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경표, 시선집중 월화수목금토일의 남자

머니투데이 한수진 기자 ize 기자 2022.10.04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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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수금화목토' 고경표, 사진제공=tvN'월수금화목토' 고경표, 사진제공=tvN


"여보, 나 배고파. 들어와, 밥 먹자."

tvN 수목드라마 '월수금화목토'(극본 하구담, 연출 남성우) 2회에서 정지호(고경표)가 최상은(박민영)에게 이처럼 말했을 때 따라들어가 함께 수저를 들고 싶었을 건 상은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지호가 이 같은 대사를 하고, 3회에 들어서 눈빛의 경계가 보다 다단해지자 시청자들은 환호했다. 미스터리한 과거를 가진 정지호는 소시오패스로 느껴질 만큼 어떤 상황에서도 언성을 높이거나 흐트러지지 않는다. 로코 속에서 남자 주인공이 감정을 폭발시키고, 냉탕과 온탕을 오가는 이중성이 일종의 멋으로 소비되는 한국 드라마에서 정지호는 오히려 한결같이 차분하고 냉정하기에 시선이 가는 캐릭터다. 그리고 이 새로운 영역의 완전함을 보여주는 이가 바로 배우 고경표다.

드라마 속 지호의 동료들 시선을 빌리자면 그는 '싸가지 없는 엄친아'다. 판사를 할 정도의 명석한 두뇌와, 키 185cm의 훤칠한 피지컬, 이목구비가 오목조목하게 잘 배치된 잘생긴 얼굴. 하지만 주변인들과의 대화 패턴은 "예" "아니오" 정도인, 무뚝뚝하다 못해 싸가지 없게 느껴질 만큼 타인과의 교류에 상호 작용이 결핍돼있다. 지호와 함께 일하는 조사관 유미(박경혜)는 새로 발령 받은 조사관에게 지호를 "판사님 별명이 '뇌정지호'예요. 처음에 봤을 때 '왜 이렇게 판사가 잘생겼어' 해서 1차 뇌정지. 그런데 말 섞다 보면 '판사 인격이 왜 저 따위야' 해서 2차 뇌정지"라고 소개할 정도다.



'월수금화목토' 고경표, 사진제공=tvN'월수금화목토' 고경표, 사진제공=tvN
그러나 어느 순간 툭. 윗집 (톱스타인) 남자와 함께 있는 가짜 아내 상은의 모습을 목격하곤 보여준 적 없던 다정한 목소리를 내뱉는다. 그렇게 지호의 감정이 확장되는 순간, 고경표의 차가운 모습들은 설렘을 느끼게 만드는 가장 강력한 힘이 된다. 그리고 이것이 발화점이 되어 둘이 함께하는 모든 장면들에 로맨스를 간절하게 바라게 만든다. 이와 동시에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고 어울리기 위해 뒤에서 남모를 노력을 하는 지호의 낙차가 드러나는 순간, "우리 부서로 들어오는 사건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여유로워 보이시고 보기 좋습니다"라며 이상한 뉘앙스의 격려를 뱉는 그의 모습은 '월수금화목토'의 강력한 웃음의 매개가 된다.



많은 작품에서 고경표는 변화무쌍한 모습을 보여주곤 했다. SNL 코리아의 1세대 크루원이었던 그는 커다란 눈에 광기를 담아 개그맨이라 오해를 받을 정도로 자연스럽게 코믹 연기를 소화했으며, '응답하라 1988'에선 커다란 눈에 설렘을 담아 세상 다정한 남자의 얼굴을 빚어냈다. '질투의 화신'에서는 차도남의 세련되고 정갈한 시선을 눈에 담아 섹시하다 느껴질 법한 매력을 옮겨냈고, '사생활'에서는 차갑지만 뜨거운 겹겹의 눈빛으로 알고도 속아주고 싶은 매혹적인 사기꾼의 얼굴을 그려냈다. 비슷한 시기에 공개된 영화 '서울대작전'과 '육사오'에서도 그는 힙스터와 말년 병장을 자유자재로 오갔다. 그렇게 고경표는 좀처럼 종잡을 수 없는 다양한 얼굴로 극적인 결과물을 끌어냈다. 마치 '사생활'에서 연기한 사기꾼 정환처럼 모험이라고 해도 좋을 상황에 자신을 던지고, 그때마다 의미 있는 반응을 끄집어내면서 자신의 역량을 증명했다.

그래서 정지호는 고경표가 열정으로 빚어낸 다이아몬드처럼 보인다. 얼핏보면 차갑기만한 얼음처럼 보이지만 만져보면 단단한 보석. 상사인 수석부장(박철민)이 으름장을 놓고 아찔한 농담을 던질 때 표정 변화조차 없다. 상은이 자신은 알 수 없는 이유로 화를 내거나 이웃이 자신을 연쇄살인마로 의심할 때도 눈하나 깜빡하지 않고 동요하지 않는다. 때문에 웹툰 원작으로 보일 만큼 색감이 화려하고 통통 튀는 이 로코물에서 그의 존재는 특별하고 모험적이다. 스릴러나 첩보물에서 숨쉬고 있어야 할 캐릭터가 로코로 옮겨왔을 때의 이질감을 그는 침착하게 정돈해낸다. 극중 박민영의 '월수금 남편'인 고경표, 시청자에겐 '월화수목금토일의 배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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