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명으로 15만원 입금되자 '계좌 정지'…"풀려면 돈 내놔"

머니투데이 박효주 기자 2022.10.08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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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에 연루된 돈을 입금해 계좌를 정지 시킨 후 이를 인질 삼아 돈을 요구하는 새로운 사기 수법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사진은 사기범으로 추정되는 사람과 대화 화면. /사진=온라인 커뮤니티범죄에 연루된 돈을 입금해 계좌를 정지 시킨 후 이를 인질 삼아 돈을 요구하는 새로운 사기 수법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사진은 사기범으로 추정되는 사람과 대화 화면.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보이스피싱(전화금융사기) 범죄가 끊이지 않는 가운데 이른바 '통장 협박'이라는 새로운 사기가 등장해 주의가 요구된다. 통장 협박은 보이스피싱 범죄에 연루된 돈을 입금해 계좌를 정지시킨 뒤 이를 인질 삼아 돈을 뜯어내는 수법이다.

지난 6일 여러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모르는 이름으로 돈이 입금된 뒤 자신의 계좌가 사고 계좌로 등록돼 모든 이용이 정지됐다"는 내용의 글이 올라왔다.



글에 따르면 피해자 A씨는 지난 3일 카카오뱅크로부터 계좌가 정지됐다는 문자를 받았다. 보이스피싱 문자라 생각해 무시하려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계좌를 확인한 A씨는 'HE942'라는 입금자명으로 15만원이 들어와 있는 것을 발견했다.

문제를 직감한 A씨는 바로 카카오뱅크에 연락해 해당 돈 반환과 계좌 정지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문의했다. 하지만 카카오뱅크 측은 "안타깝지만 방법이 없다. 다음 날 아침엔 다른 은행도 정지가 될 것이고 이를 해제하는 데는 3~4개월 걸린다"며 "반환도 불가능하다. 기다리는 방법뿐"이라고 안내했다고 한다.



현행법상 금융기관은 보이스피싱 사기 이용 계좌로 의심되면 즉시 지급정지 조치를 하게 된다.

이 같은 방식으로 계좌가 묶인 사람은 A씨뿐만이 아니었다. 또 다른 피해자도 A씨에게 돈을 보낸 입금자명과 같은 이름으로 15만원이 들어온 뒤 4시간 만에 계좌가 정지됐다고 한다. 이 피해자는 입금자명이 메신저 아이디로 추정돼 텔레그램에서 검색했고 한 계정을 찾았다. 계정사용자는 계좌 정지를 풀어주는 조건으로 150만원을 요구했다고 한다.

A씨는 범죄에 대한 증거를 수집하고자 텔레그램을 통해 해당 계정 사용자와 대화했다. 상대는 '정지를 풀고 싶으면 115만원을 보내라'는 식으로 답을 한다. 또 '예쁘면 풀어주겠다'며 사진을 요구하기도 했다고 한다.


A씨는 해당 내용을 모두 갈무리해 다음 날 경찰에 신고했다. 이후 카카오뱅크에 다시 연락해 경찰과 연결해 주고 이의제기신청서 등을 접수했지만 여전히 계좌는 묶여 있다고 한다.

그는 "모르는 사람이 보낸 15만원 때문에 모든 은행 계좌가 동결됐고 언제까지 이 상태일지 모르겠다"며 "범인이 잡힐 때까지 공론화하겠다"고 했다.
A씨가 카카오뱅크에 제출한 이의제기신청서 /사진=온라인 커뮤니티A씨가 카카오뱅크에 제출한 이의제기신청서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관련해 카카오뱅크 관계자는 "사기 의심 신고의 경우 금융사기 대응팀에서 대응 매뉴얼에 따라 수사기관 안내와 적극적으로 개입해 중개하지만 해당 건에 대해서는 안내가 미흡했다"며 잘못을 인정했다.

그러면서 "이후 당행 중개로 신고자에게 상황을 설명했고 보이스피싱 피해 신고에 대해 취소 처리를 진행한 뒤 입금액까지 반환된 상태"라고 MTN에 밝혔다.

한편 은행이나 정부기관을 사칭하는 메신저피싱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메신저피싱 피해액은 2020년 373억원에서 지난해 991억원으로 165.7%(618억원) 급증했다. 전체 보이스피싱 피해액에서 메신저피싱이 차지하는 비중도 같은 기간 15.9%에서 58.9%로 올랐다. 올해 상반기에만 416억원으로 집계됐는데 피해 수법도 갈수록 교묘해지고 있어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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