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허허벌판이 곧 도시유전으로" 2막 올린 SK이노 60년 혁신[르포]

머니투데이 울산=김성은 기자 2022.10.11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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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13일 환갑 맞은 SK이노베이션, '친환경 소재·에너지 기업'으로 새도약

"이 허허벌판이 곧 도시유전으로" 2막 올린 SK이노 60년 혁신[르포]


#지난 6일 찾은 울산 부곡용연지구 내 21만5000㎡부지에서는 땅을 고르게 하는 정지(整地)작업이 한창이었다. 허허벌판처럼 보이지만 SK이노베이션 미래를 품은 땅이다. 2023년 9월 본격 공사에 들어가면 1년 반 뒤인 2025년에는 '폐플라스틱 재활용 클러스터'가 이 곳에 들어선다. 이날 박천석 SK지오센트릭 GT1 Squad PL은 "서로 다른 폐플라스틱 재활용 기술을 조합해 한 부지에 공장을 짓는 것은 우리가 처음"이라고 강조했다.

클러스터가 완공되면 연간 폐플라스틱 약 25만톤을 재활용할 것으로 기대된다. △고순도 폴리프로필렌(PP) 추출 △해중합 △열분해 등 3대 화학적 재활용 공정을 모두 갖춘 곳을 건립하는 것은 글로벌 최초 시도다.



이 클러스터는 SK이노베이션이 탄소배출 주범 업종이란 오명을 벗고 '카본 투 그린(Carbon to Green)' 전략을 실행, 대전환기를 마련할 곳 중 하나란 점에서 갖는 의미가 크다.

60년 전 고래잡이하던 작은 장생포 어촌 마을이 한국 석유화학 제품 수출기지이자 단일 공장 원유정제 생산능력 세계 3위 시설로 탈바꿈했듯, 이 곳에서 '세계 최대 도시유전 기업'(SK지오센트릭)의 꿈이 태동한다.



SK이노베이션은 1975년 '석유에서 섬유까지'를 외치며 수직계열화 구축을 선언, 1991년 울산 컴플렉스 9개 공장 합동 준공식을 열면서 26년 품은 오랜 꿈을 현실화했다. 한국 산업사에서 보기 드문 금자탑을 쌓을 곳이 바로 울산CLX(콤플렉스)인 것이다.

이후 공장은 꾸준히 늘어 현재 울산CLX는 석유·기유제품 생산시설 13개, 화학제품 생산시설 11개를 갖췄다. 여의도 3배 면적인 약 250만평 규모 부지에 원유, 용수, 스팀, 석유-화학제품이 오가는 파이프라인 길이만 60만km에 달한다. 이는 지구~달까지 거리(40만km)의 1.5배다.

최태원 SK 회장이 지난 3월 이곳을 찾아 '에너지 심장'에 빗댔듯 단지 내 저마다 굵기가 달라 정교하게 얼키고 설킨 파이프라인은 그야말로 동맥과 혈관을 연상시켰다. 당시 최 회장은 "에너지 산업 구조는 석유에서 탈탄소 형태로 바뀌겠지만 석유 중심의 에너지 네트워크를 구축한 울산 CLX는 계속해서 에너지 심장 역할을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여의도 세 배 부지 내 시설이 200명 보드맨 손에···로봇개도 투입···스마트화로 진화중인 울산CLX
"이 허허벌판이 곧 도시유전으로" 2막 올린 SK이노 60년 혁신[르포]
SK이노베이션이 친환경 에너지 기업으로 대전환을 앞두고 있지만 60년 역사 가운데 혁신에서 멀어졌던 적은 한 순간도 없었다. 1962년 설립된 대한석유공사를 1980년 SK(옛 선경) 인수한 것도 도전이었는데 당시 '새우가 고래를 삼켰다'는 평가들이 나왔었다.

1985년에는 전세계적으로 대부분 정유업체들이 연구소를 보유하지 않았던 관례를 깨고 유공연구소(기술지원연구소)를 설립, 배터리-수소를 아우르는 종합에너지 기업 비전을 구상하는 한편 기술개발 및 사업개발을 동시에 추구하는 역할을 했다.

SK이노베이션은 이외에도 무자원 산유국 실현, 폴리에스테르 첨단신기술 제품 독자개발, 세계 최초 그룹3 윤활기유 개발 등 성과를 냈다.

그동안 외형 성장도 눈부셨다. 대한석유공사 초창기와 비교해 자산규모는 34억원(1963년)에서 49조5574억원(2021년), 매출 규모는 55억5000만원(1964년)에서 46조8429억원(2021년), 수출액은 8만1000달러(1964년·현재 환율 적용시 1억1607만원)에서 31조8079억원(2021년)으로 늘었다. 전체 매출액에서 수출액이 차지하는 비중만 67.9%에 달한다. 석유 한 방울 안나던 나라에서 하루 84만 배럴의 원유를 정제해 석유·화학제품을 90여개국으로 수출중이다.

울산CLX가 60년 된 시설이라곤 하나 곳곳에서 첨단·자동화가 한창 시도되고 있었다.

지구에서 달 까지 가고도 남을 총 길이의 관을 지나는 물질을 관장하는 곳은 단지 내에 약 20여 곳 포진해 있는 '조정실'이다. 조정실 내 비치된 수 십 개 모니터가 조정실 관할 공장 곳곳을 비출 뿐만 아니라 관의 온도, 압력, 유량 등은 물론 탄소배출량까지도 24시간 동안 실시간 띄운다.

조정실 내 버튼을 조작해 현장 조정이 가능하고 이상이 감지돼 경보가 뜨면 이 곳에서 제어가 가능하다. 조정·제어하는 인력인 '보드맨'들은 공장에 총 200여 명 근무중인데 4조2교대로 돌아가며 근무한다.

정동윤 SK에너지 No.1 FCC(중질유분해시설) 생산2 PL은 "보드맨들은 모두 현장 경험을 포함한 경력이 25년 이상"이라며 "기본적으로 현장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꿰고 있어야만 이상이 감지됐을 때 바로 원인을 파악하고 조치를 취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SK이노베이션은 최근에는 이상 상황 감지를 위한 로봇개도 현장에 시험 투입중이다. 정 PL은 "로봇개는 CCTV 촬영이 불가능한 사각지대에도 접근이 가능하다"며 "테스트를 이제 막 시작한 단계로 향후 얼마나 투입해 어떻게 활용할지는 더 논의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울산CLX는 SK이노베이션 꿈의 출발점이자 현재진행형인 혁신의 실현장인 셈이다.

김상준 이화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지난 8월 말 'SK이노베이션 60년 혁신 성장 스토리' 주제의 심포지엄에서 울산CLX에 대해 "(SK이노베이션이) 종합에너지기업으로 비전을 수립함에 따라 이를 구현할 수 있는 실질적 동력으로 역할을 했다"며 "울산CLX는 다양한 사업을 가능케 하는 변형적 과정을 통해 새로운 혁신을 만들어내는 원동력이 됐다"고 분석했다.
SK 울산CLX 조정실/사진=SK이노베이션SK 울산CLX 조정실/사진=SK이노베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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