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 올랐는데 손해? '킹달러'에도 못 웃는 수출기업

머니투데이 김사무엘 기자 2022.10.06 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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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율 올랐는데 손해? '킹달러'에도 못 웃는 수출기업


환율 상승=수출 기업 수혜.

주식 투자에선 공식처럼 통한다. 하지만 최근 원/달러 환율이 1400원을 돌파하는 이례적인 '킹달러' 국면에서도 웃지 못하는 수출 기업이 늘어난다. 환율 변동을 최소화하기 위해 마련한 방어장치가 오히려 이익 개선을 제한하는 족쇄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5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조선, 반도체, 자동차 등 수출 비중이 높은 업종은 환율 상승의 수혜주로 꼽힌다. 판매 대금이 달러로 들어오기 때문에 환율이 상승한 만큼 환차익으로 인식한다.

예를 들어 상품을 수출해 100달러를 벌었다면 원/달러 환율이 1000원 일 때는 10만원이지만 1200원 일 때는 12만원을 번 셈이 된다. 또는 원화 가치가 떨어진 만큼 해외 현지에서 가격 경쟁력이 생기면서 매출이 증가하는 효과를 누리기도 한다.



하지만 최근처럼 환율이 이례적으로 급등하는 상황에는 얘기가 좀 달라진다. 수출 비중이 높은 기업들은 보통 환율 변동으로 인한 위험을 회피하기 위해 통화선도나 통화스왑 등 파생상품 계약을 맺는다. 통화선도는 일정한 환율로 외화를 사거나 파는 계약이다. 통화스왑 역시 서로 다른 통화를 약정된 환율로 교환하는 거래다. 모두 환율 변동을 최소화하는 장치다.

수출기업 입장에서는 환율이 오르면 이익이 늘어서 좋지만 반대의 경우에는 오히려 손실이다. 환율 하락 위험에 노출된 상황이면 환율 상승으로 인한 이익은 일부 포기하더라도 파생 계약을 통해 환위험을 헤지한다.

문제는 국내 수출기업들이 시중 은행들과 체결한 파생계약 대부분이 환율 1200원대 이하에서 달러를 매도하는 계약이라는 점이다. 통상 환율이 1000~1200원대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1150원대 안팎의 매도 계약은 합리적인 판단일 수 있다. 하지만 환율이 이례적으로 급등하면서 달러 관련 파생상품 손실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달러 파생상품은 매도 가격과 현재 환율과의 차이 만큼이 평가손실로 인식된다.


환율 변동에 특히 민감한 조선업은 역설적으로 환헤지 비중을 늘리면서 오히려 환율 상승의 혜택을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있다. 조선사는 수주할 당시 체결한 금액을 선박 건조 기간 동안 나눠서 매출로 인식한다. 계약금액은 변하지 않기 때문에 환율 변화에 따라 매출과 이익의 변동이 크게 나타난다.

현대중공업 (112,000원 ▼6,300 -5.33%)의 경우 반기말 기준 통화선도 계약규모는 124억달러(약 17조5000억원)다. 달러 당 1188.06원에 매도하는 계약이다. 현재 수주잔고 28조7000억원의 60%에 육박한다. 환율이 아무리 올라도 수주물량의 60%는 환율 상승 효과를 누리지 못한다는 의미다.

다른 조선업체도 마찬가지다. 대우조선해양 (29,000원 ▼650 -2.19%)현대미포조선 (59,100원 ▼1,700 -2.80%)의 통화선도 규모는 각각 68억3000만달러, 22억2000만달러다. 매도 가격은 달러 당 1149원, 1173원이다. 현재 수주잔고에서 약 40%를 차지한다.

환헤지를 하지 않은 일부 물량이 있지만 이익 개선 효과는 제한적일 것이란 분석이다. 한국신용평가에 따르면 최근 환율 상승을 고려한 현대중공업의 올해 연간 영업이익 개선효과는 6000억원으로 추산된다. 그러나 환헤지를 감안하면 개선효과는 2200억원으로 줄어든다.

반도체나 자동차 업종에서도 통화 파생상품으로 인한 손실이 나타난다. 삼성전자 (80,000원 ▼2,200 -2.68%)현대차 (242,000원 ▲500 +0.21%)는 올해 반기말 기준 각각 1064억9200만원, 632억6800만원을 파생상품 평가손실로 인식했다. 반도체의 경우 경기침체 우려로 인한 반도체 가격 하락까지 더해지면서 실적 전망을 더욱 어둡게 한다.

유지웅 다올투자증권 연구원은 "완성차 업체의 경우 통화 파생계약으로 인한 손실 가능성이 일부 있겠지만 그 보다는 환율 상승으로 인한 ASP(평균판매단가) 개선 효과가 더 크다"며 "일반적으로 환율이 10% 오를 때마다 영업이익률이 1%포인트 개선된다"고 설명했다.

매출 내 달러 결제 비중이 97%인 LG디스플레이 (9,750원 ▼250 -2.50%)는 반기말 기준 12억달러 규모의 통화선도 계약을 체결했다. 민유성 한국신용평가 수석연구원은 "환율 헤지 효과를 고려하지 않으면 LG디스플레이의 영업이익 개선효과는 1조원으로 추정된다"며 "하지만 달러 매도 통화선도로 인해 이익 개선효과는 일부 상쇄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대형사는 그나마 나은 편이다. 코스닥 상장사 중 수출 비중이 높은 기업은 통화 파생상품에서 대거 손실이 나면서 당기순손실을 기록하기도 한다. 반기보고서 제출 이후 통화 파생상품에서 평가손실이 발생했다고 공시한 상장사는 7곳, 총 손실액은 830억원이다.

발전기자재 업체인 비에이치아이 (7,820원 ▼370 -4.52%)는 올해 상반기 수출액이 1183억원, 내수가 380억원으로 수출 비중이 약 75%다. 하지만 달러 당 1191~1200원에 매도하는 통화선도 계약을 체결하면서 상반기 평가손실이 156억원 발생했다. 상반기 영업이익 2억원을 훌쩍 뛰어넘는다. 상반기 당기순손실은 126억원을 기록했다.

미래나노텍 (15,760원 ▼690 -4.19%), 선익시스템 (42,500원 ▲1,700 +4.17%), 에스에이엠티 (3,365원 ▲45 +1.36%), 테크윙 (36,100원 ▼2,400 -6.23%) 등 역시 100억원대에 달하는 통화선도 평가손실을 입었다. 상반기 영업이익을 상회하거나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수준이다.

달러 강세는 긴축과 경기 침체의 결과물이다. 달러 강세의 지속이 수출업체에 긍정적인 효과만을 기대하긴 어렵다는 분석이 나온다.

민 연구원은 "수출업체는 단기적으로 고환율 수혜를 누릴 수 있지만 주요국의 금리 인상, 글로벌 경기 둔화로 인한 수출 가격 하락이 확인되고 있다"며 "고환율 수혜도 현저히 감소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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