서 배우 공민정을 봤을 때, 솔직히 좀 의아했다. 낯익지 않은 배우가 주연 배우인 신민아 곁에서 꽤 비중 있는 역할을 (그것도 잘) 소화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거부감 없이 윤혜진(신민아)의 절친이자 윤치과 치위생사 '표미선'으로 확실하게 녹아든 덕택에 드라마 끝날 때 즈음에는 전혀 일면식이 없음에도 이미 확 친해진 기분까지 스몄다.

이후에 방영된 tvN '작은 아씨들'과 SBS '천원짜리 변호사'에서, 거듭 공민정을 재회(?) 했을 때, 유독 반가웠던 건 아마도 이런 이유에서다. 최근 주목받는 작품마다 모습을 연달아 드러냈음에도 여전히 배우의 본명이 '표미선'인지, '장마리'인지 아리송해 고개를 갸웃했던 것은, (열악한 내 기억력 탓이기도 하지만) 출연하는 매 작품 속 캐릭터 그대로 흠뻑 녹아들었던 공민정의 농도 짙은 융화력 덕분이었다.



'작은 아씨들'에서 공민정이 소화한 '장마리' 역은 그 비중에 비해 상대적으로 극에 또렷한 잔상을 남겼다. 드라마 주인공 오인경 기자(남지현)가 초반에 궁지에 몰리고, 시청자마저 오기자의 정의감에 도리어 반발감을 느끼게 됐던 것은 '장마리'가 심어놓은 씨앗이 제대로 싹을 틔웠기 때문이기도 했다. 평소 친근하고 따뜻한 이미지의 캐릭터를 도맡은 영향도 적잖이 있었지만, 단순 일차원적 악역이 아닌 스스로 신념이 확고한 '장마리'라는 인물을 온전하게 자신의 것으로 소화했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너에게는 너의 진실이 있겠지만 나에게는 나의 진실이 있어. 너의 진실과 내 진실이 맞붙어서 오늘은 내 진실이 이긴 거고"라며 오인경을 몰아붙일 때는, 잠시나마 선악의 피아식별이 심각한 오류를 일으켰을 정도다.

사진제공=tvN '작은아씨들'사진제공=tvN '작은아씨들'


제한된 단어들의 느슨한 결합만으로 공민정을 완전하게 서술하는 게 불가능해보였는데 '작은 아씨들' 종방 이후 공민정이 남긴 소감을 듣고야 비로소 해소된 듯한 기분이 묻어났다. "대본에 적힌 대사를 내 입을 통해 말할 때, 가끔 몸 안에 사건이 일어날 때가 있는데, '작은 아씨들'의 대사들이 저에게 그렇게 다가와 귀한 경험이었다"는 말. 공민정의 몸 안에 '사건'이 일어날 때, 어쩌면 그것을 지켜보는 시청자의 머릿속에도 이와 유사한 '사건'이 일어난 듯싶다. 그렇게 우리들은 공민정이 아닌 작중 캐릭터를 직접 대면하는 착각을 반복해서 겪는 중이다.

'천원짜리 변호사'에서 검사로 등장한 공민정도 여전히 좋다. 법조물이라는 특성상 간혹 공분할 사건들이 다뤄지는 와중에도, 공민정이 맡은 나예진 캐릭터가 화면에 등장하면 왠지 잠시 느슨하게 마음을 내려놓고 쉬어가는 기분이 든다. 어떤 상황에서도 든든한 우군이 되어줄 것 같은 강한 신뢰감 같은 것이 자연스레 피어난다고 해야 할까. 똑 부러지고 실력 있는 검사, 아이를 키우는 워킹맘, 그리고 천지훈(남궁민) 검사 시절의 선배 등으로 '천원짜리 변호사' 세계관 속 성능이 탁월한 완충 장치의 역할을 완벽히 수행한다. 비중이나 분량 따위는 우습게 뛰어넘어버리는 초월자와 같은 존재다. 스토리 전개의 핵심키를 쥐고 있지 않을지언정, 극이 흘러가는 방향에서 결코 부재해서는 안 될 캐릭터다. 내 곁에서 언제라도 툭 튀어나와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같은 인물은, 배우 공민정의 내공 가득한 생활 연기에서 비롯됐다.

'천원짜리 변호사'를 착실하게 정주행 하고 난 이후에는, 공민정의 시작점이 됐다는 여러 독립 영화 출연작들을 부지런히 찾아볼 요량이다. 그 속에서 기자, 작가, 면사무소 직원, 사회 복지사, 영화감독, 선생님, 축구감독, 형사 등으로 무한하게 변화하고 확장하는 공민정의 연기를 느긋하게 역주행하고 싶다. 그렇게 축적된 경험이, 앞으로 또 다른 작품에서 맞닥뜨리게 될 공민정 배우의 새로운 작품과 캐릭터에 이전보다 더 깊숙하게 빠져들게 이끌어줬으면 한다. 발견이 늦었던 만큼, 더욱더 오래오래 여러 작품에서 유유히 헤엄치듯 연기하는 배우 공민정의 앞날에 기대를 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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